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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현철 Aug 27. 2023

비행의 품격

T는 이해할 수 없는 F의 생각들

드디어 바르셀로나로 출발하는 비행기가 눈에 들어온다. 인천공항에는 워낙 대형 여객기가 많아서 그런지 3-3-3열의 항공기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크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국내선 비즈니스야 몇 번 타보았지만, 국제선에는 게이트부터 다르다. 같은 비행기지만 입구부터 완전 다른 제대로 된 설국열차임을 다시 한번 느낀다.

비행준비중인 대한항공 951편

인천에서 바르셀로나까지는 12시간 50분이 소요된다. 그야말로 순수하게 비행시간이 그렇고, 그 외 대기시간을 포함하면 대략 기내에 14시간 정도는 있어야 한다. 지난번 파리로 향했던 여행도 그러했고, 이번에도 중국 영공 통과를 위한 허가가 나지 않아 탑승 후 꼬박 한 시간을 기내에서 대기한다. 매일 운항하는 여객기임에도 왠지 갑질 같이 느껴지는 건 왜인지, 땅덩어리가 이렇게나 크니 내 하늘을 지나지 않고는 아무도 못 가, 뭐 이런 식의 갑질 같은 생각에 조금 불편해졌다. 하지만 불편하다고 가지 않을 수 없는 일, 허락에 감사하며 조용히 중국 위를 지나간다.

대한항공 951편의 운항경로

모니터에 표시된 운항 경로를 보니 대륙을 그대로 가로지르는 듯하다. 파리나 런던은 시베리아를 지나는 노선으로 갔었던 것 같기도 한데, 이베리아 반도의 스페인은 이렇게 가로지르는 경로가 더 나은가 보다. 14시간을 기내에서 견디는 일이란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일까 기내에서 여러 유형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때로는 불쾌감을 주는 일도 있다. 의도하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 좁은 공간을 서로 나눠 쓰는 일은 어쩌면 배려가 필요한 부분일지도 모르겠다. 배려란 나보다 남을 조금 우선하는 일인데, 요즘 말로는 좀 바보스러운 일로 여겨지기도 하더라.


비행의 즐거움, 기내식

비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은 기내식이 아닐까? 배고픔을 달래는 일은 당연하고 지겨운 비행을 조금이나마 즐겁게 할 수 있는 요소가 된다. 바르셀로나행 대한항공의 기내식은 두 번 제공되는데 첫 기내식은 비행 후 1시간 이후 안정고도에 진입한 후 그리고 다시 한번은 착륙 2시간 전 착륙준비를 하기 전에 제공된다.. 첫 번째 기내식은 앞쪽에서부터 서비스되었다면, 두 번째 기내식은 뒤에서부터 서비스되면서 애매한 균형을 맞추고 있다.

대한항공 기내식 낙지 덮밥

예전부터 대한항공에는 비빔밥이 맛있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이제는 더 안 나오는 건지 아니면 바뀐 건지 낙지덮밥이 나왔다. 매콤한 것이 당길 때가 있더라. 지체 없이 떨어지기 전에 낙지덮밥을 선택하고 받았다. 고추장이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낙지볶음의 양념을 소스로 삼아 각종 야채와 함께 슥슥 비볐다. 야채도 나름 풍부하고 맛도 괜찮았다. 반찬과 후식까지 남김없이 맛있게 먹었다.


비행 중에 제공되는 간식

기내식 외에 제공되는 간식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로는 주류. 기내에서는 주류가 무료이면서 무제한이라 주류를 요청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물론 나는 음료를 주문할 수 있다. 하지만 콜라나 주스는 먹는데 한계가 있어, 여러 잔을 먹을 수 있는 와인 또는 맥주와는 상대가 불가하다. 왠지 건너편에서 여러 번 맥주를 먹는 아저씨에게 진 듯하다.

대한항공 기내간식 치킨 주먹밥

이번에 처음 먹어본 주먹밥이 서비스되었다. 꼭 삼각김밥의 모양과 비슷한데, 김은 없고, 똘똘 뭉쳐있다. 삼각김밥의 김을 뜯는 방법에는 꽤나 높은 내공이 필요하기 때문일까 포장은 그냥 종이로 뜯기 쉽게 되어있고, 받침으로도 사용한다. 음, 그런데 꽤 맛있다? 기내에서 먹어서일까, 아니면 잘 만들어진 걸까 고민하며 맛있게 먹어본다. 시중에서 판매를 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잠깐 했지만 단가나 유통에 관련해서 승산이 없기 때문에 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면 생각의 꼬리를 자른다.

대한항공 기내간식 치킨 주먹밥

주먹밥과 함께 샌드위치도 제공되었는데, 워낙 주먹밥의 인상이 강렬해서 기억되지 않았다. 샌드위치가 존재감이 부족했던 것은 아니다. 앞자리 앉은 승객은 계속해서 뭔가를 요구한다. 주먹밥도 하나를 순식간에 먹고서 하나를 더 달라고 한다. 그렇게 두 개를 먹어치우고는 다시 승무원에게 하나를 더 달라고 했는데, 수량이 부족하다는 답변을 듣게 되었다. 하지만 대신 샌드위치를 더 드릴까요? 하는 승무원, 아마도 교육을 그렇게 받지 않았을까? 고객이 기분 상하지 않도록, 괜히 승무원이 조금 불쌍해 보였다.


