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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연변호사 Sep 13. 2022

아동학대 사건을 준비하던 어느 날

늦었지만 미안해



엄마가 되고 보니 가장 힘든 사건이 ‘아동학대’ 사건이다.

      

여기에서 힘들다는 건 감정의 소모를 이야기하는 것인데 자꾸 감정이입이 되어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함께 괴롭다. 요즘 가장 신경을 쓰고 있는 ‘아동학대’ 사건 때문에 유사한 판례들을 검색하다가 한 사건의 범죄사실을 보고 마우스를 멈췄다.    

 

범죄사실 내용을 요약하면 이런 내용이다.


초등학교 3학년 담임교사가 피해자가 반성문을 써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같은 반 학생 23명에게 순차로 피해자의 등을 3회씩 때리도록 지시하여 학생들로 하여금 피해자의 등을 때리게 하였다.     



내가 초등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여자아이가 있었다. 그 당시 여자아이들은 보통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노는데 그 친구는 무리가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그 아이와 친하진 않았지만 가끔 방과 후에 같이 어울려서 논적은 있었다. 한 번은 그 아이가 나에게 놀이공원에 가자고 하였다. 말이 놀이공원이지 지금 생각해보면 백화점 위에 작은 놀이기구 몇 개와 방방이 있는 작은 키즈 카페 정도의 수준이었다. 나는 돈이 없었기 때문에 ‘못 간다.’고 하였는데 그 아이가 ‘내가 돈이 있다.’라고 하였다. 나는 ‘놀이공원에 가는 돈은 큰돈인데 이 친구에게 받으면 안 된다.’라고 생각은 하였으나 놀이공원을 가고 싶은 마음에 엄마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따라갔다. 아마 ‘넌 친구가 없는데 내가 같이 가주니 네가 돈을 내 줄 수도 있다.’라며 나름의 합리화를 했던 것 같다.     


그날 놀이공원이 어땠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사건은 다음 날이었다.


다음 날 아침, 담임선생님이 그 아이를 교탁 앞으로 불렀고 호되게 야단을 치셨다. 어제 놀이공원에 갈 때 쓴 돈이 문제였다. 그게 그 아이의 부모님 돈을 훔친 것이었던가. 암튼 정당하지 않은 돈이었다. 나는 불안해졌다. 선생님과 그 아이를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그 아이가 “수연이도 같이 썼어요.”라고 말할 것만 같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당장 교실 밖으로 나가고만 싶었다.


그날 담임선생님이 그 아이에게 내린 처벌은 같은 반 학생들에게 순차로 손바닥을 맞는 것이었다. 그 아이가 두 손을 내민 채 1 분단 첫 번째 줄부터 4 분단 다섯 번째 줄까지 돌면서 앉아있는 학생들에게 손바닥을 맞았다. 장난이 심한 남자아이들은 일어서서 높이 손을 올린 뒤에 강하게 내려치기도 하였다. 남자아이들은 자기 손바닥이 아프다며 오버스럽게 손목을 잡은 채 흔들어댔고 그 아이는 다시 그 뒤에 앉아 있는 학생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내가 그 아이를 지켜봤던 시선을 기억한다. 그 시선으로 추정컨대 내 자리는 3 분단 네 번째 줄 정도였던 것 같다. 드디어 내 자리에까지 왔다. 그 아이가 울고 있었다. 나도 같이 울고 싶은 걸 참았다. 나는 그 아이의 손바닥에 내 손바닥을 살짝 올렸다가 뺐다.


     

위의 사건에서 피고인은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판결문에는 ‘아직 인격형성이 되지 아니한 피해자에게는 신체적 학대행위 임과 동시에 정서적 학대행위가 될 뿐만 아니라 피고인의 지시를 받아 폭력행위를 하게 된 어린 학생들에게는 폭력행위가 정당화될 수 있다는 그릇된 가치관을 주기에 충분한 것이어서 피해자뿐만 아니라 가해행위를 한 학생들 또한 사실상 피해자라 아니할 수 없다. (중략) 피해자가 학급에서 상당히 문제를 일으키는 상황에서 벌어진 일임을 전제로 하더라도 같은 반 급우들에게 어린 피해자를 무방비상태에서 때리게 하는 것은 사실상 폭력교사 행위일 뿐 이를 훈육의 한 방법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라고 기재되어 있었다.     



당시 담임선생님을 비난할 생각은 전혀 없다. 25년도 더 지난 일이고 그땐 학교에서 훨씬 심한 체벌이 가해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 아이에 대한 다른 기억이 없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학생들은 대부분 같은 중학교로 진학하였는데 이 아이는 같은 중학교에 다니지도 않았다. 그 아이를 떠올릴 때 내 감정은 ‘미안함’이다. 그때 용기를 내서 손을 들고 “저도 같이 돈을 썼습니다.”라고 이야기했어야 할까. 그것은 잘 모르겠다. 그런데 내가 미안한 건, 처벌이 끝난 뒤에 그 친구에게 다가가 ‘괜찮아? 미안해.’라는 이야기를 하지 못한 것이다. 오히려 그 뒤로 그 친구와 거리를 두었다.


     

사건에 집중해야 하는데 괜히 우울해졌다.

커피 한 잔 마시고 와야겠다.  





법무법인 여원 대표 변호사 박수연입니다.

법무법인 여원 (yeoo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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