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
처음으로 혼자 떠난 여행에 대한 이야기
2017년 여름, 처음으로 혼자 해외여행을 떠났다. 가까운 이웃나라의 수도 도쿄로. 서점에 관한 책을 읽다가 공간들을 직접 보고 싶단 생각에 도쿄 여행을 계획했다. 지금까지 친구와 함께 여행하는 일에 익숙했는데, 처음으로 혼자 비행기표를 사고 숙소를 정하고 여행 계획을 짜는 일을 하게 되었다. 도서관에서 빌린 여행책과 틈나는 대로 검색하여 알게 된 온라인 정보를 합쳐 나만의 계획을 세웠다. 홀로 떠나는 여행에다가, 4박 5일이라는 길지 않은 여행이라 알차게 다니고 싶어 꼼꼼하게 계획을 세웠다.
나리타 공항에 도착해 아사쿠사에 있는 숙소로 찾아가는 길, 지하철에 내리는 일까지는 잘했다. 그런데 아사쿠사 역에서 숙소를 찾아가는 일은 메모해 둔 노트를 참고해 가도 쉽지 않았다. 지금까지 여행을 할 때 유심칩을 사지 않고 숙소 와이파이에 의존하거나 여행노트에 적어둔 위치 정보와 메모를 보며 여행했다. 이번에도 그랬다. 그런데 혼자 여행한다는 변수. 혼자선 쉽게 길을 찾지 못했다. 가는 길에 몇 명의 사람들에게 물어봤는지 모르겠다. 길 정비하는 인부에게도, 학생에게도, 상점 아주머니에게도 길을 물어보았다. 다행히 다들 친절하게 내게 길을 알려주었고, 잘 모르겠다면 손짓으로도 알려주었다. 먼저 도움을 주려고 다가 온 사람들도 있었다. 한 시간 정도 헤맨 끝에 숙소를 찾았다. 짐을 두며 숨만 돌리고 다시 숙소를 나서 주변 여행을 시작했다.
아사쿠사 거리를 구경하면서 지하철 역 쪽으로 와 유명한 음식점에서 규카츠를 먹고 배가 불러 여행을 좀 더 멀리까지 걸어가 확대해보기로 했다. 아사쿠사에선 어디에서든 아주 높이 솟아있는 스카이트리 빌딩을 볼 수 있는데, 그곳도 유명한 관광지 중 하나다. 거기까지 걸어가 보기로 했다. 지도 없이, 구글맵 없이, 오로지 스카이트리를 등대 삼아 따라 걸어가 보기로 한 것이다. 지나가는 길에 나처럼 걸어서 그곳으로 향하는 독일인 여행자를 만났다. 그 여행자도 내게 스카이트리 가는 길을 묻다 목적지가 같다는 걸 알게 되어서 같이 걸어가기로 했다. 계획에 없었지만 온 김에 전망대도 올라가 보기로 했다. 도착하자마자 도쿄를 상공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앞으로 여행 계획을 세운 곳들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일 스미다가 와라를 따라 수상버스를 타겠지, 이런 생각.
다음날, 미리 예약해둔 수상버스를 타기 전 72시간권 교통권을 첫 개시하며 기념으로 우에노 공원에 다녀왔다. 이곳에서도 어김없이 길을 헤맸는데, 그 덕에 현지인들이 가는 소바집에서 맛있는 치킨 소바를 아침으로 먹었다. 우에노 공원 안에 있는 스타벅스 가는 길도 헤매었다가 찾은 기념으로 잠깐 앉아서 휴식시간을 보냈다. 창가 자리에 앉아 일기도 쓰고 가계부도 정리하고 그러다가, 고개를 돌려 90세 노부부가 휘핑크림이 잔뜩 올려져 있는 달달한 음료와 케이크를 맛있게 먹는 모습을 웃으면서 보았다. 다시 아사쿠사로 돌아와 수상버스를 타러 갔다. 내 옆에 앉은 알록달록 가방을 멘 꼬마가 수상버스가 떠날 때 손을 흔들고 있었다. 오다이바는 거대한 상업지구였는데 쇼핑몰과 방송국, 미니 자유의 여신상과 레인보우브릿지를 한 번에 볼 수 있는 곳이어서 사람들이 많았다. 혼자 밥도 먹고, 무료 셔틀버스 타고 쇼핑몰도 구경하고, 해질 때쯤 야경이 예쁜 곳으로 와서 한참 걷거나 앉으며 공간을 즐겼다. 지나가다가 사진을 부탁해서 여러 컷 사진을 찍기도 했다.