컵라면이 있고 없고

아 그리고 컵라면이 제공된다. 비행 라면에서 대해서는 돌아다니는 썰이 다양한데, 어느 대기업의 임원이 ‘라면 다시 끓여 와’를 여러 번 했더라는 이야기부터 라면으로 이어지는 갑질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물론 기내에서는 라면이 서비스된다. 이코노미의 경우 컵라면이 제공되고, 비즈니스와 일등석에는 끓여주는 라면이 제공된다고 하더라.

대한항공 기내에서 제공되는 컵라면

나도 첫 번째 기내식 이후 영화 한 두 편을 보고 잠깐 잠을 잔 후 허기를 느껴 컵라면을 주문했다. 제공되는 컵라면은 신라면이다. 한국인의 매운맛. 신라면. 나는 너구리 파라 신라면을 잘 먹어보지 않았는데 기내에서 먹게 되니 맛있구나. 컵라면과 관련된 썰은 승무원들에게도 존재하는데, 승객 중 누군가 컵라면을 처음으로 주문하면 ‘올 것이 왔다’라고 여겨진다는 것이다. 그것도 그럴 것이 첫 컵라면을 끓여 주문한 손님에게 제공하고 나면 그 강렬한 향기가 주변에 펴지면서 컵라면에 대한 욕구를 자극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 컵라면 하나를 제공하고 나면 돌아오는 길에 2개 이상의 주문을 받게 되고 2개를 제공하고 나면 돌아오는 길에 4개를 주문받은다는, 그래서 결국은 기내의 절반 이상의 컵라면을 먹고 있는 사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그 처음 인간은 되고 싶지 않아 조금 참았다가 그 처음 인간에 의해 자극이 되어 어쩔 수 없이 주문하는 두 번째 인간이 되기로 했다. 물론 첫 컵라면 이후 기내에는 무수한 컵라면이 주문되었다.


새우깡 있나요?

14시간은 비행은 생각보다 길어서 기내식을 먹고, 간식을 먹고, 컵라면을 먹어도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그리고 유럽으로 향하는 비행은 주간비행인 데다, 태양을 등지고 가는 비행이라 시간의 이득을 보게 된다. 다시 말하면 10시에 출발한 비행기가 12시간을 비행했다면 22시가 되는 게 정상인데, 우리가 태양을 등지고 비행하기 때문에 도착했더니 17시라는 것이다. 즉 출발지와 도착지에 시차만큼을 이득 보기 때문에 오늘 하루는 24시간이 아니라 31시간을 사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혹자는 이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비추어 영원히 서쪽으로만 비행하면 타인보다 더 많은 물리적 시간을 살 수 있다고 하기도 했다. 나는 문과라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흥미는 있었다.


기내에서 새우깡을 준다는 말은 들은 적이 있어. 틈을 내어 지나는 승무워에게 물어보았다. “저기, 새우깡 주실 수 있나요?” 그랬더니 원래는 맥주와 같이 먹을 수 있는 간식으로 준비했는데 지금은 제공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면서 ”혹시 감자칩은 있는데, 그것으로 드릴까요? “라고 묻는다. 콜라와 함께 제공해 달라고 하니 친절히 가져다준다. 짭 자름하니 맛이 괜찮다. 이래서 비행기는 국적기를 타야 하나 보다.


비행의 품격은 어디서 나오는가

작은 공간을 서로 나눠 사용하는 비행기. 이 비행기에서 품격이 없는 사람을 만난다면 그건 참 불행한 일이다. 그야말로 복불복인데. 복불복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어쩌면 기도해야 할 부분이라고 할만하다. 내 앞자리의 승객은 품격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 증거 첫 번째, 기내에서 내 좌석을 아래공간은 내 것이 아니다. 그건 내 뒷자리의 사람을 위한 공간이다. 그럼 나의 공간은 어디일까? 마찬가지로 앞 좌석의 아래 부분이 나의 공간이 된다. 그런데 이 사람. 타자마자 신발을 벗어 자리 좌석 아래에 넣고는 자기는 앞 좌석 아래로 발을 뻗어 넣는다. ‘엥?’ ‘오늘 잘못 걸렸군’불길한 예감이 스친다. 직접 이야기할 수 있지만 승무원을 통해 간접적으로 이야기한다. 이야기를 알아들었으면 뒤로 살짝 고개라도 까딱하는 게 맞을 텐데 그냥 신발을 뺀다. ‘그래 그거라도 어디냐’ 앞자리의 여자, T가 분명할 것이다. 증거 두 번째! 기내의 좌석은 등받이 조절이 가능하다. 가동범위는 약 15도? 그런데 내 등받이지만, 뒷 자석에게는 테이블이자 화면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면 좋았을 것을. 이착륙을 제외하고 공식적으로 기내식 제공할 때는 등받이를 바로 세워야 한다. 그런데, 식사가 마치지 마자 등받이를 최대로 눕힌다. 비행기 좌석의 특성상 부드럽게 움직이지도 않고 덜컹하는데, 그냥 버튼을 누르고 힘을 가해 최대한으로 넘기자라는 마음이 나에게도 느껴졌다. 물론 그 범위는 앞 좌석 승객에게 주어진 권리이기도 하다. 그 권리를 부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뒷 좌석의 승객을 고려해서 최소한으로 등받이를 넘기고 그 또한 뒷 자석 승객이 화면을 보고 있는지, 무엇을 먹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살살하자는 것이다. 당연히 등받이를 넘기면 나는 편하겠지만 뒷 좌석 승객은 불편할 테니, 하더라도 최소한으로 하고 불편하지 않으면 내가 좀 참아보자는 생각이다. 이게 바로 F의 사고. 이 바쁜 세상에서 다른 사람까지 어떻게 신경 쓰고 살아? 다 각자 알아서 하는 거 아니야 하는 게 바로 T적인 사고. 맞고 틀리고의 문제는 당연히 아니고 F 된 입장에서 T를 만난 것이 그저 아쉬울 뿐이다. T는  앞자리에 더 강한 T를 만나봤으면 좋겠다.


