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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현철 Dec 13. 2022

돌돌말이 주먹밥

너의 이런 적응력 칭찬해

특수학교에 근무하면서 아이들에게 가장 가르쳐주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고민할 때가 있습니다. 물론 가르쳐야 할 것은 무궁무진하게 많습니다만 이것 하나만은 꼭 배웠으면 좋겠다는 것이 있겠지요. 어쩌면 그것이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필수요소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학생 또는 자녀가 단 한 가지만 배울 수 있다면 무엇을 가르치고 싶으신가요? 


어제 급식시간에 있었던 일입니다. 옆자리에 앉은 L이 무엇인가 열심히 하고 있는 게 보였습니다. 뭘 하고 있나 궁금했는데 나중에 보니 도시락 김을 이용해서 주먹밥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유인즉슨 오늘 나오는 반찬이 자신이 먹지 않는 (또는 알레르기나 비 선호등의 이유로) 것이어서, 도시락 김을 요청해서 받은 후 주먹밥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놀란 포인트는 세 가지입니다. 


받아들이기

우선 첫 번째 - 대부분의 아이들은 싫어하는 반찬이 나오면 점심을 거부하거나 그대로 잔반통에 버립니다. (일부 아이들은 짜증을 내기도 합니다. 간혹 식판을 하늘에 날리기도 하지요.) 하지만 L은 급식을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마치 급식이란 내가 좋아하는 게 나올 때도 내가 싫어하는 게 나올 때도 있다는 것을 통달한 것처럼 말입니다. 


정확한 요구 말하기

다음으로 정확한 요구입니다. 우리 급식실에서는 급식 메뉴가 마음에 안 드는 경우를 위해 도시락 김을 준비해두고 있습니다. 대략 생선을 안 먹는 저 같은 경우는 생선 메뉴가 나올 때 생선을 받지 않고 도시락 김을 받는 것 같은 방법입니다. L은 그 점을 정확하게 알고 영양사 선생님께 도시락 김을 당당히 요청하여 받았습니다. 


적응하기

마지막으로 비록 자신이 좋아하는 반찬은 아니지만 도시락 김을 이용해 주먹밥을 만들기로 한 것입니다. 그냥 김과 밥을 먹을 수도 있는데 어떻게 주먹밥을 만들 생각을 했을까요? 어쩌면 배식된 밥을 다 먹기에 도시락 김이 부족했기 때문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작은 도시락 김은 10장 내외, 10장으로 배식된 밥을 다 먹을 수는 없는데 10장 내외의 김으로 주먹밥을 만들어보니 딱 4알의 주먹밥으로 김과 밥을 완전히 소비하였습니다. 


맛있게 먹는 L을 보면서 이 정도의 적응력만 있으면 어디서든 잘 적응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은 적응력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예측이 어렵습니다. 물론 많은 부분 우리의 생각대로 흘러가기는 하지만 변수는 항상 있기에 마련이고요, 그런 변수가 생길 때 우리 아이들은 대부분 거부를 온몸으로 나타내기도 합니다.  그럴 때 이렇게 받아들이고, 자신의 요구를 말하고, 적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때까지 특수교육의 목적과 방향은 늘 자립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급식실 옆자리에 앉은 L을 보면서 어쩌면 자립으로 가는 다리가 적응력이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인지발달의 전문가였던 피아제는 인지의 불균형이 발생할 때 지식의 폭이 늘어난다고 했습니다. 아이는 인지의 평형을 항상 추구하는데, 이때 동화와 조절이라는 능력이 작용합니다. 인지의 불균형이 발생하지 않으면 동화와 조절도 없으니 당연히 발달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적응할 수 있는 
상황 만들기


우리 아이가 싫어하는 것, 불편해하는 것, 못 견디는 것이 있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아이의 인생에서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고 하면 지금 당장의 평화를 위해 그것을 억지로 제거하기보다 차라리 내가 조절할 수 있는 범위에서 불균형 상황을 제시하여 아이로 하여금 익숙해지도록 하는 것 그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체계적인 둔감화(아주 작은 자극으로 쪼개어 불편한 자극을 조금씩 늘려가며 둔감화 하는 방법)의 차원에서 고려된 방법으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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