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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현철 Nov 28. 2022

나는 어떤 교사인가?

교직관을 통해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

"여러분은 교직을 어떻게 바라보십니까?" 

예전 사범대학 예비교사 시절, 교직 수업을 들어오신 교수님께서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질문을 들으니 교직관에 대한 것이구나 싶었는데,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질문은 이미 다르게 바라보는 시선의 방향이 있음을 전제한 것이라 나의 관심은 어떻게 바라보는 것들이 있는가에 오히려 먼저 다다랗습니다. 


'교직을 바라보는 관점이라' 좀 더 제대로 설명을 하자면 교사 스스로 교직을 지각하고 인식하는 틀을 말합니다. 인지적인 측면보다 정의적 측면에 더 가까운 태도에 관한 개념인 것입니다. 정답을 먼저 알려드리면 교육학적으로 세 개의 교직관이 존재합니다. 그건 성직자관, 노동 직관, 전문직관입니다. 


교사는 성직자인가?

교사를 세속적인 직업과 달리 구분하여 보는 관점입니다. 교사는 엄숙한 몸가짐과 태도 그리고 직업을 뛰어넘는 사랑과 헌신, 희생과 봉사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예전에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이나 군주와 스승과 부모님은 같다는 군사부일체라는 말이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서양에서는 성직자와 교사는 동일인물이었습니다. 성직자들이 귀족의 자녀들을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교사와 성직자는 동일시되었고 사람들의 기대 또한 교사에게 성직자에 준하는 윤리적인 기준을 바라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성직자관은 교사 외부에서 인정해줄 때 오히려 가능합니다. 교권이라는 것이 사회가 부여할 때 비로소 제 힘을 발휘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솔직히 지금은 교사를 성직자로 보기 어렵습니다. 일차적으로 교사 스스로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높은 윤리 의식과 기준을 적용하지 말아 달라고 주장합니다. 일부 종교적인 소명을 가진 교사가 분명 존재하지만 앞으로 이러한 생각은 점차 확대될 것입니다. 


교사는 노동자인가?

교사는 학교와 근로계약 관계에 있습니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일을 제공하고 이에 대한 보수로 생계를 유지합니다. 이렇게 보면 영락없는 노동자가 맞습니다. 요즘 주변 교사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노동직관을 가진 교사들이 꽤 많습니다. 노동자의 일차적인 관심은 노동 조건과 고용 조건입니다. 사실 교원이 노조활동을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합법적 지위를 얻은 것은 더 근래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교사를 단지 월급 받고 지식을 파는 근로자로 보는 것은 마음 한구석이 허전한 일입니다. 교사와 학생의 관계는 단지 지식의 전달 외에 보다 높은 차원의 인격적인 관계인 경우가 많습니다. 당장 제가 그렇습니다. 학생 머리 하나하나를 돈으로 보지 않습니다. 학생과 직접 관계된 일은 근무 시간을 따지지 않습니다. 새벽이건 저녁이건 몸이 먼저 나갑니다. 주말에도 공휴일에도 학생과 관계된 일이라면 마다하지 않습니다. 근무시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교사는 전문직인가?

교사를 전문직으로 보는 관점도 있습니다. 일단 전문직이라는 것에 대한 정의가 필요합니다. 전문직이란 보통 전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일하는 직업을 일컬으며 사회통념상 전문가와 거의 동일하게 이해됩니다. 일명 '사'자 직업들을 말합니다. 전문직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일정기간의 교육 훈련이 필요하며, 자격을 증명하는 자격 기준이 있어야 하고, 정기적인 재교육 또는 자기 계발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교사는 이러한 기준을 충족한다고 보십니까? 일단 교사들은 전문직으로 인정받기를 원합니다.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교육대학 및 사범대학에서 일정한 교직을 이수해야 하고 임용을 위한 자격시험을 치러야 하며, 교원자격증이라는 것이 분명 존재하니까요. 그런 측면에서는 당연 전문직이 맞습니다만 전문직이라면 그 전문 능력에 걸맞은 보수체계가 지원되어야 하지만 급여의 면에서는 교사의 전문성이 인정된다고 보기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솔직하게 제 입장을 말씀드리면, 저는 어떤 교직관 하나를 고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너는 성직관이냐 나는 노동자관이다. 전문직관은 누구냐 하는 방식으로 서로 배타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축구공의 서로 다른 모습처럼 결국은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교직에는 성직자적인 요소가 분명히 있습니다. 학생들을 사랑하는데 조건이 있을 수는 없는 일이지요. 어떤 순간에는 정말 저를 힘들게 하는 학생을 보며 고통스러워하다가 그 아이의 숨겨진 배경을 알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정말 나에게 독한 모습이더라도 그 이면에 상처받은 어려운 사정을 알고 나니 이전보다 초월적으로 그 아이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마치 운명 같은 느낌입니다. 나 스스로도 '멋진 교사다'라고 감격할 정도입니다. 그런 순간은 지나갔거나 지금이거나 또는 아직 오지 않았을 뿐 분명 옵니다. 이런 교사들은 분명 성직자에 가까운 모습이 아닐까요?


그러나 대부분의 일상에서는 노동자에 가깝습니다. 출근시간과 퇴근시간에 매여있고, 업무와 책임이 뒤따릅니다. 직무만족도 모형에 따라 더 나은 근무조건을 향해 투쟁합니다. 여기에는 최소한의 인간적인 것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성직자처럼 아무 대가 없이 무조건 베푸는 사랑이 불가능한 이유입니다. 우리도 먹고살아야 하는 사람인 걸요. 


또 전문직의 요소도 분명 있습니다. 저는 학창 시절 선생님이 되면 시험은 더 이상 안쳐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왠 걸요. 저는 여전히 시험을 치고 있습니다. (매년 의무적으로 들어야 하는 직무연수를 포함하여 기타 등등의 평가 말입니다.) 이렇게 시험을 많이 치는 직업이라니 그건 그만큼 자기 계발과 성장을 중요시하기 때문일 겁니다. 또한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회에 맞추어 적합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퇴직할 때까지 책을 놓을 수 없는 운명입니다. 


이 세 가지의 측면이 모두 교직의 본질 아닐까요? 세 가지의 성격이 혼재하는 복합적인 존재. 세 가지의 특성이 모두 동일한 비율로 교사에게 존재하지는 않겠지만 한 가지도 없는 교사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을 16개의 유형으로 나누었다는 MBTI와 흡사하게 성직자 우세형, 노동자 우세형, 전문직 우세형 같은 표현이 더 적합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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