<사랑을 사유하다> 6화
나의 어머니는 체력이 강하고, 아버지는 자기애가 세다. 어머니의 최대 관심사는 ‘돈’, 아버지의 최대 관심사는 ‘자기 자신’이다. 어린 나는 장사 때문에 바쁜 어머니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시선을 아버지에게로 돌렸다. 그러나 아버지는 자신을 사랑하느라 나에게 애정을 베풀 여유가 없었다.
“이사장은 좋겠어. 딸이 마흔이 넘었다고? 따님이 동안이시네. 아들도 미남이야! 눈썹 짙은 거 봐~~”
식당 주인이 나와 남동생을 번갈아 보며 침이 마르게 칭찬하고 있는데 아버지는 입을 뾰로통하게 만들고선 대꾸를 하지 않는다. 아버지는 이 식당에 다시는 오기 싫다는 표정을 담아 주인에게 말한다.
“동안으로 치면 딸보다는 내가 더 낫지”
아버지의 자기 사랑은 진심이다.
그리스 로마신화에 아버지인 줄 모르고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인 줄 모르고 어머니와 동침한 비극의 주인공 오이디푸스가 나온다. 프로이트가 이걸 빌려다가, 어머니에게 집착하고, 아버지를 증오하게 된다는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반대로 칼융은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를 빌려다가 어머니를 증오하고 아버지에게 애착을 느끼게 된다는 엘렉트라 컴플렉스라는 개념을 창안했다.
시크한 어머니로 인해 엘렉트라 컴플렉스에 걸린 나는 아버지에게 애착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아버지의 자기애로 인해 나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 원했던 애착 관계는 모래성처럼 자꾸만 부서지고, 원치 않았던 것 두 가지는 단단하게 무의식에 자리잡게 된다. 첫째는 사랑받기 위해 만든 나만의 시스템이고, 둘째는 사랑받지 못한 분노에 대한 억압이다.
사랑받기 위해 만든 시스템, 연극성 인격장애
자기애가 충만한 아버지의 관심을 받기 위해 어린 내가 벌였을 몸짓과 표현들이 어떠했을까. 어릴 적 사진이 그것을 말해준다. 사진 속의 어린이는 과한 표정과 몸짓으로 주변 사람의 환심을 사고자 안달이 나있다. 쉰이 다된 지금도 그렇다. 사무실에서 내가 지껄이는 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다.
“나 그 주무관님이랑 친해”
“나 그 실장님 잘 알아”
나는 별로 친하지도 않은 사람에게 친한 척을 하고, 다른 사람에게 친하다는 걸 자랑한다.
“뭐 이 정도 가지고… 우리 사이에… 걱정하지 마, 내가 다 해결해 줄게”
아무 사이도 아닌 사람에게 무언가 특혜를 주는 것처럼 해서 상대방을 조종하려고 한다.
그 주무관과 친하다면 어느 정도인지 예시를 들어보라. 그 실장을 잘 안다는 근거를 대라. 다 해결해 줄 정도로 돈독하다면 관계가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지 설명하라.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하면 나는 교묘하게 그들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대화 뿐 아니라 브런치나 블로그의 글을 봐도 알 수 있다. 쭉정이 처럼 피상적인 내 글은 알맹이가 빠진 채로 뱅글뱅글 돌다가 끝난다. 내 성격과 많이 닮았다. 나의 이런 성격으로 인해 누군가 상처받고 힘들어한다면, 나는 연극성 성격장애라고 할 수 있다.
“정신분석학적으로 볼 때 연극성 성격장애를 가진 여성은 성장과정에서 아빠가 주로 자기애성적이며 통제적인 반면, 엄마는 따뜻하지 못한 엄마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알려져 있다.” 나는 왜 관계에 약할까? 中 51p
장애까지는 아니더라도 인정과 관심에 대한 욕구가 강한 건 사실이다. 최근에 읽은 ‘나는 왜 관계에 약할까?’에 의하면, 나의 몸이 아버지에게서 왔듯이 나의 연극성 성격은 부모 탓이다.
