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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디함 May 13. 2023

마초와 너드미의 환상적 조화

[제5편] 인도계 영국인 수학선생 헤먼트와의 만남

인도계 영국인 수학선생 헤먼트와의 만남

이번 편에는 매직 트라이앵글 3명과의 썸에서 누가 봐도 최고 권력자로 윗꼭지점에 자리하고 있는 헤먼트에 대해서 써보려고 한다. 매직 트라이앵글의 첫 번째 꼭짓점, 네덜란드 디지털 노마드 트여르크와의 만남이 궁금하다면 지난 글을 확인해주세요.



헤먼트의 기본 프로필

브리저튼 남주의 모습과 억양을 빼닮았다


국적: 영국 런던 부근의 작은 소도시, 부모님은 전통적 인도인            

나이: 93년생, 3살 연하남            

직업: 국제학교 수학선생            

해시태그로 보는 특징: #귀여운재규어 #핫너드 #K드라마 #정열의사나이            






찌질함과 마초 그 사이


헤먼트의 프로필 사진을 처음 봤을 때 브리저튼 남주 '사이먼'과 에밀리 인 파리의 '앨피'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확 들었다. 두 인물의 공통점은 뭔가 불량하면서도 섹시하고 진하게 마초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것인데, 헤먼트가 그랬다. 한 쪽 팔 가득히 타투가 있었고, 락클라이밍이나 등산을 하는 모습에서는 가슴과 팔근육이 상당히 위압적으로 울끈불끈했다. 헤어젤을 사용해 쓸어올린 머리 스타일, 우디하고 시원한 남자 코롱향이 날 것 같이 잘 정돈된 수염과, 또 한 쪽 방향으로만 씨익 거만하게 올라간 저 입꼬리... 하... 혼란스러웠다. 해외살이를 8년 넘게 해왔으면서도 중동 쪽이나 인도 쪽 남자에게 이성적 호감을 느끼지는 못했는데.. 그의 건장한 모습들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섹시하게 느껴졌다. 평상시였다면 '나 같은 너드에게는 너무 과한 섹시함이다..'라고 생각하고 그의 프로필을 지나쳤을 것이다. 그런데 사진과는 다소 상반되는 그의 찌질한 프로필 글귀에 나는 그를 꼭 직접 만나보고 싶었다.


"호치민 4년차 거주중. 런던 출신 수학 선생. 체스, 보드게임, K드라마, 애니, 소셜댄싱에 환장함"



그와 매칭이 된 시기는 12월 31일쯤으로 하필 그가 장기간 태국 여행을 가기 직전이었다. 최소 3주는 지나야 직접 만날 수 있는 사람이었고, 어플만남은 타이밍이 전부이기 때문에 보통 이런 타임라인으로는 연을 유지할 수 없는 경우가 십중팔구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한 번 본 적 없는 그와 나눈 온라인 대화는 어째서인지 재미있었다. 여행 가방 싸기를 미루는 그에게 "언능 짐싸"라고 음성녹음을 보낸 것이 화근이 되었다. 그는 곧바로 내게 음성메시지로 답변했다.


"Wait, is this your way to find out about my accent?"

헉... 의도한 바는 아니었으나 그는 인도계 영국인이었음에도 인도 억양이 하나도 있지 않았고 제대로된 정통 귀족 영국인의 억양을 갖고 있었다. 음성메시지를 듣고 이렇게 설렌 적이 있었나.. 웃으면서 말하는 그의 간드러지는 목소리와 지적인 억양이 심하게 섹시했다. 그때부터 우리는 계속 음성메시지로 서로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했다. 각자의 침대 위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뒹굴거리며 몇 번이고 서로의 목소리를 반복해서 듣고 또 듣고 웃고 설레다가 겨우 늦은 밤이 되어서야 억지로 잠을 취하기까지.












