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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페 Sep 30. 2020

우울증 치료를 받기까지의 장벽들

돈과 사회적 낙인

난 미국에 11년 살면서 우울증을 종종 겪었고 최근 5년 중에 2-3번 우울증이 너무 심해져서 회사 일을 잠시 쉬어야 하는 지경까지 갔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두 달 전에 처음으로 심리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왜 그렇게 오래 걸렸을까? 무엇이 나를 막았을까?

1. 돈

한국에 방송대상이 있다면 미국에는 Emmy 에미가 있다. 내가 최근 매우 감명 깊게 본 드라마인 Watchmen 워치멘도 여러 분야의 에미 후보에 오르고 상도 많이 받아 팬으로서 굉장히 뿌듯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워치멘의 작가인 코드 재퍼슨이 에미를 수상하며 본인의 심리 상담가에게 감사의 인사를 보낸 것.

“이안, 당신 덕분에 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어요. 심리상담은 모두가 공짜로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재퍼슨의 수상 소감에서도 예상할 수 있듯이, 첫 번째는 바로 금전적인 문제이다. 심리 상담이나 정신과 상담은 충치 치료와 달리 꾸준히 오랜 기간 동안 해야 한다. 하지만 1회에 10만 원에서 70만 원+ 까지 가는 상담을 누가 속 편하게 받을 수 있을까?

2. 사회적 낙인 / Stigma

몇 년 전, 아름다운 자연 풍경과 동물들로 유명한 미국의 몬타나 주를 여행하며 여기가 놀랍게도 미국에서 자살률 1위라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경쟁이 심하고 바쁘게 돌아가는 뉴욕이나 캘리포니아 등을 제치고 어떻게 이런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하는 것일까? 이유는 정신과나 심리 상담 인프라가 부족한 것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마음이 힘들 때 속 마음을 터놓고 도움을 받는 문화가 아니라서 그렇다고 한다. 마치 한국에서 "남자는 태어나 3번만 울어야 한다"와 비슷한 감수성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우울증 커밍아웃과 심리상담 복지

우리 회사 CEO는 회사 전체에서 진행 중인 프로젝트들을 요약해 전 직원에게 매주 이메일을 보낸다. 매 이메일마다 짧은 이야기를 첨부하는데, 어느 날 본인이 최근 “다시” 우울증에 빠졌고 며칠간 침대 밖을 나올 수 조차 없었다고 고백했다. 예전에도 몇 번 우울증을 심하게 겪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심리 상담을 받기 시작했고 본인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고. 본인의 이메일이 혹시나 우울로 고민하고 있는 회사 동료들에게 힘이 되고, 본인에게 맞는 치료법을 찾도록 영감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마무리했다.

나도 이 당시 우울증에 다시 빠져 제정신이 아니었는데 이 “우울증 커밍아웃” 이메일에 큰 위로를 받았다. 우울증에 빠지면 마치 나 혼자만 도태된 것 같은 죄책감이 엄청 드는데 이 백인 남자 CEO의 고백 덕분에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안심을 했다. 이 이메일 이후로 시작된 8회 무료 심리상담 지원 덕분에 정신이 괴로운 와중에도 치료를 시도해볼 수 있었다.

마무리

픽사 영화의 인사이드 아웃에서 주인공 소녀 라일리가 영화 초반에 슬픔이를 계속 인정하지 않았던 것처럼, 나도 내 우울증을 오랜 시간 억누르고 인정하지 않았고, 우울한 마음을 죄스럽게 생각하고, 그랬기 때문에 치료나 도움조차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난 결국 6주의 병가를 냈고, 2주 반이 지나간 지금, 다행히 상태는 많이 호전되었지만 아직 회사에 다시 돌아갈 자신은 없다. 아직도 우울하고 잠을 못 자고 불안한 순간들이 있다. 8회의 무료 심리 상담이 끝나고, 안타깝게도 이 심리 상담가가 내 건강 보험에 속하지 않는 바람에 난 1회당 220불을 내며 좀 더 저렴한 대안을 찾고 있기도 하다. 심리 상담가가 정신과 의사도 추천해줬는데 이분도 내 보험에 속하지 않아 첫회 상담 비용이 무려 620불. (미국의 건강 보험 체계는 아주 엉망진창이라는 것을 다시 느끼는 순간.)

그래도 병가를 내는 순간 팀원들에게 내 사정에 대해 투명하게 고백할 용기를 얻었고, 너무 놀랍게도 많은 팀원들이 개인 메시지로 응원과 함께 본인이 겪어온 우울증 고백을 해서 큰 힘이 되었다. 무엇보다 내가 드디어 우울증을 치료하려고 노력하고 있어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에 대해 솔직하게 얘기할 수 있는 문화, 더 많은 사람이 우울증을 방치하는 대신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체계가 잡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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