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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이 Apr 28. 2024

사랑의 시작은 고백에서부터

감상


 이 노래는 라디오에서 일하던 때 처음 들었던 곡이다. 내가 일던 지역은 군항제의 도시로, 벚꽃축제가 시작되면 그 규모가 장관이 풍경이 절경 것으로 유명하다. 딱 열흘정도밖에 안 되는 벚꽃 시즌에 나는 주말 MD(운행)를 하고 있었 꽃 보러 가자는 사람도 없었어서 별 타격감은 없었다. 렇다고 해도 9시간 동안 스튜디오에생방송을 운행하는 일은 단조롭고 지루 일이었다. 실내 나른하고 남들은 밖에서  볕을 즐기는 주말 오후. 전주가 깔리면서 진행자가 끝 곡 제목을 소개하는데 그 제목이 '사랑의 시작은 고백에서부터.' 아주 꽃피는 계절이라고 노래 제목까지 난리다 난리야, 싶으면서도 단조로운 스튜디오 안에서 은근히 귀를 쫑긋하게 하는 제목이었다.


~~ 오늘 너에게 고백할 거야~~~ 사랑한다고~~~ 세상에 말할 거야~~~~.


 잠깐. 내가 지금 너한테 고백을 할 건데,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그것도 세상에다 대고 말하면서 고백한다 이거지. '좋아해'도 아니고 '사랑해'는 시작부터 너무 과하게 하는 거 아닌가. 사랑의 시작이 고백부터라는 노래 제목부터 상당히 진취적인 느낌이 있었는데 말이지. 이런 생각을 하며 스튜디오에 앉아있던 나이가 스물넷이었던가. 지금보다 어렸던 나는 '사랑' 고백멘트에 넣기에는 좀 심각하고 진입장벽이 높은 감정이나 단계라고 여겼던 것 같다. 아무튼  프로그램 담당 PD는 군항제에 갔다 오후에 집으로 돌아가는 가족, 연인들이 차 안에서 들으면서 낭만적인 분위기를 이어가라고 선곡했을 것이다. 아니면 사귈락 말락 하는 사이에 같이 꽃 보러 갔으면 노래 들은 김에 고백하라고 골랐을 수도.


 고백하면서 사랑한다고 말하는 노래는 정말 많다. 술을 마시고 처음부터 사랑해 왔다고 고백하는 경우<취중진담>, 고백하기 좋은 날을 따로 잡아서 사랑한다고 말하는 경우<고백하기 좋은 날>, 사이가 어색해질까 두렵지만 극복해내고 고백하겠다는 경우<고백> 등등. 남녀, 시대, 상황, 현재 관계불문 엄청나게 많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어떤가? 가 했던, 내가 했던, 친구한테 들었던 현실 고백의 대사가 '사랑한다'였던 경우는 없던 것 같다. 노래 가사로 들을 때는 전혀 이상한 줄 모르겠고, 낭만적이게 느껴지는데 왜 현실에서는 들어본 적이 없는지 궁금해졌다.


 드라마 <멜로가 체질>에 나오는 고백 장면을 좋아하는데, 꽤 현실의 모습과 가까우면서도 이상적인 고백 모습을 담은 것 같다. 함께 냉면을 먹다가 한 명이 '근데 그거 뭐 고백을 꼭 해야 되나'라고 말하며 상대 눈을 보는데, 입으로는 안 하면서 눈빛으로 하는 고백이 바로 저거구나,라는 걸 너도나도 우리 모두 바로 알 수 있다. 이게 '내가 너를 특별하게 생각한다'는 뜻을 담아 전 1차(?) 고백이고, 2차 고백은 며칠 뒤 '오늘부터 커플이다'를 선포하는 고백이다. 2차 고백은 서로를 만나러 가는 길에 하는 통화부터 시작되는데 그 내용이 인상적이다. 사랑 뭐라고 생각하는지, 사귄다는  무슨 의미인지 전화로 얘기하면서 걷다가 둘은 마주치게 된다. 화를 끊으며 앞에 있는 상대에게 '그걸 같이 해보자'라고 말하며 커플이 된다.


