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판 영국남자 유튜브 스타를 만나다

[제27편] 베트남에서의 마지막 사랑, 조단 이야기

by 하이디함


사실 필자는 이미 베트남에서의 2년 조금 넘은 근무계약을 마치고, 이제는 한국에 들어온지 반년이나 지났다. 돌아온 한국의 일상과는 너무 달랐던 베트남에서의 현란한 과거를 회상하며 글을 쓰는 게 정서적으로 힘들었고, 그러다보니 그간 블로그 작성이 뜸했었다. 이제 드디어 베트남 생활에서의 마지막 연인인 조단 이야기를 쓰게 됐다.


감정은 끝없이 유동적인 것인데 그 순간의 감정을 글자로 박제하고 마침표를 찍은 뒤, 시간이 흘러 다시 그 박제된 감정을 읽어내려 갈 때면 진리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혼돈이 올 때가 있다.



1930년 5월 1일에 작성한 비트겐슈타인의 일기에도 필자와 비슷한 마음의 글이 쓰여 있다.


"어떤 것이 분명해지기까지 나에게는 시간이 유별나게 오래 걸린다 - 이것은 매우 다양한 영역들에서 그렇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는 나에게 늘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분명해진다. 그것은 거대한 안개 덩어리가 걷히고 대상을 볼 수 있게 되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이 시간 동안에 나는 나의 불명료성을 아주 분명히 의식하지도 못한다. 그러다가 나는 갑자기 사태가 실제로 어떠한지를 또는 어떠하였는지를 본다. 그러므로 상당히 신속한 결정들이 내려져야 하는 경우라면 나는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나는 말하자면 한동안 눈멀어 있고,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눈에서 비늘이 떨어진다."



거의 100년 전의 철학자도 우리와 다를 것 없이 변덕스러운 감정과 인식의 상태를 고백한다.


이 블로그의 초안을 처음 쓴 시점, 나는 조단에 대해 이렇게 작성했었다.



"베트남 생활에서 가장 마지막이고, 또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었다."




그것은 사랑이었을까 비닐이었을까?

그때의 마음 속 진리를 찾기 위해 그와의 첫만남을 회상해보겠다.






하노이 서호에서의 삶


호치민에서 베트남 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베트남이라는 국가와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문화를 알아가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다. 그렇다보니 서양인들이 많이 산다는 동부의 2군과 한국인들이 많이 산다는 남부의 7군은 의도적으로 피했고, 그 두 곳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서부의 3군에서 둥지를 틀었다. 반면, '하노이' 하면 호치민과는 다르게 호수가 많이 있는 풍경이 가장 인상 깊게 떠오르기도 했고, 이미 호치민에서 1년 8개월 동안 상당히 진득하게 로컬 경험을 했다고 자부해서, 외국인들이 많이 살기로 알려진 서호(West Lake / Ho Tay),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중앙이자 중심인 꽝안 부근에서 생활하였다. 우리나라로 치면 이태원 근처 한남동 호화촌이라고 볼 수 있겠다.


image.png?type=w1 오른쪽 아래 밀집된 곳이 호안끼엠과 관광 구시가지가 있는 지역, 빨간핀이 있는 곳이 서호 그중에서도 중앙인 꽝안 지역이다.



호화촌인데다가 호수 1분컷으로 까치발을 들면 호수가 보이는 뷰의 깔끔하고 멋진 집이었는데도 집값이 호치민에 비해 무려 월 20만원 더 저렴했다. 그리고 그 집에서 걸어서 5분도 안 되는 거리에 하노이에서 가장 좋아하는 바(Bar)인 '캘리(Kali)'가 있었다. 호치민에서의 최애 루프탑바인 바나나 마마(제15화 참고)와 비슷한데 더 큰 마당스타일이었다. 외국인들이 많이 오고, 새로운 사람들과 대화하며 친해지기에 좋으면서도 주말에는 항상 야외 마당에서 자유롭게 막춤을 추기 좋은 곳이었다. 정기적으로 디제잉하는 사람이 있고, 특별한 날에는 라이브 밴드도 있어서 남녀가 '헌팅'을 하기 위해 가는 곳이라는 느낌보다는 그냥 남녀노소 음악을 즐기러 오기 좋은 곳이었다. 게다가 원래는 지중해 음식 식당이라서 식사를 하러 오는 가족들도 종종 있었다. 필자는 하노이에서 생활하는 동안 거의 매 주말 중 한 번은 이곳을 방문할 정도로 단골이었다. 그 당시 상사였던 부모님뻘 스페인 여팀장님과도, 회사 MT때마다 너무 열정적으로 춤을 춰서 항상 화제가 되는 간디 닮은 인도 팀장님과도 종종 같이 가서 춤을 췄었다. 그날도 인도 팀장님과 직원친구들을 모집해 다같이 몸을 털러 간 날이었다.


