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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또 Feb 06. 2017

누군가에게 기본이 된다는 건

일상, 네덜란드 #5. 생활의 기본, 자전거

평범한 회사 점심시간, 영국인 친구 한 명이 복잡한 런던의 대중교통에 대해서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문제가 조금만 생겨도 운행을 멈추는 지하철과, 항상 도로가 꽉 막혀 한없이 느린 버스에 대한 불만이 대부분이었다. 이 말을 듣던 네덜란드인 친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을 했다. "오, 그럼 그냥 자전거를 타면 되잖아? 난 자전거를 타겠어!" 영국인 친구가 질색하며 대답했다. "제발 런던에서까지 자전거를 탈 생각은 하지 마! It's SO Netherlands!"


사실 저렇게 말한 영국인 친구도 네덜란드에선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고 있다. 나 역시도 자전거 없는 생활은 생각하고 싶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네덜란드에는 어떠한 보이지 않는 힘이 있는 건지, 자연스럽게 모든 사람들이 자전거를 기본으로 살아가도록 만들었다.


네덜란드가 자전거 왕국이라는 말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이 곳에서 느낀 자전거 사랑은 건강, 운동과 같은 자잘한 욕구에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이 곳에서 자전거란, 단순한 교통수단을 넘어서서 지금 우리의 스마트폰과 같이 떼려야 뗄 수 없는 물건임이 틀림없었다. 없어선 안 될 생활의 기본.


자전거 도로와 자전거 신호등. 자전거 출퇴근은 일상이 되었다.



자전거여서 불가능한 것은 없다. 처음 왔을 때 가장 놀랐던 점은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두 손 모두 자전거에 헌신하는 사람을 보기는 드물었다. 한 손은 우산을 들고 있거나, 담배를 피우고 있었고, 양 손 모두 놓고 타는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양 팔 모두 핸들에 올려 팔짱을 낀 채 타는 사람을 봤을 땐 경이로움에 감동까지 받았다. 평상복부터 양복까지, 옷차림 역시 다양했는데, 치마나 구두 역시 자전거 타는 것을 방해할 순 없었다. 바람이 부나, 비가 오나 그 날의 날씨 역시 개의치 않았다. 다들 결연한 표정으로 힘차게 페달을 밟으며 누구보다 빠르게 달렸다.


사람뿐만 아니라 자전거 역시 개성이 넘친다. 뒷바퀴에 다는 자전거용 가방은 필수품으로, 비가 오면 가방에서 주섬 주섬 우비를 꺼내 거리에서 입는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아이와 함께 탈 수 있도록 자전거 유모차가 함께 있거나, 유아 좌석 혹은 레이싱 카트가 붙어있기도 하다. 사용과 목적에 맞춰, 그리고 개개인의 개성에 맞춰 자전거 역시 가지각색으로 꾸며져 있다.


가끔 직접 색칠한 개성이 넘치는 자전거를 볼 때면 참 신기하다.


거의 모든 도로에 자전거 도로가 함께 나있어, 어딜 가겠다 마음먹기만 하면 모든 곳을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있다. 도로엔 사람, 자동차, 자전거를 각기 표시하는 세 가지 종류의 선이 그려져 있으며, 횡단보도 역시 세 가지의 신호등이 효율적으로 바삐 움직인다. 더불어 어느 곳에나 주차가 가능한 점도 꽤나 편리하다. 아인트호벤 시내 지하에는 특히 넓은 자전거 주차장이 있는데, 2층으로 쌓을 수 있는 자전거 거치대는 매일매일 항상 빼곡히 꽉 차있다.


이 곳에 도착 후 처음으로 눈이 온 날, 당연하게도 난 위험할 테니 자전거를 타지 않고 걸어서 시내로 나가고자 했었다. 그리고 그 날은 내게 꽤 큰 배움의 날이 되었는데, 네덜란드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자전거가 제일 안전하다는 교훈이었다. 차도도 눈이 조금 쌓여있고 인도도 눈이 얼어 빙판뿐이었지만, 오직 자전거 도로만이 아주 깨끗하게 유지되어 있었다. 많은 자전거들이 지나다니니 눈이 쌓이질 않았고, 난 몇 번 빙판에서 넘어지다가 결국 이 곳에선 항상 자전거가 답임을 깨닫게 되었다.


도심 지하에 위치한 자전거 주차장은 항상 1, 2층 막론하고 가득 차 있다.



이렇게 자전거에 열성인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이 나라 사람들에는 자전거의 피가 흐르고 있나 의심이 가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론 이 곳 역시 수많은 시위를 통해 권리를 주장했었고, 현재와 같은 문화와 환경이 완성되는데 30여 년이 걸렸다. 그리고 이런 문화와 환경으로 새로운 사람들 역시 자연스럽게 자전거를 일상으로 여기게 되며, 좋은 순환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나 역시도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고 어디 나갈 때에도 자전거를 타게 되면서, 사고방식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자전거가 도구가 아닌 기본, default가 되어버린 거였다. 한국에서도 학교에서 자전거를 자주 타고 다녔었지만, 그때에는 환경과 날씨, 그 날의 옷차림에 따라 자전거를 탈 것인가를 결정했었다. 하지만 이 곳에선 내가 변화한다. 비가 오면 내가 모자가 달린 옷을 입고 자전거를 타고, 날씨가 추우면 내가 한 겹 더 껴입고 자전거를 타고, 자전거 타기 편한 옷을 골라 입게 되었고, 매기 편한 가방을 고르기 시작했다.


사실 스마트폰이 그러했다. 너무 추워서 맨 손으로 못 쓸 것 같을 때, 사람들은 안 쓰기보다는 터치용 장갑을 개발했다. 각종 변수와 위험이 나타나더라도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개발되었고 변화하였다. 누군가의 일상에 기본이 된다는 건 생각보다 멋진 일이다. 누군가의 일상이 된다는 건, 24시간 그 자리에 있어 존재감에만 의존하며 소중함을 잃는 것이 아니었다. 오직 그것을 위해 내가 맞춰가며 변화하는 더없이 소중한 일이었다.  


겨울이 되며, 바람도 많이 불고 날씨도 추워져 자전거 타기에 버거워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아침에 춥더라도, '그래. 조금만 달리면 따뜻해질 거야'라 생각하며 페달을 밟는 내 모습은 발견할 때마다 웃기다. 치마를 좋아하던 내가 바지를 사기 시작하고, 매일 아침 날씨를 확인하고 옷을 결정하기 시작했다. 이 곳 생활에서 자전거는 어느새 내게 기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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