한 달간의 디지털 러브


나는 그가 태국여행을 시작하면 솔로여행 중 낯선 이와 만나 불꽃같은 로맨스에 빠져 나를 잊지 않을까 조바심이 났다 (내 경험을 토대로 생각함). 그러나 그는 여행 중에도 거의 매일매일 내게 하루일과에 대해서 알려주었다. 그는 내게 기다리는 동안 K드라마 '환혼'을 꼭 보라고 추천해줬고, 나는 보통 TV를 보는 사람이 아니지만 그와 조금이라도 공통 주제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보다보니 너무 재미있었던건 안 비밀..


이런 점이 트여르크와는 다른 헤먼트만의 매력포인트였다. 그는 영국인/유럽인이지만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인도 부모님 밑에서 자라왔고, 나는 한국인/아시아인이지만 유럽 곳곳에서 자라오면 반쯤은 유러피안 사고방식과 라이프스타일을 갖고 있었다. 헤먼트와 내가 이렇듯 대화가 잘 통하는 것은 둘다 반은 유럽, 반은 아시아의 정체성을 갖고 있어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조화의 사람을 만나는 것은 흔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나는 그를 만나기도 전에 그에 대한 감정이 깊어짐을 느꼈다. 그래서 탄생한 자작곡이 Digital Love 다 (영상 첨부하겠음).






호치민 7군에서의 첫 만남


드디어 3주가 지났고, 헤먼트는 호치민에 돌아왔다. 그는 오자마자 나와의 데이트를 잡았다. 그를 처음으로 실제로 보았을 때의 느낌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크고 훨씬 까맸다. 그런데... 좋았다... 내가 그동안 만나온 사람이랑은 너무 다르고 낯선 그의 비주얼에 심장이 쿵쾅거렸다. 만나서 허그인사를 하니 사진을 보며 내내 상상하던 진하고 시원한 남자 향수향이 그의 품속에서 났다.


우리는 호치민 7군의 크레센트 몰 호숫가로 갔다. 크레센트(Crescent)는 초승달이라는 뜻이지만 지도상으로 보면 반달 모양에 더 가까운 호수이다. 크기는 한국의 공원에 비하면 작은 편이지만 호치민에서는 상당히 큰 편이다. 한인타운으로 알려진 7군에 위치해서일까 이 호수공원도 제법 한국의 광교호수공원 느낌이 나는 곳이다.



우리는 호숫가에 있는 한 바에 들어가 맥주타워를 시켰다. 안 그래도 그와 함께 있는 것이 너무 긴장돼 맥주가 몹시 필요했었다. 우리는 맥주타워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고 앉아 있었는데 내가 자꾸 주변 소음 때문에 헤먼트가 말하는걸 듣지 못하자 그가 자기 옆자리에 앉을 것을 권했다. 별 생각없이 "어..어.. 그래.." 하면서 옆자리에 앉았는데 기분이 야릇해졌다.


이 낯선 사람과의 신체적 거리가 가까워졌다. 그는 나를 바로 옆자리에 앉혀놓고 내 쪽으로 몸을 돌려 앉았다. 그의 울끈불끈한 팔뚝은 내 의자등에 걸쳐 있었다. 두 육체 사이 좁혀진 거리의 공기는 농염했다. 은은하게 퍼지는 그의 향수향만큼이나 나를 원하는 그의 눈빛은 자극적이었다. 어느덧 맥주타워의 반이 비워졌고, 나도 긴장이 풀려 그의 팔뚝 위에 그려진 가네쉬 신(인도 신들 중 코끼리 형상에 사람 몸을 한 신)의 외곽선을 따라 손가락 끝으로 그를 탐하고 있었다.







