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네덜란드 #4. Chit-chat
이곳에 오기 전 내가 가졌었던 네덜란드의 이미지는 '더치 페이' 단어 그 자체였다. 개인적이며 이성 및 합리만을 추구하는 그런 이미지. 실제로 콩글리쉬라 사전에는 없는 단어이긴 하지만, 돈을 나눠내자는 같은 의미의 "Let's go Dutch."라는 문장이 사용되는 것을 보면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이미지이긴 한 듯하다. 처음에는 이런 딱딱한 점들이 적응하기에 가장 큰 어려움이 되지 않을까 상상을 하곤 했지만, 천만에. 오히려 주변 눈치 볼 것 없이 나 혼자만 챙기며 거부감 없이 사회에 적응하기에 참 알맞았다. 오히려 놀라웠던 점은 예상과 다르게 굉장히 친근하고 따뜻한 분위기의 사람들이었는데, 이때 예상치 못한 복병이 나타났었다.
흔히 간단한 대화를 일컫는 Chit-chat. 사전적 의미로도 '중요하지 않은 대화, 사소한 문제를 이야기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이 곳에서의 하루하루 일상 자체가 업무뿐만 아니라 소소하고 다양한 일상 대화로 가득했다. 먼 지구 반대편에서 왔다고 모두들 따뜻하게 날 보고 말을 걸어주었지만, 가끔 투명인간이 되는 상상을 했을 정도로 그 작디작은 대화가 내 적응기에서의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눈치챘어야 했다. 영어 교과서 속 제인과 톰은 지나가다 만나기만 해도 Hi, how are you?를 물어보며 서로의 근황을 물어보고 날씨 이야기를 했다. 왜 이 대화가 평범한 일상이라 생각하지 못하고, 억지로 짜 맞춘 교과서에만 나올 법한 대화로 여겼을까. 현실은 그 이상이었다. 눈만 마주쳐도 날씨뿐만 아니라 정말 다양한 소모적인 이야기를 하는 업그레이드 버전이었다.
지나가다 눈만 마주쳐도 내 안부를 물어보고, 대답하고 다시 물어보고... 순식간에 세네 마디를 넘어 자리에 멈춰 선 채 이야기까지 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매일 아침 오늘의 추움에 대한 적절한 표현을 찾아야 했고, 매주 월요일엔 지난 주말에 내가 뭘 했는지 하루 종일 말하고 다녔다. 밥을 먹는 순간 역시 엄청난 대화의 연속이었고, 주제 역시 시시각각 변해갔다. 지구 상 베리(berry)의 종류가 몇 가지가 되는가와 같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던 사소한 주제들로 간혹 멍하니 벙쪄있기 일수였다. 빠른 대화 속도 역시 시너지 효과를 냈다. 다들 두뇌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누가 한 마디를 하면 그 주제에 대해서 모두가 각자의 이야기를 순식간에 하고 나서 하하하 웃고 다른 이야기로 바로 넘어가곤 했다.
가벼운 대화 조차 못하는 내가 이상했다. 나름 머리는 빠른 편이라 생각했는데, 쉬운 대화도 못따라 가는 것을 보고 내 머리가 둔해졌나 의심도 들었다. 그렇게 죄 없는 내 머리만 다그치다가, 어느 순간 그다지 가깝지 않은 사람과 내 개인적 이야기를 그리고 내 개인적 주장을 말하는 것에 대해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굳이 해야 하나? 저 사람이 궁금해할까? 계속 눈치를 보고, 또 고민해가면서. 입을 열기 전, 말 한마디를 머리와 입을 번갈아가며 소가 여물을 씹듯이 되새김질을 하고 있었다. 내가 내뱉은 말이 내게 독이 되지 않기를. 내가 내뱉은 말이 상대방에게도 얹히지 않기를 눈치를 보고 있었다.
내 입에서 말이 나오질 않았다. 입 안에서 말이 계속 맴돌았다. 입만 벌리면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입을 열기가 너무 힘들었다. 원래 입을 벌리고 있는 습관이 있는 데도 불구하고 입을 앙 다무는 습관까지 생겼었다.