셋째 날은 도쿄 시내 하라주쿠와 시부야에서 걸으며 구경을 했다가 저녁엔 롯폰기 힐즈 쪽으로 가서 도쿄타워를 바라보기 위해 모리 전망대에 올랐다. 해가 질 무렵의 분홍색 하늘일 때 올라와서 깜깜한 하늘일 때 내려왔다. 보고 싶었던 빨간색 도쿄타워를 바라보며 사람들과 함께 이 곳에 앉아 있는 건 꽤나 큰 즐거움을 선사했다. 이 순간을 함께 할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온전히 혼자서 관광지를 둘러보고 바라보는 경험도 색다른 감정을 선사했다. 올라가자마자 도쿄타워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어주는데, 무려 1300엔을 내고 기념사진을 구입했다. 여행하며 최고의 소비 일탈을 하는 터라 구입한 직후 크게 맘이 흔들렸지만 이내 혼자라서 해본다며 속으로 의기양양하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 사진첩을 꽤 오래 거실에 두었었다. 한 번 나가면 다시 들어올 수 없으니까 신중하게 전망대를 떠났다. 홀로 이 공간을 여행한다는 게 참 새로웠다. 아무리 길을 헤매고 외로워도 혼자 씩씩하게 감당하는 책임감과 즐거움이 있었다. 그건 꽤 색다른 경험이었다.
온전히 내가 하고 싶은 것으로 만들어간 하루의 여행
도쿄를 떠나기 전 하루는 여행책자도 블로그도 말하지 않는 내가 하고 싶은 것들로 만들어가는 책 여행을 하기로 했다. 도쿄 여행을 계획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도쿄에 있는 재미있는 서점에 대한 것이었다. 일본에 츠타야 서점을 만든 마스다 무네아키의 책을 읽고 그와 연결된 여러 서점에 관한 책을 읽은 게 시작이었다. 이 날은 가보고 싶었던 도쿄의 진보초 헌책방거리, 간판이 없는 한 권의 책만 파는 모리오카 서점, 다이칸야마 츠타야 서점을 천천히 다녀보기로 했다. 가만가만 책 여행을 떠나기로 한 것이다.
진보초 헌책방 거리는 우리나라의 헌책방 거리처럼 비슷한 분위기를 보여주었다. 일본어로 된 책을 내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평일 오전 시간임에도 헌책방을 찾은 사람들이 많이 보여 그들의 뒷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공간을 느꼈다. 한적한 거리를 걷다가 점심시간 때 근처에서 일하는 직장인이 쏟아져 나오는 거리를 마주하기도 했다. 이어서 간 모리오카 서점은 찾는 과정 자체가 고난이었지만 끝내 발견해 들어가는 것까지 마쳤다. 이 동네 주민들도 모르고, 택배원 아저씨도 번지수를 보고서야 내게 알려주었을 만큼 이곳은 아는 사람만 오는 곳이었다. 일주일에 한 권의 책만 파는 서점. 일주일에 그 책과 관련하여 인테리어를 맞춰간다고 했다. 내가 간 날은 스위스 관련 책이었다. 곳곳에 스위스 그림이 걸려 있었고, 나가는 길에 스위스 초콜릿도 손에 하나 건네주었다. 큐레이팅의 개성과 특징이 분명하면 나처럼 찾아오는 사람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와서는 다이칸야마 츠타야 서점으로 향했다. 정작 이 곳에서는 특별함을 느끼기보다는, 츠타야 서점 밖에 있는 야외 테이블에서 말차 프라푸치노를 시켜 매미소리 아래에서 글을 쓰고 기록하고 쉬었다. 