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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원재 Oct 13. 2022

한국영화에서 교사와 학생은 어떤 관계일까?

 이 글에는 단지 질문이 있을 뿐, 해답을 제시하지 않을 것이다. 정말 궁금해서 쓰는 글이기 때문이다. 대학원 1학기의 레포트를 준비하면서 영화를 찾다가 든 생각이다. 왜 한국영화에는 교사와 학생의 관계를 심층적으로 검토하고 점검한 영화가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교사와 제자의 관계를 다룬 영화가 아예 없지는 않다. 그리고 내가 모든 영화를 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단정하여 표현하기에도 약간의 어폐가 있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한국인이라면 거의 대부분이 겪는 12년간의 학교 생활에서 선생님은 정말 중요한 타인(Significant other)이다. 감독의 자아 형성 과정에는 분명 교사가 존재했을 것이다. 이 관계를 정면으로 다루는 작품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몇가지 떠오르는 작품이 있다.(이 글에선 오로지 한국영화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다.) 우선 김대승 감독의 <번지점프를 하다>가 떠오른다. 물론 이는 교사와 제자의 관계를 다룬 작품이라고 보긴 어렵다. 잠시 스포일러를 하자면, 죽은 연인의 환생으로 태어난 것이 우연히 서인우(이병헌)의 반 학생이었을 뿐이다. 이 영화는 멜로의 작법을 따르고 있으며 우리가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교사와 학생의 관계를 상정하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이런 영화로는 <동갑내기 과외하기>(과외 선생과 과외 학생과의 관계이지만 끼워 본다.), <여교사>같은 영화가 떠오르기도 한다. 이런 관계는 일상의 '금기'같은 영역을 건드려보려는 시도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선생이고 넌 학생이야"(찾아보니 이 대사는, MBC에서 방영했던 드라마 <로망스>의 대사라고 한다.)라는 대사는 참 에로티시즘적인 부분이 있는 게 아닐까? 


 장규성 감독의 <선생 김봉두> (2003)같은 작품도 있다. 이는 사실 선생 '김봉두'(차승원)의 개인적인 성장 드라마로 볼 수 있다. 촌지를 받던 선생이 강원도 시골의 한 초등학교로 가게 되면서 겪게 되는 일을 다루는 영화로 순수함을 통해 자기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나는 이상하게 이런 뻔하고 평범한 성장스토리를 어릴 때 굉장히 좋아했다. 박중훈, 안성기 주연의 <라디오 스타>같은 영화 말이다.) 눈시울을 붉히게 되는 이 드라마는 어릴적 내 마음에 어떤 교사관을 심어주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 영화도 학생과 제자의 관계를 전면에서 드러내지 않는다. 이 영화의 아이들은 김봉두보다 오히려 성숙하고 어른스러운 존재이고 김봉두에게 어떤 가르침과 깨달음을 주는 존재다. 


 김려령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이한 감독의 <완득이>(2011)를 말하지 않을 수 없겠다. 이 영화는 내가 서두에 얘기했던 교사와 제자의 관계를 전면으로 다루고 있는 영화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를 전면에 내세우기 어려운 것은 교사 이동주와 완득이의 관계를 통해 우리 사회의 약자에 대한 시선, 다문화 가정에 대한 고찰을 시도하고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완득이>는 다문화적 관점에서 비평되어왔고, 그래서인지 완득이의 속성은 사회문화적 관계에서 부여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의 독립영화들은 한국 사회의 학교라는 공간, 학생들의 생태를 고찰하고 문제적 시선을 던지는 작품들이 많았다. 이를테면 윤성현 감독의 <파수꾼>(2011), 이수진 감독의 <한공주>(2013), 윤가은 감독의 <우리들>(2016), 신동석 감독의 <살아남은 아이>(2018) 이 작품은 학교 폭력과 관련한 이야기를 굉장히 깊이 있게 다루고 있는 작품들이다. 이 영화의 거의 공통적인 부분은 교사는 서사의 바깥에 기능적으로 존재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한공주>에서는 성폭력 사건을 유야무야시키려는 교사의 모습으로 등장하기는 하지만, <한공주>의 주된 서사는 '한공주'(천우희)의 시선으로 폭력적인 한국 사회의 모습을 조망하며 그녀가 견뎌야 했을 많은 아픔을 바라보는 것에 있다. 영화속에서 교사는 한국 사회의 일부분으로서 기능적으로만 존재한다. 이외에 열거한 영화들 역시 교사와 학생의 관계가 적극적으로 드러나있지 않다.


 과거 한국 영화에는 학원 폭력과 연관된 코미디가 많았다. <두사부일체> 시리즈 같은 영화는 조직폭력배의 두목이 학교에 다니면서 일어나는 사건을 코믹하게 그리는 작품이었고 이런 흐름에는 이성한 감독의 <바람>(2009)이 가장 호평을 받았다. 굳이 더 얘기해보자면, <화산고>(!)같은 작품도 존재했다. <바람>을 제외하면 진지하게 학교나 학생을 묘사한다기 보다 코미디나 액션의 배경으로서 학교가 선택된 것에 불과하다. 공통적으로 이 영화들의 교사는 폭력적이며, '맞아야 정신을 차린다'식의 교육관을 내재한 교사들이 등장하기는 한다.


 한국 영화 속 교사는 대부분 폭력적이거나 무관심하다. 혹은 서사에 바깥에 밀려나 있어서 어른이 아닌 학생, 아이의 생태계에서 배재된 존재처럼 보이기도 한다. 교사와 학생의 은밀한 관계같은 판타지와 에로티시즘적인 상상이 적용되지 않는 사실적 관계에서 교사와 학생의 관계는 도대체 무엇일까? 교사 출신의 감독이 영화를 찍으면 달라질까? (그런 의미에서 이창동 감독님은 신일고의 선생님이셨지만 아쉽게도 학교 이야기를 담은 영화가 없다. 영화 많이 만들어 주세요.)


 교사도 한 명의 인간이고 생활인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어느 시점부터 하게 됐다. 그것은 아마 내가 학생보다 어른에 가까워진 나이가 되고서부터인듯 하다. 교사는 매일 학생들과 마주한다. 담임 반 아이들, 교과 반 아이들, 옆 반 아이들 등등. 수많은 사람 사이에 둘러 싸인 채 매일 전쟁을 치른다. 내가 원하는 영화는 <풀타임>(2022)의 싱글맘이 고군분투 하듯, 일상이라는 전쟁을 치르는 선생님을 다루는 영화인 것일까? 


 나의 학창시절은 매맞은 기억, 혼난 기억도 분명 많지만 좋은 선생님과 만났던 기억도 존재한다. 분명히 부모님보다 학교의 선생님과 마주하던 시간이 절대적으로 길었다. 학교 다닐땐 집은 들어가서 잠 자는 곳에 불과했으니까. 이때 나는 우리반 담임 선생님을 어떻게 생각했던 것일까? 교사와 학생은 도대체 무슨 관계일까? 그것을 어떻게 하면 영화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런 영화가 어디에 있을까? 그런 궁금증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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