 로맨틱 명대사 길이 남 회자되는 드라마도 많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의 고백 씬 떠오르는 가장 큰 이유는 서로 좋아하는 마음을 확인하는 고백과, 관계 확정 짓는 고백을 고롭게도 두 번에 걸쳐서 보여준 게 인상 깊었기 때문이다. 랑에 참여하는 두 사람이 각각 용기를 내어 한 번씩 칼자루를 뽑았다는 점도 좋다. 라마를 보다 보면 눈치채게 되는데 당신을 '좋아한다'도 '사랑한다'도 안 하고, 우리 '사귀자고' 워딩도 안 하는데도 다 말한 것처럼 명확하고 속 시원하다. 너무 뜨겁지도 정제되지도 않은 감정으로, 지나치게 들이대지도 조심스럽지도 않은 두 사람이 적당한 속도로 진솔하게 마음을 확인해 가는 게 정말 현실에 있을 법하기도 하다


 현실의 다양한 고백에서는 위에서의 1차 고백이나 2차 고백 중 한 개는 생략되거나 간소화 경우 많다. 요즘엔 '만나자'거나 '사귀자'는 말없이 느낌적인 느낌으로 사귀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때로는 상대의 마음을 모른 채 곧바로 2차 고백으로 진정한 승부수를 띄워야 하는 상황이 있을 수도. 우리는 주로 상대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마음을 말로 뱉어야 할 때 '좋아한다'거나, 그 말 앞에 다양한 부사를 (진짜, 엄청, 많이, 굉장히, 상당히, 아주, 되게, 무척, 매우, 무지, 대단히 등) 붙여서 말하게 된다. 말하는 사람의 뉘앙스나, 그날의 분위기 등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일반적으로 현실에선 좋아해가 사랑해의 선행 표현이다. 아마도 노래 가사에서는 3분 동안 상대를 특별히 여기는 마음을 극대화해서 전해야 하니까 바로 최상급을 표현고르는 게 아닐지. 현실에서는 이 관계에 관여할 상대가 가진 마음의 온도를 배려 '사랑한다'는 잘 선택하지 않는 것 같다.


 스르륵 물 스미듯, 가랑비에 옷 젖듯 커플이 되는 경우도 많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관계의 선언은 필요하지 않을까? 고백은 현재 상태를 버리고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하는(또는 제안하는) 행위다. 우리 사이가 친구사이든, 동료사이든, 정의하기도 모호한 모르는 사이든, 지금의 관계를 깨부수고 보다 더 가깝고 특별한 사이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전하는 순간. 데미안에서 말을 빌리자면 알을 깨고 새로운 세계로 나와 서로를 만나는 순간일 수도 있다. 글쎄, 뭐 고백하는 그때 곧바로 각자의 알이 깨지지는 을 수 있다. 그적어도 상대의 세계가 바뀌는 순간을 내쪽에서 목격하고 감격할 수도 있지 않을지. 그래서 어떤 말로 고백하는지 중요 같기도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전혀 중요하지 않 것 같기도 하다. 고백하며 건네는 그 말이 서로의 껍질을 건드리는 확실한 기호가 된다면 어떤 말이든 크게 상관있을까.


 마지막으로 가장 궁금한 고백은 뜨거운 감자의 <고백>.


널 위해 준비한 오백가지 멋진 말이 남았는데. 사랑한다는 그 흔한 말이 아니야, 그보단 더욱더 로맨틱하고 달콤한 말을 준비했단 야.


 이 노래에서 준비만 하고 실제 등장하지는 않은 오백가지 멋진 말은 무엇일까? 실제로는 준비된 게 없었고 상대가 오백가지 뭐가 있었는지 들려달라고 하면 그때부터 생각해서 말하기 시작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백이 성공했기 때문에 그 오백가지 말의 실체 별로 중요하지는 않을 듯. 만나면서 500개의 다른 표현을 세어보는 재미는 있겠다.



제목은 김범수의 노래 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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