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산이며 들판에
무더기로 피어나던 새순과
붉은 피 돌게 하던 꽃들
한바탕 축제처럼 휩쓸고 간 뒤
짙은 녹음만 성성한 숲
그 와중에, 아뿔사 처연한 능소화
벌써 절반은 떨어진
어쩌면 너무 많이 입에 오르내려
조기 낙화한 인간의 말(言語)에
질린 꽃이여
피자말자, 삼일을 채 견디지 못하고
떨어지는 석류 꽃
바람난 몸처럼 뜨거운 꽃, 완전체가 되지 못하고
한바탕 쏟아진 소낙비에 짓이겨져 일그러진 꿈
골목어귀 아스팔트 바닥에 나뒹구는
고향 우물가 울타리가 그립구나
서 있는 땅이 낯선, 못내 아쉬운 꽃
부디 아무 일도 없기를
제발 가만히 나를 건드리지마라
그대가 살고 있을 그 어느 땅
그대도 그대의 식솔들도 안녕하길 바라는
이상 기후로 한여름더위 된 유월 중순의
때 이른 숨가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