사랑받지 못한 분노에 대한 억압
나의 엘렉트라 컴플렉스가 실패하기까지, 부모 앞에서 치열하게 벌였을 무의미한 애교와 재롱들을 생각하면 끔찍한 느낌이 든다. 게다가 부모가 보지 않는 곳에서 거칠게 했던 행동은 무섭기까지하다. 중학교 때 문 쾅 닫고 나가는 남동생을 향해 병을 던졌다가 현관문 유리가 박살 났다. 고등학교 때 목욕을 하다가 홧김에 발로 툭 쳤는데(정말 툭 친 거 같다) 욕조가 깨졌다.
현관문과 욕조를 교체하기 위해 적지 않은 돈이 들었기에 아직도 그 사건이 내 기억에 선명하다. 한편으로 돈이 들지는 않았기에 기억하지 못하는 일들도 많을 것이다. 그 기억에 없는 것들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나 자신이 부끄럽다. 현실뿐만 아니라 꿈에서도 무서운 일들이 일어난다. 나는 꿈에서 악마가 된다. 이 악마는 세상에 존재하면 안 된다며 나는 나에게 칼을 삼키라고 협박하고, 울면서 그 칼을 삼키고 피를 토하면서 죽는다.
억울한 나는 사랑할 수 있을까
원했던 걸 갖지 못하고 원치 않은 걸 얻게 된 나는 억울하다. 그런데 억울한 나에게 또 뭘 해달라고 요구하는 자들이 있다. 노인이 된 부모와 성인이 된 내 자식이 어느 날부터인가 나에게 사랑을 달라고 요구한다. 나는 받은 게 없어서 줄 사랑이 없는데… 나에게는 무관심한 마음과 원망뿐인데…
나중에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을 화성의 묘 있는 맹지, 안산의 상가만큼만 사랑할 것인가. 그만큼도 사랑하지 않고, 돌아가신 후에 상속받은 만큼만 그리워할 것인가. 나는 그렇게 사랑을 계산기로 두드리듯 닫힌 마음의 문도 두들겨 본다. 양념갈비가 계속 타고 있다면 불판을 갈면 된다. 내 속이 타면 내 생각을 바꾸면 된다. 생각이 바뀌려면 나는 아버지를 이해해야 한다. 아버지는 왜 그렇게 자기애가 강하고, 엄마는 왜 그리 무뚝뚝한지.
내 연극성 성격이 아버지 탓이면, 아버지는 자신의 자기애를 가지고 할아버지를 탓하리라. 과거로 가서 할아버지를 바꾸면 내 인생이 바뀔까? 영화 테넷의 할아버지 패러독스가 생각난다. 과거는 바꿀 수 없다. 나는 1초씩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현재를 살고 있다. 연극성 성격과 억압이 발생한 과거에 대한 원망은 이제 그만두자. 현재와 1초의 미래를 사랑스럽게 살아가도록 노력해 보자. 그렇게 불판을 갈고, 아버지를 사랑해보려는 마음을 가져본다.
다음 주 일요일 오전 11시
<사랑을 사유하다> 7화로 이어집니다.
총 8화로 구성 예정인 <사랑을 사유하다> 시리즈는 처음부터 읽기를 추천드립니다.
<사랑을 사유하다> 1화-지적 사기 전과 1범이 되다
https://brunch.co.kr/@youyeons/26
<사랑을 사유하다> 2화- 사랑의 시작, 나를 아는 것부터~
https://brunch.co.kr/@youyeons/28
<사랑을 사유하다> 3화- 술잔에 비친 나를 사랑한다
https://brunch.co.kr/@youyeons/29
<사랑을 사유하다> 4화- 결핍은 사랑을 싣고~
https://brunch.co.kr/@youyeons/30
<사랑을 사유하다> 5화- 동전 세 개의 첫사랑
https://brunch.co.kr/@youyeons/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