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 몰랐다.
처음엔 ‘나’에 대한 이야기를 써보자 했다.
그런데 사실, 나는 나이를 먹으면서 사람들에게 ‘나’에 대한 이야기를 잘 하지 않게 되었다.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내 가치관이나 신념들이 모두 까발려진다. 이것을 ‘까발려진다.’라고 느낀 이유가 내가 나이를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된 것인지 실제 직접 혹은 간접적인 경험이 있었던 것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쨌든 그런 이유로 아직 서로에 대한 신뢰가 쌓이지 않은 사람에게는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여행, 맛집, 육아와 같은 피상적인 주제를 찾게 된다.
그런 내가 ‘나’의 이야기를 쓰려니 어떤 주제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써야 할지를 모르겠다. 누군가가 ‘나’의 이야기를 읽는다고 생각하니 또 ‘까발려지는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그렇다면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써볼까 했다.
10년째 변호사 생활을 하는 사람으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 아쉬웠던 사건, 흥미로운 사건 등 쓰고자 한다면 주제는 많았다. 그런데 최대한 각색을 해서 쓰려니 글이 써지지 않는다. 조금 구체적으로 쓰다가 ‘이러다가 누군가가 당사자를 알게 되지 않을까.’해서 다시 지운다.
또 ‘사건’이라는 게 이 일을 하고 있는 나에게는 기억에 남거나 흥미롭지만 법을 잘 모르는 누군가에게는 지루하기만 한 글이 될까 봐 또 쓰지 못한다.
글 몇 개를 쓰다가 지우고 쓰다가 저장만 해 둔 채 며칠이 지났다.
그리고 지난주. 내 인생에서 손가락으로 꼽을 만한 슬픈 일 중에 하나인 ‘유산’에 대해 글을 썼다. 아이들을 모두 재우고 밤 12시에 맥주 한 캔을 옆에 둔 채 노트북을 열었다. 조각조각 기억나는 일들, 그때의 내 감정들을 적다 보니 금세 한 페이지를 썼다.
그런데 뭐랄까. 그때를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먹먹했지만 동시에 글로 풀고 보니 후련했다. 누군가에게 가장 힘이 되는 위로는 그것은 겪어 본 사람의 위로이다. 그때를 지나온 내가 그때의 나에게 ‘나는 이런 일이 있었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때의 나는 가만가만 위로를 받는다.
생각지도 못했던 글의 힘이었다.
이제는 ‘나’의 이야기를 좀 덜 고민하며 쓸 수 있을 것 같다. 굳이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이 아니라 나를 위해 글을 쓴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가볍다.
‘사건’ 이야기는 어떤 마음으로 써볼까...
법무법인 여원 대표 변호사 박수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