우리만의 라라랜드


바가 닫히자 우리는 호숫가를 따라 걸었다. 손을 잡고 있었다. Starlight Crescent Bridge 라 불리는 호수 다리 위에 올랐는데 청록색 조명이 다리를 밝히고 있었다. 우리는 다리 중간에서쯤 걸음을 멈추고 달빛에 빛나는 호수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잠시 적막이 흘렀다. 그러다가 그는 내 몸을 천천히 돌려 다가와 키스를 했다. 신비로운 청록색 조명과 호수의 녹조 냄새가 우리를 감싸고 있었다. 그때의 분위기, 장소, 상대, 쫀득한 텍스쳐까지 온몸이 사르르 녹아내릴 것 같이 완벽한 첫키스였다. 그렇게 황홀한 와중에도 머릿 속에서는 '이 녀석 이걸 다 계산하고 한걸까? 키스를 하려고 다리 위로 올라온건가? 보통 녀석이 아닌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만큼 좋았다.. 후.. 우리는 다리를 건너 계단식 좌석에 앉았다. 능숙한 그의 동작과 동선과는 다르게 그의 표정은 한없이 소년 같았다. 쑥쓰럽다는듯 웃으며 그는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를 틀었다.



헤먼트와의 첫키스 장소
우리는 사진 속 노란 가로등 아래에서 우리만의 라라랜드에 빠져 있었다.



그러다가 그가 살사/바차타 스텝을 가르쳐주겠다고 일어나 보라고 했다. 그는 내 두 손을 아주 살포시 잡고 원, 투, 스텝 쓰리, 포, 스텝하며 차분히 알려주었다. 그러다가 스텝을 멈추고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내 두 눈을 바라보았다. 그는 떨림이 묻어나게 큰 심호흡을 했고, 나의 두 손을 끌어당겨 그의 몸과 밀착시킨 후 내 얼굴을 감싸고 격정적이게 키스를 퍼부었다. 그러고서는 "이제 뭐할래? 술을 더 마실까? 아니면.. 영화 볼까?"라고 물었는데 말이 뭐할래지, 영화는 핑계고 우리 집에 가서 이거 마저 다 할까? 라는 소리였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그때 튕기고 그냥 술이나 더 마시자고 했으면 어떤 결말이 났을려나.. 그러나 튕길 수 없었다. 나는 그를 몹시 원했다. 그날 그와 나 사이의 팽팽한 이끌림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결국 나는 "가고 싶어.. 너의 집으로"라고 대답했다.






이렇게 붙어있는데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다고?


그의 집에 들어섰을 때 그는 상상 이상으로 정열적이었다. 마치 한 마리의 재규어를 보는 것 같았다. 나는 사주를 볼지 모르지만 그가 '불의 사나이'라는 것만큼은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나를 눕혀 온 열정으로 키스를 쏟아붓다가 잠시 입술을 떼고 나를 위에서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기가 차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You are amazing..!"이라고 속삭였다. 와.. 코피 터지는 줄 알았다.. 나는 밤새도록 그의 품속에 껴안겨져 있었다. 여태껏 경험한 적이 없는 엄청나게 능숙한 스푸닝(spooning)이었다.


스푸닝: 연인이 누워 백허그 하는 자세를 의미한다. 선반 속 숫가락과 숫가락이 서로 같은 방향으로 얹어져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비유다.


아무래도 소셜댄싱을 하는 사람이라 그런가? 남자가 리드해서 여자의 신체동작을 바꾸는 데에는 고수였다. 내가 조금이라도 자세가 불편해 쿰척거리면 자연스럽게 바로 다른 자세로 바꿔주었다. 나는 누군가와 함께 같은 침대에서 자는 것을 몹시 불편해하는 편인데 이렇게까지 밤새도록 사랑을 퍼부어 받는 기분은 처음이었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맥모닝을 배달해 먹고, 체스를 하고, 또 끌어안은 채 저녁이 될 때까지 한국드라마를 함께 봤다. 그 이후로도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데이트를 했다.


헤먼트는 포켓볼 데이트, 야구 타격장 데이트 등 활동적인 데이트를 즐겼다.





