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여행하며, 일상에 변화를 주는 시간

싱가포르

by 여행작가 Q

길 위에서, 물 위에서 얻은 깨달음을 실천하는 여행


4년 만에 떠난 두 번째 싱가포르 여행은 조금 특별했다. 한 나라를 처음으로 두 번째 방문하는 것이기도 했고, 여행보다도 휴식에 초점을 맞춘 여행이기도 했다. 그곳에 살고 있는 친구를 보러 가고 싶었고, 그 친구와 오랜만에 만나 신나게 수다를 떨고 싶었다. 언제 한 번 그녀를 보러 싱가포르로 가기로 했던 구두의 약속이 조금 당겨져 2018년 5월 말이 되었다. 그녀가 한국에서 공부할 때 가끔씩 우리 집에 와서 하룻밤씩 묵곤 했던 것처럼, 나도 이번 싱가포르 여행 떄 그녀 집에 여정을 풀기로 했다. 마침 그녀 동생의 방이 비어 있어 그 방을 쓰면 된다고 했다. 새벽 비행기로 싱가포르 창이 공항에 내려 택시를 타고 친구 집으로 향했다. 후덥지근한 공기, 아담한 야자수 가로수, 잘 정돈된 느낌이 밤인데도 여전히 내게 느껴졌다. 오랜만에, 싱가포르였다.


여행은 친구 집 동네 근처 동선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4년 전에 싱가포르에서 한 달간 공부했을 때는 여행자 마인드로 참 열심히 돌아다녔는데, 이번엔 느리게 하고 싶은 걸 하고 싶었다. 첫날 도착하자마자 그녀의 어머니가 동네 가이드가 되어 나를 데리고 도서관 구경이나 로컬 시장 구경을 시켜주었다. 과일가게에 들러 같이 두리안이란 열대과일을 사서 집으로 왔다. 두리안, 파파야, 망고 등 다양한 열대과일을 원 없이 맛보았다. 아주머니는 내가 싱가포르 이 곳 저곳을 적극적으로 여행하길 바랐지만, 나는 일단 천천히 느리게 여행하고 싶었다. 느지막이 일어나 동네로 나가 혼자 카야토스트 가게에 가서 오랜만에 다시 맛보거나 동네 시장 과일 가게에서 주스를 사서 마시며 거리를 걸었다. 조리를 신고 느릿느릿 동네를 걷는 식이었다. 걷다가 도서관에 다시 한번 가보았고, 수영장을 지나갔고, 동네 주민센터 등을 둘러보았다. 소소하게 동네를 여행하는 게 재미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오늘은 뭐 할 거야, My love?"


아주머니는 다정하셨다. 나를 부를 때 말 끝에 'My love'라는 애칭을 잊지 않았고, 늘 내가 머무는 동안 더 많은 걸 보고 느끼기를 바라셨다. 오늘 뭐 할 거냐는 다정한 질문에 늘 '동네를 구경할까 봐요'라고 말할 때마다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유쾌한 싱가포르인 아주머니는 그것도 좋다며 호탕하게 웃으셨다. 어느 날은 내게 우리 아파트 아래에 수영장이 있는데 더우니까 수영하러 가라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파트 안에 야외 수영장이 있다니!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여행을 다녀온 후, 아주머니 말이 생각나 한 번 다녀왔다. 혹시 몰라 챙겨 온 4년 전에 산 수영복을 오랜만에 다시 입고 물속에 풍덩! 수영을 할 줄 몰라 모서리에 걸터앉아 있거나 작게 물장구를 치는 게 전부였던 나. 평일 오전이라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야자수가 기분 좋게 흔들리고 물도 깨끗해 기분이 참 좋아졌다. 그렇게 앉아 있는데 이 아파트 주민인 여자가 수영하러 와서 내 옆을 멋지게 수영하며 지나갔다. 그때 뭔가 깨달았다.


수영을 하고 싶다!


