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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연 Dec 09. 2022

꼬따뚜아에서의 하루

어느날의 관광객 놀이 


 자카르타에서 살기 시작한 처음 1년은 관광객 그 자체였던 시간이었다. 어딜 가든 처음 보는 낯선 풍경이었고 신기한 외국문화의 경험이었던 그때의 일상은 지금의 단조로운 매일의 출퇴근을 견딜 수 있게 해 주는 해외살이의 밑그림이 되어 주고 있다.


 온통 새로운 풍경과 노래처럼 들리던 이상한 언어, 덥고 지저분한 거리에서 느끼는 이방인에 대한 뜨거운 시선. 실수와 몰이해로 빚어지는 웃픈 에피소드의 날들. 그날들의 기억이 가끔 그리운 건 낯선 나라에 처음 디딘 발걸음을 지금의 시간까지 이어온 뿌듯함이기도 하고 나 자신에 대한 짠한 회환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는 가끔 그때의 시간들을 소환할 수 있는 곳에 방문한다. 10년 전엔 마냥 신기했던 풍경이 지금은 익숙한 풍경이 되어 여유로운 마음을 품게 하는 세월의 힘을 느낀 하루. 꼬따 뚜아에서의 하루였다.



 꼬따 뚜아는 오래된 도시라는 의미로 Old Town쯤으로 해석할 수 있다. 파타힐라 광장을 중심으로 자카르타 역사박물관과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사무실로 사용되었다는 100여 년 전에 지어진 건물을 레스토랑으로 개조한 카페 바타비아라는 식당이 있다. 외국인들 인도네시아인들 할 것 없이 관광지의 역할을 톡톡히 하는 곳이다. 파타힐라 광장에서는 강렬한 원색으로 칠해진 자전거를 대여해 주는데, 자전거 색깔과 똑같은 색깔의 모자도 함께 구비되어 있어 나름의 멋진 한 컷을 담아낼 수 있는 명소이다. 근처에는 와양이라고 하는 인도네시아 전통 인형극에 사용되는 그림자 인형들이 전시되어 있는 와양 박물관도 있어 자카르타의 역사와 문화를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 할 수 있다.  박물관 투어를 마친 후,  유럽풍으로 지어진 식당에서 인도네시아 전통음식을 먹어보는 것으로 하루를 보낼 수 있다. 거기에 형광색 자전거 타기에 도전해 본다면 금상첨화다.


 카페 바타비아는 중국계 인도네시아인들도 종종 눈에 띄지만 외국인 관광객들이 주 고객층이다. 350년간 네덜란드의 지배를 받았던 인도네시아의 역사를 생각한다면, 식민의 중심이었던 건물을 개조한 식당에서 인도네시아인들이  한가로이 식사를 즐기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편으로는 인천 개항로 지역에 일제 강점기 시기에 지어진 일본 가옥이나 관공서를 개조한 카페나 박물관등이 사람들의 발길을 끄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억압의 역사에 짓눌리기보다는 이제는 즐길 수 있는 마음이 더 많아지길 바라게도 된다. 가혹했던 역사의 장면은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게 맞지만, 그 역사의 어둠에 잠식되어 현재의 시간과 공간까지 부정하지 않는 것이 역사를  통해 성숙해지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다만 카페 바타비아에 우르르 몰려와 식사를 즐기는 유럽인들을 보는 마음은 쉽지 않다.  백 년 전 가혹한 폭력으로 만들어진 영광이 아직까지도 그들을 비추고 있는 듯한 불편함에 마음이 씁쓸하다. 그런 의미에서 인도네시아인들이 시끌벅적한 그들의 노래와 언어로 이 장소를 실컷 즐겨주기를 바란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의 자전거 타기는 쉽지 않지만, 꽤 오랜만인데도 근육이 기억하여 페달을 굴리는 것도 재밌다. 나이를 먹어 갈수록 몸을 움직이는 일에 주춤하게 되는데, 이 날의 자전거 타기는 동심과 갱년기의 불안과 의심을 넘나들며 나를 즐겁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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