누가 봐도 우리는 다른 의도 없이 직장 스트레스를 춤으로 승화시키며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삶을 추구하는 순수한 무리였다. 믿기 어렵다면 우리의 그룹사진을 보여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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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우리가 일하는 곳이 비영리 기관이고, 비영리 목적으로 일을 하는 외국인들이 단체로 술을 마시고 문란한 춤사위를 보였다는 등의 악의적인 뉴스기사가 나오면, 아무리 우리가 순수했다고한들 기관의 명예를 실추할 수도 있으니 최대한 직장 이름을 언급하지 않기로 했다. 혹시나 새로운 사람들이 다가와 우리에 대해 물어보거든 가짜 정체성(이름, 나이, 국적, 직업)으로 얘기하자며 신이 나서 서로의 새로운 이름과 컨셉을 지어주었다. 예컨대 한 40대 중반 베트남 이모직원은 자기가 27세 한국인 인턴이라고 농담으로 말했는데 서양인들의 눈에는 동양인들의 나이를 체감하기가 어려워 정말 그 가짜 정체성을 믿는 사람들이 더럿 있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깔깔대며 자유롭게 음악에 몸을 맡겼다.


여태 설명만 봐도 느끼겠지만 필자는 그간 베트남에서의 생활 중 가장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호치민에서는 악덕 베트남상사와 주거 침입사고까지 겪다보니 처음으로 심리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로 우울증이 있었는데, 하노이에 온 이후로는 오피스 생활도 서호의 생활도 무척 만족스러웠다. 마음이 정화되고 다시 환한 성격이 돌아오면서, 어쩌면 필자는 그 시기에 가장 얼굴에서 빛이 나던 시기였을 수도 있겠다 싶다. 웬걸 직원들과 다같이 있는데도 그날만 무려 총 6명의 남자들이 필자에게 접근해 말을 걸거나 같이 춤출 것을 권했다. 맞다, 자랑이다. 내생에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어서 하나하나 세고 일기장에도 기록했다 허허.








서로의 첫인상


그날 말을 걸어온 6명 중에 내 픽이 조단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조단은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직원친구들과 다같이 단체사진을 찍으려는데 내가 새로운 사람한테 말을 걸고 싶은 마음에 사진 찍어올 사람을 찾겠다고 했다. 캘리 마당을 한 바퀴 쓰윽 스캔했다. 그중에서 가장 흥미로워 보이는 ('가장 잘생긴' 아님 주의 - 너무 잘생기면 파워 E인 필자도 갑자기 낯가리고 부끄러워져서 못다가감..) 사람을 발견했다. 기다란 기린 같았다. 갈색 머리에 서양인 중에서도 코가 유난히 큰 편이라 어쩐지 이스라엘, 세르비아, 아일랜드 국적을 다 섞은 것 같은 비주얼의 얼굴이었다. 상상이 잘 안 된다고? 그럴까봐 조단과 친해지고 난 후, 조단에게 블로그글에 사진으로 넣을만한 닮은꼴이 없냐고 물어봤었다. 그가 알려준 닮은꼴은 알렉스 터너(Alex Turner)다. 그중에서도 필자가 느끼기에 느낌이 가장 비슷한 사진으로 갖고 와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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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별로 안 잘생긴 사진을 갖고 와서 독자들 관심이 뚝 떨어지려나.. 사실 내가 조단을 보고 처음 들었던 인상은 어렸을 적 본 <나니아 연대기> 영화 속 제임스 맥어보이가 연기한 반염소 반사람의 생물과 더 유사하다. 그의 짙은 영국 요크쇼 지방의 억양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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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시피 필자의 이성적 매력기준이 좀 특이하다. 결코 잘생긴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튼 그 반기린 반사람에게 다가가 등을 톡톡 두드렸다.



