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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작가 Q Oct 14. 2020

대나무와 메타세쿼이아, 그리고 자전거

한국, 담양 

대나무와 메타세쿼이아를 보기 위해 떠난 여행


담양에는 기차역이 없어서 광주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가야 했다. 내일로 여행 중에 유일하게 탄 시외버스였다. 버스를 타고 50여분 쯤 달렸을까, 목적지 담양 죽녹원에 내렸다. 죽녹원에선 운 좋게 막 떠나는 여행객의 물품보관소를 이어받아 우리의 가방을 넣어둘 수 있었다. 잠시 등에서 가방이 떨어졌을 뿐인데 몸무게가 1~2킬로그램은 줄어든 것 같은 가벼움! 카메라만 들고 죽녹원 안으로 들어갔다. 죽녹원은 대나무 숲으로 이루어진 휴양림이다. 가도 가도 끝없는 대나무 숲. 하늘에 닿을 듯이 위로 치솟아 있는 키 큰 대나무들이 빼곡히 이 곳을 채우고 있었다. 시원한 공기를 마시며 넓게 걸어 다녔다. 대나무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입을 심심하지 않게 해 주었다. 죽녹원을 나와서는 죽통밥 정식으로 점심식사를 했다. 오감이 대나무를 향해 있는 시간이었다.


밥을 다 먹고 나니 비가 조금씩 흩뿌리기 시작해 가방에서 두 번째 우비를 꺼내 입었다. 커다란 백팩을 멘 채 우비를 입어서 흡사 내 모습이 걸어 다니는 거북이 같았다. 우리는 메타세쿼이아 길을 향해 걸었다. 가는 길에 징검다리도 첨벙첨벙 건너고 오래된 나무들이 아주 많은 긴 관방제림을 따라 걸었다. 나무들은 각각 번호가 매겨져 있었는데 번호가 117번을 훌쩍 넘길 만큼 많았고, 얼마나 오래된 나무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그 옆에는 쭉 초록 논이 펼쳐져있다. 한참을 걸었을까, 드디어 도착한 메타세쿼이아 길. 하늘 높이 뾰족한 세모 모양을 한 키 큰 메타세쿼이아가 줄지어 쭉 이어져 있는 길이었다. 크기가 컸고 단정하게 뻗어있는 나무길이 아름다웠다. 비가 조금 그쳤지만 우린 비옷을 걸친 채 이 곳을 걸어 다녔다. 내 마음에는 대나무보다 메타세쿼이아 길이 더 멋있었다.


메타세쿼이아 길을 구경하고 죽녹원 쪽으로 되돌아오기로 했다. 아까 왔던 길과 다른 길을 택했는데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는 끝없는 길을 따라 걷는 기분이었다. 사람들을 만나면 이 길로 가는 게 맞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아무도 만날 수 없는 길. 걱정되었지만 표지판을 믿으며 쭉 길을 따라 걸어갔다. 한참을 갔을까, 우리 반대편으로 걸어오는 여행자 두 명을 만났다. 서로 동시에 길을 확인하며 물었는데 참 재밌었다. 우리는 그들이 걸어온 곳으로, 그들은 우리가 걸어온 곳으로 갈 것이었기 때문이다. 국토대장정 하는 기분으로 걷고 또 걸어 겨우 버스정류장을 찾았다. 알고 보니 그 버스정류장은 우리가 내렸던 버스정류장에서 한 정거장을 더 간 종점역이었다. 정류장 벤치에 앉아있는데 이토록 달콤한 휴식이란. 그리고 광주역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탔다. 이제 전라도를 떠나야 할 시간이 왔다. 우리는 충청도를 거쳐, 강원도로 간다. 전라도여, 안녕.




나무 사이를 거닐며 자전거를 배우기로 마음먹은 여행


메타세쿼이아 길은 죽녹원에서 걷기엔 조금 버겁고 차를 타기엔 애매한 거리에 있었다. 그럴 때 가장 좋은 이동수단이 있다. 바로, 자전거. 그러나 자전거를 눈앞에 두고도 우리는 그냥 지나쳐야 했다. 왜냐하면, 내가 자전거를 탈 줄 몰랐기 때문에. 애써 웃으며 두 발로 걸어갔지만 자꾸 눈길이 자전거로 향했다.


우리 옆으로 우비를 입은 자전거를 탄 여행객들이 지나갔다. 바람을 맞으며 머리를 흩날리는데 그렇게 시원해 보일 수 없었다. 바람을 만들면서 자전거를 타는 모습이 자연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자전거를 타지 못하는 나 때문에 그 그림 속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게 아쉬웠고 미안했다. 뚜벅이 여행자로서 걸으면서 풍경을 천천히 보는 것도 좋았지만, 이곳에서만큼은 나도 그들처럼 자전거 탄 풍경이 되고 싶었다. 이때의 깨달음이 내게 깊게 남아, 여행 다녀와서 곧바로 자전거를 배우기로 했다.


그렇게 스무 살 가을에 두 발 자전거 타는 걸 배웠다. 자전거 선생님은 아빠였다. 자전거 타기에 대한 분명한 깨달음과 목적, 열정이 있으니 배움의 속도가 빨랐다. 처음엔 균형을 못 맞춰 몇 번 넘어지기도 하고, 브레이크를 제대로 잡지 못해 발을 땅에 닿고, 휘청거리며 핸들을 꺾어서 보는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 때도 여러 번이었지만 끝내 자전거를 타게 되었다. 아빠가 뒤를 잘 잡아주고 있다고 믿고 페달을 밟았는데 알고 보니 아빠가 두 손을 떼고 있었을 때, 나는 비로소 자전거를 처음 타게 되었다. 이젠 나만 믿고 달릴 수 있게 되었다.


요즘은 자전거를 타는 걸 즐긴다. 이때 배우지 않았더라면 지금 나는 이 즐거움을 몰랐을 것이다. 얼마나 아쉬웠을까. 내게 담양 메타세쿼이아 길은, 자전거를 배우게 만든 도시로 기억에 남아 있다.  4년 뒤, 대만에서 자전거를 타고 해변가 노을을 보러 간 경험의 첫 번째 조각이 이때였다. 그 뒤로도 자전거를 타고 즐거운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 여행 중에 얻은 깨달음을 일상으로 이어 온 중요한 경험을 처음 가져보았다. 그래서 내게 담양은 자전거를 배우게 만든 도시로 남아 있다. 여행에서 마음먹은 걸 일상으로 가져와 배우는 즐거움을 더 많이 채워나가고 싶다. 자전거 타기를 시작으로.


2011, 관방제림, 죽녹원에서 메타세쿼이아 길 가는 길 
2011, 메타세쿼이아 길, 쭉쭉 뻗은 나무에 내 마음도 쭉쭉 곧게 뻗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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