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태어난 후
새로운 가족 한 명분은 족히 될만한 살림들이 자리를 채웠다.
집이 아이를 맞을 자격을 갖춰가듯 나도 다시 일을 시작하며 아비가 될 최소한의 자격을 갖춰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입사한지 3주만에 출산휴가를 썼다.
총 10일의 휴가 중 5일은 병원에서 쓰고
나머지 5일은 2주 간의 조리원 생활이 끝난 뒤
설 연휴까지 붙여 길게 쓰기로 했다.
출산 전 날 생각보다 아내는 덤덤했다.
그래서 나도 빨리 아이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만 하였다.
우리 부부는 아이에게 참 고맙다는 생각을 하였다.
나도 아내도 전 직장을 다니며 일 년 간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했었는데 매번 안찾아오더니
둘 다 지친 직장을 그만두고 3개월의 세계여행을 하고 오자마자 찾아와 준 것이.
마치 엄마아빠 이 정도면 하고싶은 거 다 했지?
이제 만나러 갈게.
하는 것 같아 고마웠다.
출산 당일, 입원 후 출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수술실 앞에서의 짧은 기다림 후 간호사가 아이를 들고 나왔다.
그렇게 나는 아이를 처음 만나게 되었다.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벅찬 감동 그런 건 느껴지지
않았다.
아비로써 아이에게 줄 것들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 정도가 느껴졌다.
오히려 벅찬 감동은 아내를 보며 느꼈다.
무통주사를 달고 제대로 걷기도 힘든 몸으로
아이가 보고싶다며 느릿느릿 발을 떼는
아내의 모습에 순수한 모성애를 직접 보는 것 같았다.
아내는 조리원으로 들어갔고 2주 간 나는 조리원에서 출퇴근을 하며 함께 했다.
짧은 모자동실 시간에 아이는 날 닮아 작은 입으로 젖과 젖병을 쪽쪽거렸다.
아이의 얼굴이 나와 참 많이 닮았다.
1년 전 그만두고 나온 회사에서 하던 일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일을 1년 뒤 다시 하고 있었다.
이번엔 그 일을 싫어하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뭐 나라는 사람이, 취향이 달라졌다던가 조금 더 나은 조직이라던가 하는 문제는 아닌 것 같았다.
그저 나와 똑 닮은 저 작은 것에게 먹이고 입힐 것들을 내어줄 수 있는 아비 노릇을 하게 해준다는 것
그래서 그저 그 일이 고맙다는 생각 하나가 더해진 것 같았다.
이제야 진짜 어른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