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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Jan 01. 2024

그 시절 오빠들과 그 노래 (2)



두 번째로 내가 좋아하는 노래는 god의 최전성기를 이끈 정규 3집 앨범에 수록된 <촛불하나>이다. 

사실, <촛불하나>와 5집 앨범의 <0%>와 박빙의 승부였다. 내가 가장 많이 듣는 노래를 떠올렸을 때, 이 두 노래를 빠뜨릴 수가 없다. 두 노래는 공통적으로 힘든 상황 속에서 계속해서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가는 가사의 내용을 담고 있다. 


항상 사람들은 마치 심사위원이 된 것처럼 평가하기를 좋아한다. 학교라는 시스템은 아이들을 점수로 등급을 구분하고, 마트에서 구매하는 달걀도 등급이 있고, 하물며 재미로 간 코인 노래방에서도 노래에 대한 점수가 나온다. 높은 점수가 나오면 상관이 없지만, 낮은 점수로 평가될 때는 이제 구설수에 오르게 된다. 객관적인 시험이 아닌, 추상적인 예술의 세계나 사랑하는 마음을 과연 등급으로 매길 수 있을까? 싶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마치 자신들의 말이 맞다는 걸 주장하기 위해 객관적인 근거가 아닌 목청을 높이는 방법을 선택한다. 

참으로 천박하다.


나도 일을 하다 보면, 나를 평가하는 사람들을 만난 적이 있다. 그들이 쏟아내는 말을 들을 때면, 무례함이 극에 도달하지만 그들은 스스로가 심사위원에 빙의되어 있기에 자신들은 그렇게 말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상황이 닥칠 때, 참으면 결국 나만 바보가 되는 거라는 생각에 나 또한 언성을 높이게 되었다. 그들의 무례함을 하나하나 꼬집어주었을 때, 그들은 그제야 입을 닫았다. 만약, 내가 언성을 높이지 않았다면 그들은 자신들의 무례함은 전혀 모르고 나는 그렇게 평가되어도 되는 사람으로 보이며 다음, 또 그다음에도 똑같은 무례를 저질렀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나를 만만하게 봤다는 생각에 여전히 내 안에 분노의 씨앗이 있다. 단언컨대, 함부로 타인을 평가하며 심사위원 빙의된 사람들은 결코 발전할 수 없을 것이다. 남을 깎아내렸을 때 자신이 높아지는 게 아닌, 천박해진다는 것을 부디 이제는 알기를 바란다. 

심사위원 빙의된 자들로 인해 스트레스가 극에 도달했을 때, 나의 이어폰 너머에서는 <촛불하나> 노래가 들려왔다. 


[왜 이렇게 사는 게 힘들기만 한지. 누가 인생이 아름답다고 말한 건지. 태어났을 때부터 삶이 내게 준 건 끝없이 이겨내야 했던 고난들뿐인걸. (...) 그저 주어진 대로 이렇게 불공평한 세상이 주는 대로 그저 받기만 하면 모든 것은 그대로 싸울 텐가 포기할 텐가 주어진 운명에 굴복하고 말 텐가. 세상 앞에 고개 숙이지 마라. 기죽지 마라. 그리고 우릴 봐라.    -god <촛불하나> 노래 중-] 


좌절한 순간도 있었고, 나 스스로의 능력에 대해 의심하고, 답을 모르겠어서 계속해서 헤맨 적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촛불 하나>의 노래처럼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계속된 문제로 인해 원하는 결말을 얻지는 못했지만, 나는 내 능력을 인정받아 다른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학창 시절에 힘을 주었던 god와 노래가 지금까지도 나에게 힘을 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만약, 그 시절 god가 없었다면 나는 아주 깜깜한 어둠 속에 여전히 갇혀있을지 모른다. 그들의 노래는 나에게 촛불 같은 존재이다. 비바람이 불면 위태롭게 흔들려 금방이라도 꺼질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나아가며 어둠을 밝힌다. 심사위원에 빙의된 자들은 생각도 하지 못하는 세계로 나는 계속 나아가고 있다. 결국, 나는 내가 원하는 세계에 도달할 것이다. 그때도 심사위원 빙의된 자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나를 말하고 있을 것이다. 아무도 관심조차 주지 않는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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