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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캘리쌤 Nov 06. 2022

그 어떤 행동도 나를 바라보는 것

감정 철학

이 글은 내담자의 신분을 보호하기 위하여 각색하고 수정해서 실은 것입니다. 이어서 좀 더 구체화하기 위하여 '플라톤' <향연> 작품의 신화를 활용해서 상담자의 눈으로 보면서 연결하여 보았습니다






꿈이나 장래 희망이 없는 아이도 있지만, 꿈만 가지고 있을 뿐 그 꿈을 실현시키지 못하는 아이도 있다. 17세 상수는 꿈을 꾸지만 그 꿈을 인정받지 못해 억울하다. 그의 가족은 부모님 두 분과 누나와 살고 있다. 누나는 어릴 때부터 빼어나게 공부를 잘했다. 그 반대로 상수는 신약 해서 늘 병원 신세를 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상수도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려가고 싶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생각하는 꿈과 달랐다. 상수는 누나와는 반대로 예술가 기질이 다분해서 공부보다 무용에 관심이 많았고 피부미용에 흥미를 두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미 꿈을 정해 주셨다.     


“너는 국어 선생이 되거라.”

‘왜요? 공부하기 싫어요.’라고 마음속으로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네 알겠어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뱉었다.       


상수는 겉으로 보기에는 생기가 발발해서 어디 하나 구긴 데가 없었다. 그리고 여성스럽고 차분한 면도 있었다. 어렸을 때는 엄마 무릎에 누워 노래도 부르고 귀염도 받았다. 하지만 자식에 대한 사랑이 지나치면 부족함보다 못하다고 했는데 상수에게는 그 사랑이 턱없이 부족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맞벌이 부모, 고위직 간부의 생활이 상수에게는 못마땅하였다.


결국 심리검사에서 청소년 우울증으로 나왔다. 청소년 우울증이 심각하면 성인의 우울증보다 더 무섭다. 왜냐하면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행동으로 옮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족들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가벼운 증상으로는 갑자기 학교를 가지 않으려는 횟수가 잦아지고 집안에만 틀어 박혀 있으려고 하고 심한 증상으로는 자해와 자살시도를 한다. 어머니는 급기야 눈치를 채고 아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부모는 오로지 상수만을 위해 사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럴수록 상수의 마음은 모든 것이 짐처럼 느껴졌고 버거웠다. 아무래도 누나처럼 공부를 잘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스스로 절망감에 빠졌다.  

   



그렇다면 상수를 힘들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대상은 실제적으로 누나라고 했다. 여기서 대상관계 이론을 살펴본다. 대상관계는 말 그대로 ‘두 사람의 심리학’이라 부른다. 모든 사람이 선천적으로 지닌 관계 욕구를 양육자와 맺으며 이미지를 형성해 간다는 이론이다. 바쁜 부모를 대신해서 누나와의 관계에서 감정이 일어나고 내면화된다. 중요한 것은 양육자가 좋은 엄마 나쁜 엄마로 구분 짓는 것이 아니라 상수에게 무엇이 유익하고 무엇이 해로웠는지 구분하는 것이 우선이다. 상수에게 누나는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다. 그래서 누나한테 동일시를 느끼면서 여성성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플라톤 <향연> 신화에서 세 종류의 인간에 대해서 정리해 본다.     



그리스의 유명한 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의 이야기에서 원래 인간이란 둥글둥글한 원통으로 되어 있었으며 팔이 4개, 다리가 4개, 성기가 2개, 머리는 합쳐져서 온 사방팔방으로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원하는 곳이 있으면 어디든지 데굴데굴 굴러갈 수가 있었고, 불편한 것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제우스 신이 할 일이 없어져서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인간을 둘로 자르고 인간 종류는 셋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남자는 태양의 자손, 여자는 땅의 자손, 男女는 달의 자손이라고 불렀다. 제우스 신이 인간을 반 가른 다음에 보니 男男은 남성들과 어울려 음흉한 일을 잘 벌리고, 女女는 여자끼리 동성애로 만들어져 남자한테는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男女는 여성성과 남성성을 밝혔다고 한다. 결국 이성만 밝히고 인간이 늘어나지 않아서 제우스 신이 또 궁리를 했다고 한다. 남녀는 둘이 붙어 있되 생산물이 나오도록 했다고 한다.

<향연> 플라톤 저자 p93-98     





이 신화에 따르면 상수는 남자면서 여자의 행동으로 자신의 잃어버린 반쪽을 찾아 다시 완벽한 하나로 합쳐지려는 열망일까, 그것이 남성성에서 여성성으로 기울어지는 것일까... 어느 날 상수가 길을 가는데 뒤에서 친구들이 비웃는 소리가 들려 또 쇼크를 받았다고 한다.  “저 얘 여자 아니야? 정말 뒷모습이 여자잖아.”라고 키득거리며 수군거렸다고 한다. 이때부터 가슴이 쿵쾅거리고 졸아 들고 안절부절못하게 되었다. 결국 상수는 세상을 왜곡되게 보는 계기가 되었다. 인간의 탄생과 성장 과정을 살펴보면 이 신화가 보여주는 통찰이 잘 맞아떨어지는 것도 있다. 신화를 인간에게 끼워 맞췄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상수는 지금까지의 그 허전하고 당황스럽고 기만에 찼던 행동들이 어쩜 자신을 돌보라는 신호가 아니었을까 자각도 해 보았다. 상수는 고집대로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라 끝까지 의지를 꺾지 않았다. 그리하여 부모도 한 걸음 물러섰다. 드디어 상수는 ‘무용’에 몰입하게 되었고 자신감도 생겼다. 여성성과 남성성 그리고 양성성이 어디에 속하건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마음가짐인지가 중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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