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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현철 Dec 07. 2022

너의 신발이 가지는 의미

닳지 않는 너의 신발을 바라보며

오늘 아침에 등교하는 T를 보다가 눈에 띄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하얗게 빛나는 새 운동화입니다. 안부차 어머님께 메시지를 보내드립니다.


"어머니, T 새 신발 신고 등교했네요 :-) "

"네, 선생님 전에 신던 신발이 작아져서 새 신발을 샀어요.". 그러면서 이어 말씀하십니다.

"T가 이전에 신던 신발은 가방에 보냈는데요. 혹시 더 어린 친구들 중에 발이 맞는 아이 있으면 살짝 전해주세요. 신던 신발이기는 하지만 새 신발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가방을 열어보니 새 신발 상자에 고이 담은 이전 신발이 보입니다. 들어 살펴보니 바닥도 깨끗한 새 운동화입니다. 한 번도 땅을 디딘 적이 없는 새것 말입니다. 그럴 수밖에요. T는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뇌병변 장애를 가진 아이거든요.




혼자 새 신발과 T의 발을 번갈아 바라보다 생각에 잠겼습니다. 우선, '신발을 왜 신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보통 신발이라고 하면 땅을 딛고 서거나 걸을 때 발에 신는 물건을 통틀어 이릅니다. 재료는 다양하지요 가죽, 고무, 비닐, 헝겊, 나무, 짚, 삼 따위로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물론 용도에 따라 모양도 가지각색입니다. 구두, 운동화, 러닝화, 부츠, 방한화, 등산화, 안전화 등등 말입니다. 그러나 목적은 하나같이 걷거나 뛸 때 발을 보호하기 위하는 용도입니다.


이런 생각해보신 분이 있을까요? 당신은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의 발을 본 적이 있으신가요? 아마 인식의 범위를 벗어났기 때문에 기억조차 하지 못하실 수 있습니다. 부끄럽게도 저도 그렇습니다. 휠체어를 타는 아이들은 주변에 종종 있지만 그 아이들의 발은 한 번도 보지 못했네요. 일시적으로 휠체어를 이용하는 분을 제외한다면 이들은 평생 걸을 일이 없을 테니 굳이 신발을 신어야 할까요? 당신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장애인 정상화의 개념

장애인에 대한 인식은 고대로부터 부정적인 것이었습니다. 완전한 사회(?)로 가는 길을 막는 장애물로 여겨졌습니다. 중세에 들면서 기독교적 세계관에 따라 구제와 보호가 시작되었습니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등 장애인식에 미친 많은 이들이 있었습니다. 장애인복지의 전환점이 된 계기는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입니다. 전 세계에 수많은 부상자들로 인해 장애인의 수는 급격하게 늘었고, 이들 중 상당수가 국가유공자이기 때문에 국가적인 차원에서 지원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각국에서 장애인 고용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와 비슷합니다.  

 '정상화'의 개념은 이때 등장하였습니다. 정상화라는 말은 '정상적인 상태가 됨, 또는 그렇게 만듦'을 의미합니다. 장애인에게 결핍된 부분을 지원함으로써 가능한 정상적으로 (또는 정상적으로 보이도록) 하겠다는 생각과 태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상'이라는 범위를 어떻게 정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상은 어떤 상태인가요? 정상분포 곡선에 따라 상위 1.5 퍼센타일 하위 1.5 퍼센타일을 제외한 중간범위의 97%를 말하는 것인가요?

 저는 세상의 모든 사람이 정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전 세계에 유일한 존재인 나'라고 하며 자녀들의 존재감, 자아존중감을 높이도록 합니다. 그런데 모두가 다른 사람인데 왜 일부 다른 사람에게는 다름을 강조하는 것일까요. 특수교육에 대한 효율성 문제도 같습니다. 어떤 이들은 특수교육에 이렇게 투자하는 비용이 적당 하냐를 시비합니다. 사람은 저마다 고유하고 소중한 존재입니다. 우리 이 대전제를 잊어버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대전제 아래 모든 것이 조화롭게 진행됩니다.




휠체어를 타는 자녀의 신발을 고르는 어머님의 마음을 생각해봤습니다. 그분은 어떤 마음으로 아이의 신발을 골랐을까요? 휠체어를 타고 신발 매장에 들어갔을 때 매장의 직원은 어떤 마음으로 신발을 판매했을까요? 여러 생각이 교차하는 저녁입니다. 아마 어머님의 상상 속에서는 T가 이 신발을 신고 마음껏 뛰어다니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그렇지 않다고 해도 예쁘게 차려입은 T의 모습에서 양말만 신고 있는 모습은 어울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신발까지 예쁘게 신은 모습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웠을 것입니다.


T의 신발이 휠체어를 타는 사람도 다르지 않다는 메시지로 다가왔습니다. 비록 땅에서 닳지는 않지만 발에는 신발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모든 것이 그냥 자연스러운 일로 여겨지기를 바랍니다.


저는 하고 싶은 일이 생겼습니다. 이다음 T가 더 자라 다음 신발을 사야 할 때가 되면 제가 신발을 한 켤레 선물하고 싶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T야
다음 신발은 선생님이
사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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