"저기 죄송한데, 저희가 단체사진을 찍고 싶어서 그런데 제 폰으로 좀 찍어주실 수 있으실까요?"



그가 뒤돌아 필자의 눈을 응시했을 때, 필자는 딱 느낌이 왔다. '끝'. (이거 양궁 오진혁 선수 명대사 말하는거임..) 그의 표정에서 이미 내가 그를 감았다는 것이 확 느껴졌다. 그날 유달리 자신감이 넘치는 하루였어서 그랬던걸까? 조단은 필자의 폰을 받고, 온갖 삼각대 포즈를 취하며 20장도 넘는 사진을 성심성의껏 찍어주었다. 잘 찍지는 않았다. 그날 조단이 찍어준 사진의 필자를 보면 정말 신나고 정신 없어보인다.




그는 사진을 찍어주고 나서도 자신의 친구들에게 돌아가지 않고, 계속 우리 무리에 껴서 같이 춤을 췄다. 그렇게 기린 같이 생긴 사람이 춤을 잘 출리가 없었다. 그런데 필자가 또 확실히 매력을 느끼는 것 중 하나가 노래 못부르면서 춤 못추면서 개의치 않고 열정적으로 부르고 추는 사람이다. (역시나 조금 이상한 매력기준..) 조단이 딱 그렇다. 그딴에는 라라랜드의 스윙댄스 같은 모습을 상상한건지 괜히 손은 살포시 잡아 계속 턴을 시켜서 조금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무한반복 턴을 멈추려 대화를 하다보니 우리 무리가 직장동료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이어 자연스럽게 어느 직장인지 물어봤었는데 내가 꾸물거리다가 비밀이라고 대답하자 그게 또 더 호기심을 자아냈나보다. 그날 조단에게 필자의 첫인상은 '신비롭고도 위험한 북한 간첩'이었다.









출국 직전의 행운


다음날 아침, 숙취를 느끼며 부스스한 상태로 조단에게서 온 메시지 한 통을 확인하고는 아침부터 입이 귀에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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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정체불명의 지나치게 귀여운 비밀 요원님?”




답장을 보내니 조단은 사실 그날 저녁 하노이를 떠나 호치민으로 가고, 호치민에 2주 정도 있다가 자기의 고향인 영국 요크셔에서 두어달 있다고 다시 하노이로 돌아올 예정이라고 했다. 조단은 자신이 떠나기 전, 오늘 오전에 나를 다시 만나 커피를 할 수 있냐고 물었다. 하룻밤의 파티 인연으로 끝내지 않고 나를 더 알아가고 싶어하는 마음이 진귀하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그날은 필자의 또다른 직장동료 네트워크 모임이 예정되어 있었고, 잠정적 연애의 대상 때문에 커리어를 포기할 수는 없었기에 시간을 낼 수가 없었다. 조단이 떠나고 나면 분명 그와의 관계가 이도 저도 아니게 애매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조단은 결국 그날 필자를 만나지 못하고 출국했다.


그런데 그가 영국에서 겨울을 보내면서도 내 생각을 했는지 내 인스타 계정에 올린 기타 연주와 노래영상을 찾아보고 좋아요를 누르거나 종종 자신이 연주한 영상도 공유하며 생각보다 지속적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조단에게는 음악이 그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고, 필자도 음악에 상당한 열정이 있다는 것을 서로의 소셜미디어 계정을 통해서 알아가면서 더욱 재회의 순간을 기다리게 되었다. 그래서 실제로는 한 번밖에 만나보지 못한 조단이 자기와 함께 하지앙(Ha Giang) 여행을 가겠냐고 제안했을 때, 크게 고민하지 않고 그러겠다고 대답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두 달 뒤, 조단은 하노이로 돌아왔다.


