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그 자유로움에 감사

태국 방콕

by 여행작가 Q

자유롭게 선택하고 행복하게 다니는 여행


싱가포르에서 태국 방콕으로 넘어왔다. 조금 긴장감이 느껴지는 돈므앙 공항에 도착했다. 늦게 나온 짐을 찾아 숙소로 향했고, 지하철 역에서 내려 살짝 길을 헤맨 후 큰 길가에 있는 아기자기한 숙소에 도착했다. 체크인을 하고 오후 여행을 시작했다. 알아보니 숙소에서 왼쪽으로 쭉 걸어가면 방콕 번화가 시암이 있어서, 그 방향으로 쭉 걸어갔다. 가는 길에 '사와디 캅'이라고 인사하는 맥도날드 모형을 보고, 쇼핑몰도 슬쩍 구경하다가, 육교를 건너 사진이 있는 음식점에 들어가서 볶음밥을 시켰다. 태국어 앞에선 '이 말이 무슨 뜻일까' 하는 추리가 불가능했다. 사진이 있는 메뉴판을 찾아서 겨우 시켰는데, 친절한 아주머니가 만들어주는 볶음밥이 맛있었다. 나와선 맥도날드에 들어가 따끈한 콘 파이를 먹었고 지나가다 목이 말라 구아바 주스를 사 마셨다. 검은색 전깃줄이 머리카락처럼 모여있고 엉켜있는 어지러운 모습, 빵빵 경적을 울려대는 차와 오토바이의 혼합된 도로, 어두워질수록 도로에 상인이 돗자리를 펴서 물건을 진열해두는 거리.. 코코넛 과일 껍질이 대롱대롱 달려있는 곳에서 코코넛 스무디를 사서 먹으며 숙소로 향했다. 거리는 이미 어둑해지고 있었다. 이곳은 방콕이었다.


다음 날, 배낭여행자들의 성지 카오산로드로 향했다. 수상버스를 타고. 출렁출렁 짜오프라야강 물살을 가르며 왓 야룬 사원을 지나 카오산로드로 향했다. 여기는 밤에 더 활발하다던데, 나는 오전부터 와서 저녁까지 구경하기로 했다. 도착하자마자 보이는 식당에서 고기국수를 먹고 로젤레주스를 마시며 카오산로드 여행을 시작했다. 여행객들을 위한 작은 서점에 들어갔다가, 여기 느낌이 물씬 드는 옷 쇼핑을 하며 즉석에서 흥정을 배우고, 수박주스 땡모반을 먹으며 자유로운 영혼으로 돌아다녔다. 팟타이와 코코넛 아이스크림도 먹으면서 말이다. 이곳에서의 여행은 그야말로 걷고, 먹고, 사고, 의 여행이었다. 낮이라 조용한 거리를 걸어 다니며 자유로움을 느꼈다. 버스를 타고 돌아오려다 태국어를 보니 길 잃어버리기 딱 좋겠단 생각이 들어서 왔던 대로 오렌지 깃발 수상버스를 타고 돌아왔다. 어둑어둑해지기 전에 탔는데 수상버스 안에서 지는 해를 보며 저녁을 맞았다. 지하철을 타고 숙소로 와서 푹 쉬었다. 가고 싶었던 곳을 다녀오고, 숙소에서 푹 쉬니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없었다. 귓가에 울리는 수상버스의 큰 엔진 소리를 떠올리며.


아침 일찍 여행을 시작했더니 어제처럼 비가 내리고 있었다. 조식을 먹으며 촉촉한 바닥을 바라보는데 급할 것 없다며 천천히 하루를 시작하기로 했다. 그랬더니 오전 늦게 비가 그쳤다. 이 루틴은 5일 내내 이어졌다. 주말에만 열리는 짜뚜짝 시장에 다녀왔다. 없는 게 없는 매우 큰 시장이라 길 잃기 딱 좋았다. 사고 싶은 게 있으면 다음에라고 미루지 말고 그때 꼭 사야 하는 시장이었다. 가족들과 함께 먹을 말린 과일과, 스스로 여행을 기념하는 마그넷, 한 손에 담기는 작은 코끼리 모형을 샀다. 사이사이에 걸으면서 얇은 동남아 면 국수도 먹고, 스티키 망고를 먹고, 로띠를 먹었다. 생망고도 잊지 않았다. 묵직한 생망고를 받고 좋아했다가 그중 커다란 씨로 덮인 망고를 먹었을 땐 조금 절망했지만. 연유가 뿌려진 찹쌀밥과 망고의 만남은 예상외로 달콤하게 입안에 감겼다. 하루 종일 수고한 나를 위해 숙소로 오는 길에 볶음요리를 포장해서 와서 숙소에서 먹었다. 오늘 하루도 자유로워서 만족스러웠다.