4년 전에 대학교 안 수영장에서도 호주 친구는 수영을 멋지게 했지만, 난 하지 못해 아쉬웠던 기억이 다시 생생하게 떠올랐다. 이번에 또 한 번 그때가 재현되었다. 앞으로 수영을 할 수 있을 때마다 같은 생각을 한다면 얼마나 아쉬울까? 이렇게 물에서 즐길 수 있는 기회를 놓치면 얼마나 아쉬울까? 긴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갔을 때, 당장 집 근처 수영센터에 다음 달 초보반 수업을 신청한 건 여기에서의 작은 깨달음이 동기가 되었다. 그런 게 있는 것 같다. 여행 중 우연히 얻는 깨달음이 변화가 될 때. 혼자 떠난 동남아 여행에서 내가 느낀 점들도 몇몇 있었다. 그중 하나는 수영을 배우기였다.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니까 변화하더라. 난 결국 수영에 재미를 붙여 지금까지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가 되었다. 새벽 수영을 꾸준히 했다. 매달 새롭게 영법을 배워갔다. 꾸준히 한 결과, 수영을 즐기는 사람이 되었다. 일상에 변화를 주는 깨달음을 여행 중에 더 많이 얻고 싶다. 두 번째 싱가포르에서 얻은 몇 가지 수확 중 하나였다.


20180604_182234.jpg 2018, 싱가포르, 4년 만에 두 번째 싱가포르 -




시간 부자 여행자의 여행


싱가포르에 도착해서 동네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여행을 했다. 그 여행을 5일 정도 하고 나서 친구와 비행기를 타고 이웃나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를 짧은 여행으로 다녀왔다. 이 여행을 다녀온 후 앞서 머문 만큼의 시간을 더 싱가포르에서 머물렀는데, 일상에서 푹 쉬고 싶었던 여행자의 마음이 조금 바뀌었다. 여행을 하고 싶단 마음이 모락모락 피어났다. 그리하여 방콕으로 떠나기 전 5일간의 싱가포르는 여행자 모드로 다시 돌아왔다. 집 주변을 벗어나 조금씩 여행지를 넓혀보았다. 4년 전에 가본 곳과 가보지 못한 곳을 폭넓게 무작정 걸어 다녔다. 나는 시간 부자 여행자였기 때문에.


여행지에서도 계획 없이 느슨하게 여행 다니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두 번째로 와 보는 도시의 여행이 처음이라 처음에는 이런 내 모습이 낯설었다. 시간이 많다 보니 웬만한 거리는 거의 두 발로 걸어 다녔다. 오차드 로드에서 클락 키까지 걸어가거나, 클락 키에서 주빌리 브릿지까지 걸어가는 식이었다. 여행객들이 많은 관광지를 벗어나서 걷다 보면 필연적으로 현지인들의 공간과 마주하게 되는데, 그런 곳을 지나갈 때마다 걸음이 느려졌다. 조깅을 하고 있거나, 벤치에 앉아 담소를 나누거나,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을 이용해 산책을 하는 거리를 혼자서 느릿느릿 걸었다. 야경을 볼 때도 스스로 이제 됐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한 군데에서 쭉 앉아 있었다. 배고프면 근처에 보이는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싱가포르는 푸드코트가 활성화되어있어서 음식을 선택해 어느 한 자리에 앉아서 먹으면 되었다. 매일 같은 곳에서 야경을 보았다. 혼자 여행하는 게 익숙하면서도 또 어느 때엔 외로워서 힘들다는 메모를 남길 즈음 싱가포르를 떠나는 날이 되었다.


좀 더 적극적으로 보고 여행할 걸 이란 생각도 들지만, 언제 또 해볼까 싶은 펑펑 쓴 시간 부자 여행자로서의 여행도 나쁘지 않았다. 느릿느릿 긴 하루를 보내고 나면, 시간에 대한 상대성 이론을 체험으로 깨달은 것 같기도 했다. 하고 싶은 게 있든, 먹고 싶은 게 있든, 사고 싶은 게 있든 모두 내 선택이었다. 모두에게 주어진 시간 아래 어떤 선택을 하든 어떤 결정을 하든 내 몫이었다. 하루를 마음대로 만들어갈 수 있을 때 그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를 배웠던 여행은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세 번째 방문할 싱가포르는 어떤 모습의 여행자로 가게 될지 궁금하다. 또 어떤 깨달음으로 나를 변화시킬지 궁금하다.


20180604_182057.jpg 2018, 싱가포르, 해가 떠서 빌딩 사이에 살짝 걸쳐질 때까지
20180606_185544.jpg 2018, 싱가포르, 매일 봤던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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