영역 표시는 하고 싶은데

책임감은 지고 싶지 않은 사람


한 달쯤 지났을까? 나는 그와의 감정이 깊어져 진지한 만남을 갖고 싶었고, 그럴 의향이 있다는 것을 조심스럽게 표현했다. 그러나 그의 반응은 애매했다. 이게 시츄에이션십인건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배운 "서양식 연애"에 의하면 3-4개월은 지나야 진지하게 "사랑해"라고 말한다더라. 그래서인가 나는 기다려주고 싶었다. 몇 번 더 만나다 보면 그도 내게 물들어 나를 진지하게 생각할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내게 웃긴 영상을 공유하던 그였다. 하루종일 연락을 주고받았던 그였다. 이렇게까지 그의 하루가 나로 채워져 있는데 정이 안 들수가 있나?.. 그런 생각으로 또 데이트를 하고 또 호르몬의 부름에 의해 정열적인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정열이 과해진 나머지 나의 목에 선명한 보랏빛 러브바이트가 남겨졌다. 시퍼렇게 자국이 남은 것을 보고 기겁한 나와 달리, 그는 은근히 그의 작품(?)을 즐기는 것 같았다. 어차피 남들이 볼 수 없는 위치에 있지 않냐며 가볍게 웃어 넘기려 했다. 나를 그저 시츄에이션십으로만 여기는 그가 원망스러웠던 난.. '내가 왜 너랑만 이럴거라고 생각하는데?' 라는 말이 목끝까지 왔으나.. 내뱉지 않았다. 나와 사귀고 싶지는 않대면서 내 신체를 자기의 영역인 마냥 자국을 남겨버린 그가 무책임한 애송이 같이 느껴졌다.


그날 나는 그의 품에서 잠드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생각해보니 일전에 우리가 나눈 대화에 등장한 동료 여선생이 거슬린다. 여자의 촉감으로 말하건대 아무래도 그가 그녀를 좋아하면서 나를 만나고 있는 것 같았다. 머릿 속이 소란스러워 도무지 잠들 수 없었다. 결국 늦은 밤 떠날 준비를 다 하고, 잠에 취한 그의 귀에 '오늘은 집으로 가겠다'고 최대한 다정하게 말했다. 그는 잠결임에도 불구하고 떠나지 말라며 나를 꼭 끌어안고 놓지 않았다.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록 나를 꽉 끌어안았다. 결국 나는 가지 못하고 그의 품속에서 아침을 맞이 했다. 아침이 되어 우리는 키스를 나눴고, 그 키스는 여태 나눈 키스 중에서도 가장 느리고 진득했다. 그것이 우리의 마지막 키스였다.






한 편의 글로 그와의 만남을 정리하자니 내가 그를 너무 쉽게 만나고 쉽게 끝내버린 것만 같다. 그러나 헤먼트는 내가 이곳에 와 처음으로 진지한 만남을 갖고 싶은 사람이었다. 주말 낮에도 만나 이곳저곳 밖에 돌아다니며 데이트를 하고 싶었고, 여행도 같이 가고 싶었다. 그의 친구들도 소개 받아 같이 어울려보고도 싶었고, 일이 많을 때는 카페에서 각자 노트북 키고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나를 시츄에이션십의 대상 그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 이유가 무엇일지 한참 고민하기도 했었다만.. 그냥 인연이 아니려니 생각하는 것이 최선인 것 같다. 마지막 키스 후, 그가 내게 먼저 연락하지 않은지 2주가 지나자 아쉬운 마음에 내가 먼저 연락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대화는 오래 가지 않았고 결국 내 마지막 메시지는 답장을 받지 못했다.






다음 편은 드디어 매직 트라이앵글의 마지막 꼭짓점 프랑수아에 대해서 소개한다. 프랑수아를 끝으로 필자는 매직 트라이앵글의 실천을 마무리 짓게 된다. 그 이유가 궁금하다면..! 기대해주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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