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남은 내 인생에 대해 돌아본다. 여자친구와 그렇게 결혼이 하고 싶었다가 이제 서로 미래를 어느 정도 약속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런데 막상 37살이 되니까 무언가 특정 영역을 벗어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마흔 초반부터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아마 여전히 어떤 비즈니스와 마케팅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고 있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다시 더욱 더 글에 매진하는 삶을 살지도 모른다. 여자친구와 나는 이제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 어떤 뻔한 가치관에 갇히지 않고 서로에게 충실할 수 있을지 대화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마흔 중반 어떤 돈을 버는 일은, 높은 확률로 누군가 돕는 CSV의 영역일 듯 하다.
이전과 달리 지금 당장 내가 스스로 만든 능력 중 하나는, 당장 조금 쉬어도 혹은 누군가 내게 주어진 월급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지금 막 돈이 많아서가 전혀 전혀 전혀 아니라, 일이주 머리를 굴리면 나 하나 벌어 먹을 정도는 벌기 때문이다. 나는 올해 얼마 매출을 하겠다는 것과 얼마 영업이익을 하겠다는 목표를 3분기 마감까지 어느 정도 달성했다. 그 숫자가 아주아주아주 작지만 나는 그만큼을 하겠다고 올해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그만큼의 리소스만 거기에 썼다. 여자친구에게 자동차 이야기를 했다가 또 한번 쓴소리를 먹긴 했다.
다른 사람의 말을 귀담아 듣는 습관이 이전보다 더 몸에 베었지만, 더욱 더 다른 사람의 감정과 뉘앙스를 살피는데 눈치가 생긴 듯 하지만. 이제 다른 사람의 언행이나 표정이라는 외부 의도에 완전히 설득되거나 레버리지되는 일은 잘 없는 것 같다. 스스로 방향이나 숫자, 의미에서 명확한 기준점이 하나 서거나 납득이 되면 리액션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늘 대안을 세워두는 것.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다.
가끔 두려웠다. 나에게 피드백을 해주는 사람이 거의 다 사라져버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여자친구도 가까이 지내는 가족도 쓴소리들을 해주다 보니 힘이 된다. 때론 답답하기도 하지만 감사한 마음으로 듣고 있다. 그리고 내가 나를 거리두기하며 바라보는 유체이탈 같은 시선도 훨씬 깊어졌다. 나는 어떨 때 기쁘고, 어떨 때 화가 나고, 어떨 때 실수를 하고, 어떨 때 퍼포먼스를 잘 내는지, 어떤 게 필요하고, 어떤 게 부족한지 더욱 잘 알아간다. 주변에 진즉 현명한 길로만 다니는 친구들을 보면 스스로를 보다 빨리 아는 것 같다. 이번에 피드백을 아주 많이 받을 수 있는 환경 기회도 하나 있다.
최근에는 너무 빨리 변하는 시장과 경기, 기술에 압도되는 느낌을 받았다. 본질에 집중하면 늘 몇 몇 고객들은 유입되고 비교적 오랜 기간 파트너십을 맺었는데, 시류를 잃지 못하면 그 텀이 길어졌다. 그래서 무언가 런칭하고 드랍하고 피봇하고 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그 타이밍과 데드라인에 많이 민감했던 것 같다. 앞으로도 그런 일들을 겪겠지. 그래서 같이 계속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을 사귀는게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신의성실의 자세와 기본 이상의 실력을 함께 갖추는 건 정말 귀하다. 혼자 롱런하는 일은 참 어렵다. 돌아보면 늘 누군가 한명씩 잠깐이더라도, 절대 완벽하진 않더라도 조력자가 있었다.
끌어당김의 힘이라는 게 진정 있다고 믿고 조금씩은 경험도 했다고 생각하는데. 가끔은 엉뚱한 곳에서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끌려 오기도 한다. 나는 참 부족한 사람이라 남들보다 더 노력해야 하는데, 가끔은 그에 따른 작은 보상과 가치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가끔 여자친구의 직장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면 거긴 정말 회사가 맞나 싶기도 하다. 꽤나 큰 대기업인데, 개발자들이 많아서 그런지. 누군가 자기한테 작은 문제를 뒤집어 씌워도 그냥 자기가 잘못했거니, 다시 더 잘해주면 되겠거니 하며 허허 거리며 일을 한다고들 한다. 고연차의 사람들이 모여서 그렇게 각자의 역할들을 하고 있으니 듣고 있으면 참 좋다. 물론 요즘은 그곳도 구조조정 분위기가 심하다곤 하지만. 브런치에 꽤나 개인적인 이야기를 같이 담았다.
어떤 일은 해봐야지만 아는 것들이 있다. 그래서 커뮤니케이션 방식과 정책도 참 중요하다. 잡설.
역시 나만 잘하면 되는 것 같다. 요즘 더욱 더 소시민의 마인드로 살아간다. 소탈함이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