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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작가 Q Oct 15. 2020

떠오르는 해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동진 

새벽 정동진, 떠오르는 해는 거기 없었다


충북 제천에서 새벽 1시 1분에 출발하는 기차를 타고 강원도 정동진으로 향했다. 전남 광주에서 출발하여 충남 조치원에서 환승하고 충북 제천에 내렸다가 최종적으로 강원도 정동진역으로 이동하는 강행군이었지만, 멋진 바다 일출을 보겠다는 목적이 강해 계획을 세웠다. 정동진은 바다와 가장 가까운 기차역이다. 그런 바다에서 일출을 보는 것, 얼마나 낭만적이고 멋질까!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정동진행 기차를 타기 전까지. 우리는 결코, 꿈에도 기차 맨 뒷 자석 뒤에 몸 구겨 넣기 신공을 펼쳐 새벽기차에 몸을 실을 줄은 몰랐다.


제천역에서 정동진행 기차에 올라탔을 때 우리는 경악했다. 플랫폼으로 들어오는 기차 좌석에 사람들이 다 앉아 있어 마음의 준비는 했지만, 이렇게 좌석 외 공간에도 사람들이 빽빽하게 있을 줄 몰랐다. 아니, 다들 우리처럼 일출을 보러 간단 말인가? 기차에 올라타자마자 자리에 앉아 눈을 붙이자는 계획은 물 건너갔다. 여러 칸을 오간 뒤 어느 맨 뒷자리 구석 빈 공간을 찾아냈다. 좌석에 앉은 두 사람은 우리를 아랑곳하지 않고 뒤로 좌석을 젖혀 두었지만, 몸을 구겨(?) 넣으면 둘이서 앉아 있을 만했다. 아주 불편했지만 그래도 엉덩이를 바닥에 붙일 수 있는 게 어디냐면서 참고 참으며 뜬 눈으로 덜컹거리는 기차와 한 몸이 되어 있었다. 종점 정동진에 다다르기 20분 전에 겨우 빈자리가 나서 앉아서 왔다.


그렇게 도착한 정동진역. 

그런데..


하늘에 잔뜩 구름이 끼었다. 그것도 아주 가득. 구름에 가려진 해가 보일랑 말랑 했지만, 끝내 해는 고개를 내밀지 않았다. 비가 내리지 않는 건 다행이었지만, 그에 못지않게 진한 회색 구름으로 뒤덮인 구름은 야속하리만큼 두터웠다. 언뜻언뜻 해가 비칠 법도 한데 그보다 더 성질 급한 구름이 빠르게 다가와 빛을 막아버렸다. 한여름임에도 불구하고 새벽 바다 날씨가 으슬으슬 너무 추웠다.


멋진 일출을 보기 위해 그 모든 힘든 과정을 거쳐왔는데. 영화처럼 짠 하고 멋진 일출을 보여주었다면 가슴속에서 뭔가 벅찬 기운이 올라왔을까. 그렇지만 현실은 진회색 하늘이었다. 오후에 비가 온다고 하여 더 마음이 서글퍼졌다. 강원도를 여행하려고 했던 계획을 수정해 정동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동해로 가는 기차를 탔다. 동해역에 내리자마자 보이는 기사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했다. 강원도에 가는 대신 어디를 가야 하나 고민을 하며 지도를 보다가, 우린 안동으로 더 내려가기로 했다.


이 날 하루는, 시작은 강원도 정동진에서, 마무리는 경상북도 안동에서 했다. 정동진에서 만나지 못한 해는 안동에서도 만나지 못했다. 여행하며 며칠째 해를 보지 못했더니 많이 그리워진다. 언젠가 진짜 일출을 보게 된다면 이때의 아쉬움도 다 내보낼 수 있으리. 괜찮은 일출 장소를 찾아봐야겠다. 특히 날씨를 꼼꼼하게 챙기면서. 이렇게 교훈을 하나 배워간다. 그날은 꼭 이렇게 일기장에 써야지. "떠오르는 해는 거기 있었다." 


2011, 8월 말 정동진, 거기에 아침에 떠오르는 해는 없었다.
2011, 아쉬운 일출. 그러나 비가 오지 않아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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