기대했던 서점에서의 시간보다 그 공간 자체에서 쉬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밀린 하루 일기를 썼다. 나오는 길에 시부야에 들러 엄청난 인파의 횡단보도를 바라보았고, 거리를 조금 거닌 후에 여행 중 가장 익숙한 아사쿠사로 돌아왔다. 이 곳에서 우연히 아주 맛있는 식당을 발견했다. 지나가다가 마음에 들어서 들어간 곳이었는데 지금까지 계획해서 간 식당 중에 가장 만족스러웠다. 시원한 아사히 생맥주와 따뜻한 오야코동을 먹으며 도쿄의 마지막 밤을 행복하게 마무리했다. 요리사 겸 식당 주인아저씨에게 '오이시이'라고 말하자 아저씨가 서툰 한국어로 '맛있어요'라고 말해주어 둘 다 웃었다. 일본 야구가 TV로 흘러나왔고 음식 맛이 좋았고 식당 주인아저씨는 무척 친절했다. 나와선 밤의 아사쿠사를 걸었다. 하고 싶은 것을 한 하루가 즐거움을 가득 머금은 기억으로 남는다.
여행노트를 만들어 함께 하는 여행
늘 여행 중 하루 끝에 숙소에서 일기를 쓰지만, 그건 평상시에 쓰는 일기의 연장선상이었다. 혼자 떠난 도쿄 여행부터는 본격적으로 '여행노트'란 것을 만들었다. 다이소에서 500원에서 1000원하는 얇은 노트를 산 후, 앞에 '2017. Japan. Tokyo'라고 이름 붙였다. 그 안엔 도쿄 숙소 주소, 미리 사 둔 수상버스 예약번호, 롯폰기 입장권 예약 번호 등을 메모해두었다. 여행 계획 일정들을 하나씩 메모해두었다. 도쿄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여행을 떠나는 마음을 솔직하게 담았고, 여행을 하면서 틈나는 대로 기록을 남겼다. 쉽게 꺼낼 수 있는 이 자그마한 노트는 자기 전에 꼭 남기는 일기와 가계부를 담은 공간이기도 했고, 때로는 여행 중에 카페에 앉아 글을 쓰는 공간이기도 했다. 우에노 스타벅스에서, 오다이바 수제버거집에서, 다이칸야마 츠타야에서 등 그 공간에서 느낀 감정들이 생생한 언어로 기록되어있다. 아마도 혼자 여행이라 이야기로 쏟아내지 못하는 것들을 글로서 풀어냈던 것 같다. 다시 읽어보면 웃음이 나온다.
여행을 다녀와서는 여행 때 모아두었던 티켓과 영수증 등을 잘 정리해서 붙여두었다. 이 여행 전까지는 여행을 하며 모아두었던 카탈로그와 티켓과 영수증들을 전부 투명 지퍼팩 하나에 다 넣어서 보관했었다. 그런데 그렇게 하니, 영 그걸 다시 펼쳐져 보지 않는 나를 발견했다. 이 여행부터는 티켓을 노트에 붙이기로 했다. 보기 쉽게 정리하고 잘라서 풀이나 테이프로 붙인 후에 옆에 짤막하게 글을 남겼다. 이건 무엇을 할 때 샀던 티켓이고, 이건 어디를 들어갈 때 샀던 입장권이야, 하는 식으로. 훨씬 깔끔하게 정리된 티켓들이었다. 여행이 떠오를 때마다 두고두고 볼 수 있었고 두고두고 기억할 수 있었다. 그렇게 여행 다녀온 후에 하나의 여행노트가 완성되었다. 2017 도쿄노트. 이 노트는 손바닥만 한 크기지만 이 안에 5일간의 여행이 전부 담겨 있다. 이 노트만 펼치면 다시 그 여행으로 되돌아간다. 내겐 신기한 여행 타임머신이다. 이 타임머신 만드는 방법을 여행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 많이 공유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