두 번째 기내식을 먹고 나니

두 번째 기내식은 착륙 2시간 전에 서비스된다. 보통 국제선의 경우 착륙준비를 1시간 전부터 하기 때문에 2시간 전에 기내식을 제공하고 정리까지 마치고 착륙준비에 들어간다. 두 번째 기내 식이 닭고기 요리와 스파게티 중에 선택이었는데, 이번엔 확신이 들지 않아 아내와 하나씩 시켜보기로 했다. 결론은? 닭고기보다는 스파게티인 걸로 (이것도 지극히 사적인 견해임을 잊지 않으시길) 이때쯤 보니 끝이 없을 것 같았던 비행에도 끝이 보이면서 희망이라는 게 생기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장거리 비행을 이야기하면서 정말 이제 죽겠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 도착한다고 했는데, 다행히 나는 죽겠다는 정도는 아니었다.

비행 중에 진상고객도 분명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나의 비행에서는 최소한 진상을 만나지 않은 것은 참 다행한 일이다. MBTI를 빗대어 이야기를 했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비행에는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배려란 상대방이 느낄 수 있는 나의 태도로 적어도 불쾌감을 주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과도한 자기 침해가 있어서는 안 되겠지만 최소한 일하는 승무원에 대한 배려, 뒷좌석 승객에 대한 배려가 있었으면, 서로 뒷자리의 승객을 배려하면 나도 누군가에게 그 배려를 분명히 받을 것인데, 그렇게 서로 돕고 사는 아름다운 세상이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이 또한 지극히 사적이 ENFJ의 생각임을 참고하시길, 나는 아직도 모두가 행복한 이상향의 세상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도착 30분 전


눈앞에 다가온 이베리아 반도

어느새 바르셀로나가 눈앞에 다가왔다. 이제 30분 후면 바르셀로나에 도착한다. 1년에 360일 화창하다는 태양의 나라 스페인. 그 안에서 만나게 될 많은 이야기와 사람들이 기대된다. 바르셀로나에서는 4일을 머무는데, 안토니오 가우디에 대한 내용이 그중 5할이다. 그만큼 많이 기대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사그리다 파밀리아, 까사 바뜨요, 까사 밀라, 구엘공원 그리고 천년의 수도원 몬세라트까지 꼼꼼하게 보고 느끼고 싶다.

스페인 공항에 도착한 대한항공 951편

어느새 공항에 도착했다. 바깥을 보니 살짝 비가 내린 것 같다. 스페인이라는 큰 글자가 있기를 기대했지만 분명 이국적인 풍경임에 분명하다.

바르셀로나 공항에서 수화물을 기다리며

입국의 절차와 심사를 마치고 공항에 나와 수화물을 기다려본다. 수화물까지 잘 도착하는 것이 비행의 완성인데, 간혹 사람은 잘 도착했는데 수화물이 안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 살짝 긴장해 본다. 수화물 벨트가 돌기 시작하고 각양각색의 짐들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짐이 섞이지 않도록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게 희한한 표시들을 달아놓았는데, 우리도 얌전하게 작은 표시를 해놓았다. 꽤 시간이 흘러 ‘어. 왜 안 나오지?’ 생각이 들 때가 되니 우리 가방이 하나 보인다. 조금 안도. 그리고 나머지 수화물도 잘 도착했다.

바르셀로나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기

이제 마지막 남은 목표는 호텔에 잘 도착하기! 여행은 이동의 연속인 듯 하나의 미션을 해결하고 나면 다음 미션이 어김없이 주어진다. 그 미션을 해결하고 나가는 것이 여행의 참 맛일 듯. 어느새 많았던 한국 사람들은 사라지고 우리만 남았다. 이 사람들의 삶 속으로 들어온 것이리라. 너무나 당연한 이들의 삶의 자리에서 머나먼 타국의 이방인으로서 며칠간이지만 함께 삶을 맞대어보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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