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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페 Feb 06. 2022

계류유산 확정에서 소파술까지

임신 8주 차였던 지난주 금요일, 질초음파 검사에서 심장 소리가 잡히지 않아 유산 가능성을 열어두고, 1주일 후인 엊그제 다시 검사를 받았다. 여전히 심장소리는 잡히지 않고 심지어 태아의 크기도 줄어 유산 확정.


6주 차에 이미 성장이 멈춘 것으로 추정하며 아직까지 자연 배출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약물배출이나 소파수술을 권유받았다. 고민 끝에 아래의 이유로 수술을 결심하고 바로 다음날 수술을 진행하기로 했다.

- 약물은 내가 혼자 집에서 진행해야 하는데 그럴 자신이 조금 없었다.

- 약물을 진행해도 몸에서 완전히 빠져나가지 않을 경우 약물을 더 하거나 수술을 해야 함.

- 가장 큰 이유: 두 번 연속 유산이 일어난 것이어서 수술을 통해 태아 조직을 안전하게 받아 검사를 하고 싶었다.


간호사분께서 친절하게 과정을 잘 설명해주시고 수술에 필요한 피와 소변 검사, 약 등을 준비해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렇게 과정이 많이 있어서 오히려 거기에 집중하고 하나하나 처리하느라 슬플 여유 없이 담담할 수 있었다. 검사를 마치고 수술에 필요한 약을 받아 남편과 집으로 가서 콩나물국을 한 사발먹고 잠이 들었다.


중간중간 괴랄한 꿈을 꾸며 한 2-3번 깨긴 했지만 그래도 아주 나쁜 잠은 아니었다. 아침 일찍 회사 매니저에게 상황을 얼추 알리고 3일 휴가를 냈다. 진행되는 일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대체 인력을 구해두고 팀에게도 알려두고.. 짧지만 정신없이 급한 업무를 처리하고 노트북을 닫아두었다. 며칠간 일 생각은 하지 말고 내 몸에 집중해야지.


점심으로 그린 스무디와 삶은 계란을 먹고 병원에서 지시한 약을 복용한 후 병원으로 갔다. 의사 선생님이 다행히 따뜻하고 친절하셔서 곧 마음이 편해졌다. 긴장하지 않도록 음악까지 틀어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수술 과정 자체는 약 15분 정도로 굉장히 짧았다. 마취도 있고 긁어내고 빨아들이는, 왠지 무섭게 느껴지는 과정이 더해지긴 했지만 여성 건강검진 질 검사와 어느 정도 결이 비슷해 아주 낯설지 않았고 참을만했다. 엉덩이에 한번, 질 안에 한번 마취 주사를 맞았고 몸의 긴장을 풀어주는 알약 두 알을 혀 밑에서 천천히 녹였다. 마취약 때문인지 슬슬 몽롱했다. 수술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단계 진행을 할 때마다 의사 선생님께서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시고 나에게 계속 괜찮은지 확인해주셨다. 마취 덕분인지 신체적인 고통은 별로 없었다. 물론 불편하고 통증은 있지만 참을만하고 워낙 빨리 진행되어 괜찮았다. 대신 단계 하나하나 진행이 되면서 슬픔이 밀려왔다. 간호사께서 주신 핫팩을 배 위에 꼭 잡고 조용히 눈물을 줄줄 흘렸다.


마지막으로 질 초음파를 통해 결과를 확인하고 수술은 무사히 끝났다. 국소 마취를 해서 그런지 몸에 큰 영향을 못 느꼈다. 빈 진료실에서 한 3분 멍하게 있다가 옷을 챙겨 입고 성큼성큼 걸어 1층에서 기다리던 남편을 만나 집에 가서 점심에 미리 끓여둔 미역국을 한 사발 먹고 잠을 잤다.


다음날인 오늘, 생각보다 몸 상태가 좋아서 남편과 함께 집과 가까운 주말 파머스마켓에 갔다. 장을 다 볼 기력은 없어서 난 간식만 사서 집에 먼저 돌아왔다. 막상 집에 오니 힘이 나서 식기세척기를 돌리고 쓰레기통을 비우고 옷장 정리를 하고 침대로 들어왔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몸이 괜찮은데 며칠 지나 몸이 아파지는 경우도 있다고 들어서 무리는 하지 않으려고 한다.


돌아보면 정말 힘들었고 1년 같던 1주일이었다. 유산 확정이 되기 전까지가 사실 가장 힘들었다. 기다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불확실한 상황. 수술받을 때 정말 슬펐지만 한편으로는 안도했다. 다음 임신을 위해 내 몸을 준비한다는 생각. 반복되는 유산의 원인을 파악하고 치료하기 위해 앞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있다는 점에 희망을 갖는다.


처음 겪어보는 일들로 두려움이 많았는데 인터넷을 통해 읽은 계류유산, 소파술, 습관성 유산을 극복한 임신 후기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내 후기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길. 임신을 준비하거나 진행 중인 모든 여성들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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