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 더 라디오는 DJ 데니가 하차를 하고, 그 뒤를 슈퍼주니어의 이특과 은혁이 맡게 되었다. 사실, 슈퍼주니어는 내게 다소 친근하고, 익숙한 그룹이었다. 친분이 있었던 것은 전혀 아니고, 과거에 내가 살았던 동네에 그들의 소속사가 있었다.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아이돌 연습생을 보거나, 연예인을 보는 건 일상이었다.
남들은 타 지역에서 넘어와 오랫동안 존버 정신으로 기다리며 연예인의 얼굴을 볼까 말까 할 때, 나는 동네에서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니.. 얼마나 축복받은 삶인가.
처음에 슈퍼주니어가 열두 명으로 결성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인원이 진짜 많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많은 것도 아니다. 어쨌든, 슈퍼주니어를 내가 빠르게, 잠깐 좋아했던 건 같은 반 친구들 영향이 굉장히 컸다. 먼 옛날, 아이돌은 H.O.T와 젝스키스파로 나뉘고, god와 신화, 클릭비로 나뉘다가 내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는 슈퍼주니어와 동방신기파로 나뉘게 되었다. 내가 속한 교실에서 가장 인기가 있었던 그룹은 동방신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슈퍼주니어를 좋아했던 건 아무래도 라디오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독서실에서 듣는 라디오는 몰입감 최고로 사연과 신청곡, 오프닝이 전부 생각날 정도로 높은 집중력을 보인다. 가끔, 라디오에서 엄청 웃긴 사연이 나오는데 독서실에서 같이 웃음이 터지는 사람이 있으면 말은 하지 않아도 우리는 서로 같은 주파수의 라디오를 듣는다는 걸 알게 되며, 보이지 않는 동지애가 생겼다. 슈퍼주니어를 한창 좋아할 때, 동방신기파의 친구들과 교류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동방신기파였던 같은 반 친구도 키스 더 라디오를 듣고, 나에게 연락을 해오고, 나는 동방신기 무대에 대한 이야기를 펼치고는 했다. 사실, 그 친구와 노는 무리도 너무 달라서 서로 말할 틈이 없었는데, 먼저 연락을 해온 건 정말 의외였다. 그렇게 우리는 매일 밤 각각 다른 장소에서 라디오를 들으며 우리 오빠들에 대한 이야기로 문자를 주고받고는 했다. 정말 그 시간만큼은 피를 나눈 형제보다 더 진한 우정을 보였고, 우리는 아이돌에 있어서 열정적이었지만 학년이 바뀌고, 입시가 점점 닥쳐오면서 우리는 서로 멀어지게 되었다.
덕질을 하다 보면, 덕질 메이트를 만날 때가 있다. 한 마디로 동일한 그룹을 함께 덕질하며 소통하는 친구들을 말한다. 덕질 메이트는 나처럼 주변 친구들 사이에서 만나기도 하고, 트위터나 팬클럽 안에서 만나기도 한다. 덕질 메이트랑 만나서 하는 이야기는 시작부터 끝까지 좋아하는 아이돌에 대한 이야기뿐이다. 서로 덕질 정보를 공유하며 포토카드 교환도 하고, 콘서트도 함께 가면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만 안타깝게도 덕질 메이트들은 수명이 한정되어 있다. 좋아하는 본진 그룹이 바뀌지 않는다면 상관이 없지만, 나처럼 바뀌게 된다면.. 덕질 메이트들과도 끝이 나게 된다. 서로 절교를 선언하는 것은 아니지만, 좋아하는 그룹이 바뀌었으니 서로 대화할 수 있는 주제가 모두 바뀌게 된 것이다. 덕질 메이트들과는 따로 사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고, 오직 좋아하는 그룹에 대한 이야기만 하기 때문에 가까우면서도 먼 사이라고 할 수 있다. 고등학교 때 내 친구들도 그랬다. 항상 오빠들에 대한 이야기로 쉬는 시간과 라디오 시간에 대화의 꽃을 피웠지만 나와 친구들의 탈덕으로 우리의 우정은 끝이 났다. 지금도 그 친구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내 머릿속에는 여전히 그 친구와 좋아하는 아이돌과 무대를 이야기하며 즐거웠던 기억들이 가득 차있다. 유명한 한 아이돌 멤버가 MAMA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았을 때, “전 세계에 계신 K팝 팬 분들이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말을 했다. 그 아이돌의 멤버의 말처럼 과거의 덕질 메이트였던 내 친구 또한, 덕질을 하며 행복했으면 좋겠다.
나의 덕질 메이트여,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