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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세경 Sep 30. 2024

3. 우는것도 다 때가 있다.

생애주기별 눈물

다시 학교로 돌아가면서 배운 철칙 중 하나는 모든 것에는 인과가 존재하며, 설명할 때는 반드시 근거를 기반으로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심리학은 어영부영 눈치로 때려맞추는게 아니라 엄연한 사회과학이다. 나의 울음도 방황도, 모두 그저 기분이나 감정의 문제만이 아니었다는 사실. 나는 이 사실을 배운 뒤에야 비로소 어른이 되어서도 왜 여전히 울며 살고있는지 어렴풋이나 알게되었다. 


하지만, 비록 내가 유별난 울보라 하더라도, 눈물이 가진 흐름은 생각보다 보편적이다. 개인의 성향이나 경험에 따라 눈물을 흘리는 빈도와 이유는 다를 수 있지만, 모든 사람은 발달 단계에 따라 각기 다른 이유로 눈물을 흘리며 살아간다. 이를 설명해주는 것이 바로 '발달심리학(Developmental Psychology)'이다.


발달심리학에서는 인간이 태어나고 자라면서 겪는 심리적, 정서적 변화와 그에 따른 행동 양식을 연구한다. 이 과정에서 울음은 중요한 발달 신호이자 의사소통의 수단이 된다. 예를 들어, 갓 태어난 신생아가 울음으로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는 것에서 시작해, 유아기와 아동기를 거치며 정서적으로 더 다양한 감정을 담아내기 시작한다. 성인이 되면 사회적 맥락 속에서 눈물의 의미가 달라지며, 때로는 눈물이 억눌리거나 감춰지기도 한다.


이렇듯 발달심리학은 우리가 각 생애 주기마다 경험하는 울음과 눈물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틀을 제공한다. 내 울음도, 그리고 당신의 울음도 결국 이 흐름 안에 속해 있다. 인간삶의 보편성은 어느정도 알아야 비로소 나의 눈물이 그 각도에서 조금 틀어져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이제, 내가 살아온 시간 속의 눈물들을, 크게 신생아기, 청소년기, 청년기, 노년기로 되짚어보려 한다.(본문은 발달심리학의 ‘발’도 못간다. 맛보기 정도) 생애주기별로 눈물이 어떻게 변화하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 그 눈물들은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생애주기는 한 사람이 태어나서 사망할때까지의 기간으로, 눈물의 의미와 역할은 생애주기에 따라 달라진다. 우는것도 다 때가 있단 소리다. 신생아의 눈물은 생존을 위한 언어로서 존재한다. 갓 태어난 아기는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울음을 사용한다. 응애응애, 배가 고프거나, 불편하거나, 누군가의 관심이 필요할 때, 눈물과 울음은 가장 강력한 신호다. 울음소리는 생명의 첫 목소리이자, 생존을 위한 최초의 언어이자 세상과의 연결고리다. 신생아의 울음소리는 배고픔과 불편함, 고통, 그리고 사랑에 대한 갈망을 담아내며 북소리처럼 울려 퍼진다. 울음의 리듬은 감정의 깊이를 표현하고, 떨림의 강도는 욕구의 절박함을 드러낸다. 신생아의 울음은 여름밤에 터지는 폭죽, 세상에 자신을 알리고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는 간절한 메아리고 사랑의 암호다.


부모는 아기의 울음을 통해 아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하고 반응하게 된다. 이러한 울음은 아기의 생존과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여기 나 있어요, 나를 알아봐 주세요.’ 이 소리는 단순한 울음이 아니라, 스스로를 세상에 존재시키기 위한 첫 번째 호소이자, 사랑과 보살핌을 향한 외침이다. 이 울음은 다른 어떤 소리보다 강력한 생명력의 증표이기도 하다. 기질과 양육환경에 따라 다르지만 아기는 살려고 울면서 큰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울보출신이다.


어린 시절을 보낸 당신, 이제 청소년기가 된다. 청소년기는 눈물은 자신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도구로 변한다. 청소년기는 ‘나는 누구인가’를 탐구하는 시기다. 초딩(학령기)때 어쩌라고 저쩌라고 에베베베 하는 시기와는 다르다. 자아정체성(identity)을 확립하는 중요한 때다. 아이였던 자신에서 성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탐색과 갈등이 반복된다. 그 과정에서 또래와의 관계, 학업 성취, 진로 고민, 가족 간의 갈등 등 여러 요인들이 얽히며 정서적 혼란이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혼란과 갈등 속에서 눈물은 내적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작용한다. 예를 들어, 또래 집단에서 인정받지 못하거나 따돌림을 경험할 때 눈물은 고립감과 상실감을 나타내며, 정체성의 혼란을 반영한다. 변화하는 감정에 혼란스러워하며, 때로는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이 시기의 눈물은 자신의 내면을 탐색하고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기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도움을 준다. 