나는 왜 입을 다물게 되었을까. 어릴 때부터 새겨 들었던 '말하기 전 한 번 더 생각하기'를 착하고 성실하게 들었을 뿐인데. 내 말이 실수가 되지 않도록, 틀린 말이 되지 않도록. 상대방이 상처받을 말이 되지 않도록. 나를 너무 드러내서 내가 상처받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고 싶은 말을 되뇌고 되뇌었을 뿐인데. 나는 왜, 언제부터 나를 드러내지 않게 되었을까. 나는 왜 내 주장 한 마디 말하기도 힘들어하는 바보가 되었을까.
되뇌고 되뇌어 머릿속에서 정리한 완벽한 문장은 결코 내뱉지 못했다. 이미 대화의 소재는 바뀐 지 오래였으니까. 내가 계속해서 되새김질을 하는 동안 다들 자유롭게 머릿속에 떠오른 이야기를 바로바로 말했다. 자신의 경험과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말했다. 상대방의 말에 기분이 나빴다면 바로 말을 했고, 이에 진심으로 바로 사과했다. 깊은 자책 속, 내가 나와 상대방을 위한 배려라는 착각 속에서 항상 숨기만 했었구나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고농축 고영양의 말을 준비해봤자 말하지 않으면 소용없었다.
활발한 대화 속 아무 말도 못 하는 나를 직접 대면하게 되는 것은 처음 보는 사람의 발가벗은 몸을 본 듯 부끄러운 일이었다. 나도 모르게 나를 계속해서 겹겹이 숨기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 역시 슬픈 일이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라는 속담을 잘못 알아들어, 그리고 튀는 행동은 이롭지 않다는 무의식 속 억압 속에서, 내가 나를 괜히 드러내는 것에 대해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알고 있었다. 나만의 색을 찾기 위해 요즘 노력하고 있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지만, 날씨와 음식과 같은 사소한 대화에서 조차 내가 움츠려져 있다는 사실은 새삼 충격이었다. 조악한 변명 아래서 계속 숨기만 하다, 나 조차도 나에 대해 간단한 것조차 말할 수 없게 되었구나 깨닫게 되었다.
그동안 가벼운 대화에 대해서는 예전보다 많이 익숙해졌다. 사실 일정 패턴이 있었다. 날씨, 휴일, 혹은 퇴근 후 일정. 예전이라면 깊게 생각해 본 적 없어 대화가 끊겼을 주제마저 세네 문장 대화를 이끌어 나갈 정도로 주관도 생기게 되었다. 어느 정도 농담 따먹기를 하기도 하고, 지나치치 않게 내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하고 있는 나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아직 정식 미팅에서 내 의견 하나 전달하기엔 몇 번의 머릿속 되새김질이 필요하긴 하지만, 이 정도는 나만의 매력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홀로 착각할 수 있을 정도로 당당해지기도 했다.
사실 아직은 생각나는 대로 당당하게 자기 할 말 다하는 이 곳 친구들이, 그리고 문화가 부럽기도 하다. 단순히 내성, 외형적 성격 때문이 아닌, 사소한 것 하나하나까지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점이 부럽다. 하지만 가끔 겪게 되는 무지와 배려가 결핍된 대화를 옹호하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상대방을 배려하고, 좀 더 신중하고 깊은 대화를 하는 나만의 대화 습관을 비관할 일도 아니었다. 이렇게 다양성이 존중되는 곳에서 나부터 나를 존중하는 게 우선이니까. 중앙을 찾으려 한다. 흘러가는 대로 멍하니 있는 순간을 줄여야 다짐했다. 정답이나 다른 사람보다는 내 눈치를 더 보자 다짐했다. 내 의견따위 생각해 본 적 없어 머릿 속이 깨끗해진다던가, 혹은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한 눈치에 의해 다시는 입이 다물어 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