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중 지옥을 맛본 시기

이유 모를 기다림

by 살믄녀행

조리원에서의 2주 동안


우리는 궁금증 투성이었다.


젖병은 잘 무는데 엄마 젖은 잘 못 무는 이유라던가


모유를 먹여도


대체 얼마나 먹은 걸지 모르겠는데


얘가 더 먹고 싶을지 아닐지



전문가분들에게 열심히 물어보곤 했지만


집에 올 때까지 명확한 답을 찾지 못했다.


엄마젖을 잘 못 무는 건 결국 해결하지 못해


빠른 단유를 결정하고 분유로 넘어갔다.



주위에서 항상 조리원이 천국이라며


집에 오면 그때부터 진짜 고생길이 열린다고


하던 말들을 수없이 들어와서


각오는 하고 있었다.


사실 각오했던 것보다 훨씬 수월했다.


먹이고 재우고의 연속이었으며


이를 위해 우리가 먹고 자는 건 크게 양보해야 했지만


우리 둘 다 그렇게 힘들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생후 한 달까지의 그 시간을


심지어 조리원과 병원에서 시간을 때우고 와


고작 한 달 남짓이었던 그 시간이


나와 아내가 꼽는 지옥육아 시절이었다.



저녁 7시 즘


늑대인간이 달을 보고 울부짖는 것처럼


아이는 울부짖기 시작했다.


생 후 한 달도 되지 않은 생명의 소리치고는


꽤나 강해서


부모의 마음을 찢는다. 고막도 그렇고.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에 병원도 가봤지만


‘배앓이’라고 불리는 그것은


특별한 치료법도 원인도 명확하지 않았다.


다만 대부분의 의사들은


‘시간’이 지나면 괜찮다는 말만 했다.



새벽마다 네이버에 배앓이를 검색했다.


시간이 약이다라는 결론 말고는 크게 소용이 없었다.


구글링을 통해 ‘영아 산통’이라는 전문 용어를 알게 되고 관련 논문을 번역해 가며 찾아보기를 반복했다.


그 ‘시간’ 이 지나는 동안 원인도 모르겠고 해결법도 모르겠는 사실 때문에


그 시절이 가장 힘들었다.



분유도 바꾸고 젖병도 배앓이 젖병으로 유명하다는 것으로 죄다 바꿨고 매일 배 마사지를 해주었다.


신기하게도 보름 즘 지나자 그것은 사라졌다.


정말 시간이 약이었는지


우리의 노력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그 시기에 나와 아내는 정말 치열했다.


서로 안쓰러웠고 그래서 서로 미안해했던 것 같다.


그 시기에 우리 부부는 전우애뿐만 아니라


감정적 유대감을 참 많이도 쌓았다.


저 쪼그만 것을 위해


우리가 앞으로 얼마나 똘똘 뭉쳐야 하는지를


익힌 것 같았다.



핸드폰 사진첩을 보면


그 시절 우리는 셀카를 참 많이 찍었다.


후줄근한 옷에 피곤에 절은 얼굴로


아이는 보통 내 배 위에서 자고 있거나


우리 둘 사이에 누워 자고 있거나.


안쓰럽고 고맙고 하는 마음들을


많이도 찍어 놓았다.



그렇게 우리는 지옥을 헤쳐온 사이가 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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