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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또 Feb 10. 2017

삭막한 우리

스틸, 네덜란드 #6. 무엇이 이렇게 만들었을까요

유난히 밝은 밤이었다. 유럽은, 특히 내가 있는 곳은, 워낙 밤거리에 사람이 없다 보니 가로등마저 빈약했다. 평소보다 유난히 주변이 잘 보이는 듯해서 무심코 하늘을 올려보다 발견한 것이 달무리였다. 보름달이기도 했지만, 그 주변에 살짝 번지듯이 동그랗게 달무리까지 지면서 거리를 더욱더 환히 밝히는 듯했다.


더군다나 그 날은 이 곳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어 몇 안 되는 기분 좋은 날이었다. 사실 그동안 업무 공간에서 핀트가 맞지 않는 친구들만 만나 계속해서 말 수가 줄어들고 있었다. 한국에서도 마음이 맞는 친구, 맞지 않는 친구가 있었음에도, 이를 까먹고 해외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내 부족한 성격만을 탓하며 날 갉아먹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다른 보석 같은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고, 생각 없이 웃으며 즐거운 대화를 마친 하루였다. 사실 그 날 이후로 다시 만난 적은 많지 않아 나를 갉아먹는 짓을 가끔 하고 있기는 하지만, 뭐 일단은. 그 날은 참 기분 좋은 날이었다. 얼마나 웃었던지 광대가 너무 아파 더 이상 웃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런 날 발견한 달무리였다. 간단히 맥주를 마셨던 날이라 취기도 오른 상황이었거니와, 한껏 행복한 기분에 달무리라니. 새삼 몇 년 전 가족끼리 갔던 여름 캠핑 날, 밤 중에 화장실 가려고 잠시 텐트에서 나왔다가 발견했던 달무리가 생각났다. 무심코 쳐다본 하늘에서 지구 반대편에 있을 가족 생각까지 이어지고 나니 저 달무리가 운명의 표식인 양 넋 놓고 쳐다봤다. 추위고 뭐고 생각이 나지 않았다. 집 앞에 자전거를 세우고 조금 걸어가 사진을 찍기 위해 핸드폰을 꺼냈다. 


충동적인 오밤 중에 사진 찍기였지만, 카메라를 꺼내고 보니 오기가 생겼었던 것 같다. 밤하늘을 찍기에는 아이폰 기본 카메라로는 뭔가 부족했고, 예전에 받아둔 유료 수동 카메라 어플까지 켜서 셔터 속도, 감도까지 조절해가며 사뭇 진지하게 찍게 되었다. 그러던 와중에 갑자기 옆 집에서 사람이 나왔고, 나는, 내 기억에는, 그냥 무심하게 한 번 쳐다봤었다. 사람이 나왔네 정도. 그렇게 옆 집에서 나온 남자는 집 앞에 주차된 차를 닦기 시작했다. 급하게 어디를 가야 하는 일이 있는 건지, 대충 옷과 손으로 창가 서리를 닦았다. 그렇게 잠깐 차를 닦다 나랑 순간 눈이 마주쳤다. 그러더니 엄청 당황해하기 시작했고, 양 손바닥을 내게 보인 채 멋쩍이게 웃으며 그 사람이 내게 한 말은, "Don't be scared."였다.


난 그냥 쳐다봤을지 모르지만,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이 나올 때 그리고 눈이 마주쳤을 때 움찔거렸나 잠시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랬을 거다. 워낙 겁이 많은 성격이기에. 집 앞이라 하더라도 밖에서, 밤 중에 갑자기 만난 남자에 몸이 먼저 반응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기분 좋은 날에도 무의식적으로 몸이 겁을 먹다니, 그것도 슬픈데 처음 만난 이웃끼리의 첫인사가 "무서워하지 마."라니. 나도 순간 당황해 그냥 멋쩍게 웃으며 괜찮다는 대답 한 마디밖에 하지 못했다.


그렇게 그 사람은 계속해서 차를 닦았고, 나도 계속해서 사진을 찍었다. 그 사람은 차를 타고 어딘가로 출발했고, 나도 사진을 다 찍고 자전거를 챙겨 집에 들어갔다. 이렇게 예쁜 밤하늘 아래에서의 대화는 왜 그랬어야 했을까. 오늘 달 정말 이쁘죠? 같은 평범한 한 마디, 아니 그냥 평범한 'Hi' 정도라도 나눌 수 없었을까. 왜 나는 이런 평범한 상황에서도 무의식적으로 신변의 위혐을 느끼게 되었을까, 계속 생각이 들었다. 설령 내가 움찔거리지 않았더라도, 그렇다면 그 사람은 어떠한 잠재적 가해자의 오해를 받아왔기에 단순히 눈이 마주친 (동양) 여자에게 멋쩍게 "무서워하지 마"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을까. 생각해 볼수록 모든 경우의 수가 너무 현실적이라 참 삭막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그 사람의 무서워하지 말라는 한 마디에 마음이 놓았던 내가 걸렸다. 

무엇이 이렇게 만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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