가고 싶었던 카오산로드와 짜뚜짝 시장에 다녀오고, 남은 여행 일정은 정말 계획이 없었다. 그저 하고 싶은 걸 자유롭게 하면 되었다. 이 여행은 오로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선택할 수 있는 초자유여행이어서 참 좋았다. 빗소리를 들으며 이불속에 있다가 느지막이 일어나 씻고 조식 먹으러 내려왔다. 어제처럼 비가 촉촉이 내리다가 점심때쯤 다다라서 그쳤다. 우산 없이 밖으로 나와 어제 못 산 물건 하나가 떠올라 짜뚜짝 시장에 갔다가 다시 수상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저번에 카오산로드 가는 길에 보았던 왓 야룬 사원에 가 볼 생각이었다. 새벽사원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오후에 가 보았다. 입장권을 끊고 들어가서 10분쯤 둘러보았을까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더니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 빗방울은 이내 장대비로 변했다. 사람들을 따라 황급히 내려와서 처마 밑에 숨었다. 모든 사람들이 이 안에 모여있었다. 일본어, 인도네시아어 등이 오가는 이 그룹 안에서 비가 쏟아지는 걸 쳐다만 보았다. 30분쯤 쉬지 않고 내렸을까 겨우 그친 비에 나가보니 곳곳이 물이 차 있었다. 여행 중에 비도 맞고 그런다지만 이 정도로 태풍급의 스콜을 만날 줄은 몰랐다. 이내 지친 나는 이 정도 둘러본 것으로 하고 불어난 물 위의 수상버스를 타고 숙소 근처로 돌아왔다. 나는 자유로움에 목마른 사람이었기 때문에 비마저도 자유로움의 해갈이었다.


다음날도 내 식대로 자유롭게 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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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태국 방콕, 맘껏 즐겁게 다녔던 자유로웠던 여행




혼자 여행하는 것에 대한 생각


두 번째 혼자 해외여행이었다. 첫 번째는 도쿄, 두 번째는 방콕. 첫 번째 여행 때는 외롭다는 걸 느낄 틈도 없이 빽빽하게 세워둔 나만의 스케줄에 따라 여행했다. 한국에서 오다이바 가는 수상버스(유람선) 표를 미리 끊었고, 도심 속 야경을 보는 롯폰기 입장권도 미리 끊어두었다. 도쿄 서점을 둘러볼 계획을 책과 블로그를 통해 열심히 알아보며 최선의 동선에 따라가고 싶은 곳을 계획해두었다. 물론, 그 계획은 처음 가보는 길에서 방향감각을 잃어버린 나 자신 덕분에 이루어지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최대한 계획에 따라 여행했다. 가고 싶은 곳이 명확했고 분명했다. 그 누구도 아닌 내 취향이 담긴 여행이었다.


그에 반해, 방콕은 완전히 제로에 가까운 계획으로 왔다. 인-아웃 비행기만을 끊어둔 채, 방콕 숙소를 미리 잡아둔 채 왔다. 예전에 읽어둔 책을 통해 방콕에 있는 '카오산로드'만을 알아둔 채 왔다. 아, 싱가포르에서 친구의 동생이 알려준 짜뚜짝 시장도 있다. 그 밖의 계획은 숙소 로비에 있는 한국어로 된 여행책자를 보고 계획했다. 그러다 보니 하루에 하나씩 만을 여행했다. 도착한 첫날엔 근처 시암이라는 번화가를 여행했다. 다음 날은 카오산로드, 또 그다음 날은 주말에만 열린다는 짜뚜짝 시장, 계획이 바닥난 그다음 날은 지나가다가 본 왓 아룬 사원, 마지막 날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짐 톰슨의 집이었다. 평소 계획적으로 일을 진행하는 나지만, 여기선 특이하게 여행을 해보았다. 비로소 방콕에서 진정한 의미의 휴식 여행을 했다.


혼자 여행에 대해 생각해본다. 둘 다 혼자 여행이어서 가능했던 것 같다. 내 취향을 가득 담아 빡빡하게 계획을 세우든, 아무런 취향 없이 계획을 헐렁하게 세우든, 여행자는 모두 한 사람. 그런데 나는 내가 써 둔 글에 의하면, 두 번째 여행에선 외로움을 느꼈나 보다. 먹어보고 싶은 음식이 있어도 혼자서 먹을 만큼만 시켜야 하고, 길도 잃을 때가 많고, 여행하는 동안 크게 말할 일이 없다 보니 더더욱. 두 여행을 돌아본다. 둘 다 잊을 수 없는 여행이었다. 혼자 여행도 그만큼의 추억을 가져다주었다. 함께 여행은 추억이 더블이 된다. 혼자든, 함께든, 그 순간 끌리는 여행을 하자. 무엇이든 내게 추억을 가져다줄 것이다. 무엇이든 내게 생각을 가져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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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태국 방콕, 길가에서 그리고 카오산로드 헌책방을 둘러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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