돌아오자마자 바로 그 다음날 필자와 저녁 약속을 잡았다. 그날 얼굴을 마주 보고 일대일로 만나 얘기를 하는 것은 처음이었어서 괜시리 뱃속이 꿀렁거리고 떨렸다. 조단은 포근한 하늘색 맨투맨을 입고 나왔는데 그날 그의 홍채가 푸른 빛이라는 것도 처음으로 알았다. 그외 서로가 어떻게 베트남에서 살게 됐는지, 지금은 무슨 일을 하는지에 대해서도 알아갔다. 나에 대한 질문이 어찌나 많은지, 오랜만에 받은 관심에 신나버린 필자는 조잘조잘 얘기보따리를 펼쳤다. 조단은 영어선생님이었다. 디지털 플랫폼을 이용해 온라인으로 가르치기도, 어학원을 통해 오프라인으로 가르치기도 하는데, 베트남에서 흔하고 흔한 외국인 영어 선생님과 다른 게 있다면 영어선생님 자격증을 딸 수 있는 코스를 가르칠 수 있는 자격증이 있어서 영어선생님들의 영어선생님으로서 나름대로 전문성을 갖고 가르치는 것 같았다. 베트남에는 5년 전부터 왔다갔다 살아왔다고 했다. 보통 3개월 터울로 계절에 따라 하노이에 있기도, 호치민에 있기도, 달랏 영어캠프에 가기도, 다시 영국에 가기도 한다고 했다. 베트남어도 수준급으로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어서 영어를 전혀 못하는 베트남 사람과도 대화를 한참이나 주고 받고 통역을 할 정도였다. 그래서 베트남어로 방송도 몇 번 나가고, 베트남어 외국인 유튜브 스타로도 좀 알려졌던 시기가 있었다고 했다.



그는 베트남 전문가답게 하지앙(Ha Giang)도 이미 여러 차례 여행을 가보았다고 했다. 우선 그의 오토바이를 슬리핑 버스에 싣고 슬리핑 버스로 하지앙 버스터미널까지 이동한 후, 오토바이로 하지앙 루트를 따라 이동하며 중간중간 세 네 곳의 숙소에서 머무를 것이라고 했다. 교통, 숙소는 이미 다 예약을 해놨다고 말했다. 그의 전문성과 박력에 감탄했다. 본래 기획 쪽 역할은 필자가 좀 자주 맡는 편인지라 이렇게 몸만 가도 될 정도로 누군가가 나를 위해 생각하고 준비해준 것이 어색하고도 신났다.




Ha-Giang_Loop_Off-tracks.jpg?type=w1 하지앙 루프는 중국 국경 쪽 북서부의 꼬불꼬불한 산길을 오토바이로 쭈욱 한 바퀴 돌고 오는 코스로 유명하다.



며칠 후, 우리는 서로 백팩 하나씩 들고 (오토바이로 이동해야 하니 짐이 많으면 안 됐었다) 여행에 나섰다. 막상 여행을 가려니 갑자기 걱정이 앞섰다. 혹시나 여행도중 서로 기분이 틀어지면 어떡하지? 혼자 돌아갈 수는 있으려나? 또, 여행을 같이 가게 되면 연인의 관계로 꼭 발전을 해야한다는 압박감이 들지는 않을지, 그런데 막상 알아가고 나면 그냥 친구로만 지내고 싶어질 수도 있을텐데 서로 불편해지지는 않을지 등등. 솔직하게 걱정을 얘기하니 조단은 차분한 목소리로 여행 도중 혹시나 언제든 중단하고 싶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안전히 집에 갈 수 있도록 자기가 데려다 줄 것이라고 약속해주었다.



누군가와 같이 여행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혼자 가성비 여행을 많이 다니는 사람으로서 숙소, 교통이나 식사에 민감하지도 않고, 체력도 상당히 좋은 편에 속해 무거운 트레킹 가방을 들고 많이 걸어다니는 것에도 익숙하지만, 어떤 이들은 평상시에는 유둘유둘하다가도, 배가 고프거나 피곤하면 급예민해지는 경우를 꽤 자주 보았다. 조단도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얼마나 기대치가 낮았냐면, 오히려 두 사람이 같이 여행을 갔는데 한 번도 안 싸우고 오는 게 기적일 것이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과연 그 여행은 대재앙이었을지 평생 잊지 못할 선물이었을지 다음 편을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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