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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페 Sep 21. 2020

바람의 방향

통제 불능의 우울증에서 벗어가기

미국 서부는 현재 역대 최악의 산불로 마치 지옥과 같다. 내가 살고 있는 샌프란시스코는 주변 지역에서 난 산불의 연기에 쌓여 몇 주 째 공기가 위험 수준까지 오염이 되었다.


미국 서부에서 산불이 처음 나는 것은 아니다. 나도 약 5-6년 전 여기로 이사 온 후에 여러 번의 산불을 겪었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산불은 점점 자주, 점점 크게 일어나고 점점 오래 지속되면서 통제가 불가능해지고 있다.


내 마음속의 숲도 여러 번 불에 탔다. 우울. 어렸을 때부터 크고 작은 우울감은 있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우울감은 점점 자주 찾아왔고 점점 심해졌고 점점 오래 지속되었다. 한참을 괴롭다 보면 어느새 좀 괜찮아지기를 반복했다. 난 사실 내 감정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내 상황을 몇 년간 그저 외면하고 방치했다. 그 사이 이미 푸석푸석 바싹 말라버린 내 마음속에는 서서히 통제 불가능한 대형 산불이 나고 있었다.


산불에 오염된 공기로 창문 밖 풍경이 전혀 보이지 않았던 날

마치 연기가 머릿속을 가득 채운 것처럼, 난 그 어느 것에도 집중을 못했고 도저히 회사 업무를 진행할 수 없었다. 알 수 없는 불안감과 죄책감으로 잠을 아예 잘 수 없거나 옷 전체가 식은땀으로 푹 젖은 상태로 깨기가 일쑤였다. 마우스피스를 껴도 이를 너무 악물고 심하게 갈며 잠을 자는 바람에 지난달엔 결국 금이 깊게 가버린 어금니 2개에 크라운을 씌웠다. 나 자신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급하게 휴가를 내고 이불속에서 멍때리거나 숨이 헉헉거릴 만큼 울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의욕이 바닥을 치면서 삶이 너무 버겁게 느껴졌다. 몇 달간 아등바등 버티던 나는 결국 우울증 진단을 받고 휴식과 치료를 위해 6주간의 병가를 내게 되었다.


엊그제부터 바람의 방향의 바뀌는 덕에 샌프란시스코의 공기는 기적적으로 다시 맑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산불은 번져가고 있고 비 소식은 없고 바람의 방향도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나도 회사 일을 모두 멈추고 휴식을 취하기 시작하며 다행히 조금씩 안정을 찾고 있다. 내 마음의 이상 신호들을 이제라도 인지하고 심리 상담을 받기 시작하고 회사 일을 잠시나마 멈출 수 있어서 너무나 다행이고 감사하다. 하지만 상황이 언제 또 나빠질까, 난 결국 일상생활을 제대로 못해버리는 건 아닐까 걱정도 한다.


다시 푸른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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