손원평의 <아몬드> 속 감정표형불능증을 가지고 있는 윤재가 깨어난 엄마를 보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그의 내면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볼 수 있다. 윤재의 눈물은 그간의 슬픔을 표출하는 것을 넘어서, 그의 자아가 형성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그가 눈물을 흘렸다는 것은, 자신과 세상을 연결 짓는 중요한 순간을 경험했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는 청소년기라는 자아정체성을 형성해 가는 과정에서, 감정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잘 보여준다. 이처럼 청소년기의 눈물은 단순히 과민과 혼란의 표현이 아니라, 자신을 찾고 이해하려는 강력한 탐색의 과정이다.

덧붙여 중2병을 제때 겪는것도 복이라고 보기에 이 시기에는 눈물도 많이 흘려야 한다고 본다. 이때 울음을 많이 참아서 지금 탈이 많이 난 어른이들이 많을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어른이 된다. 청년기의 눈물은 더 복잡한 감정적 언어로 발전한다. 성인의 눈물은 사회적 맥락이나 관계 속에서 경험하는 다양한 감정을 반영하는데

발달심리학자인 에릭슨(Erik Erikson)은 이시기를 ‘생산성 대 침체감(Generativity vs. Stagnation)’의 단계로 보았다. 이 시기 성인은 자신과 타인에게 의미 있는 일을 함으로써 ‘생산성’을 느끼고자 한다. 그러나 삶의 목표를 이루지 못하거나 관계에서의 좌절감을 느낄 때, 성인은 ‘침체감’을 경험하며 이런 심리적 갈등은 스트레스, 실망, 성취, 기쁨 등의 감정으로 표현되고, 때때로 이러한 복잡한 감정들은 눈물로 분출할 수 있다. 


요즘에는 과거에 비해 교육기간이 연장되었고 결혼이 필수가 아니며 이혼률도 증가하고 있다. 경제적 독립을 필수로 하지 않아 가족형태의 스펙트럼이 넓어졌다. 사회문화적으로 청년기의 범주에 대해 확장하는 움직임이 많아서 상당한 시기를 겪는다. 우리네 인생의 반이 청춘이라고 봐도 되겠다 싶다. 이때 청년의 눈물은 억압된 감정을 해소하고 감정적인 균형을 되찾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이 과정에서 자신을 돌보고 받아들이는 태도를 통해 심리적 안정감을 되찾게 된다. 


마지막으로, 노년기의 눈물은 발달심리학적 관점에서 ‘통합 대 절망(Integrity vs. Despair)’의 단계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에릭슨은 각 시기별로 과업을 설정했는데 노년기의 과업은 인생을 긍정적으로 통합하는 것이다. 자신이 살아온 여정을 인정하고, 삶의 가치를 발견하며, 모든 경험을 받아들일 수 있는 단계에 이르러야 비로소 삶의 ‘통합’을 이루게 됩니다. 하지만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후회와 미련이 남는다면, 노인은 ‘절망’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이런 갈등 상황에서 흘리는 눈물은 후회와 상실감, 허무함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신과 화해하고 인생의 여정을 수용하고자 하는 마음의 표현이기도 하다. 노인의 감정세계는 결코 잠잠하지 않다.


영화 <시>의 주인공 미자가 겪는 삶의 비극과 그로 인한 내적 갈등을 아름다운 시어로 표현하는 이야기다. 수업시간에 내 인생의 아름다운 순간이란 주제로 돌아가면서 발표할 때 언니가 예쁜옷을 입혀준 뒤에 손뼉을 치면서 환대해주는 순간을 회상하며 눈물을 흘린다.그녀가 겪어온 인생의 고단함과 상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재했던 작은 기쁨들을 되새기며 자신의 삶을 긍정하고 통합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이 장면에서 미자가 흘리는 눈물은 단순히 과거의 회상에 대한 감정적 반응이 아니다. 척박한 삶에서 의미 있는 순간들을 재발견하고, 그 기억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과 삶의 가치를 재확인하고자 하는 노년기 특유의 심리적 과정으로 비춰진다. 미자는 어린 시절의 행복했던 기억을 회상하며, 비록 그 이후의 삶이 힘들고 고통스러웠더라도, 그때의 ‘예뻤던 나, 언니가 나를 정말 예뻐했었지’ 그때의 자신과 여전히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노년기에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성취와 후회를 정리하며, 죽음을 목격하고 자신의 죽어감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자신을 통합하려는 심리적 노력이 나타난다. 이 시기의 눈물은 회상과 반추의 결과로 나타나며, 살아온 시간 속에서 겪었던 상실과 성취, 후회와 감사의 감정들이 뒤섞이면서 흘러나온다. 그러기에 노년의 눈물은 밀도부터 다르다고 표현하고 싶다. 은퇴나 친지의 사망, 자녀의 독립, 삶의 의미를 재정의하고, 지나온 시간 속에서 겪은 경험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삶의 통합’을 위한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


큼직하게 알아본 생애주기속에서 눈물은 일생 동안 우리를 감싸고 있으며, 때마다 그 목적과 의미가 조금씩 달라진다. 발달심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운다는 것, 흘리는 눈물은 삶의 모든 순간을 기록하고 정리하는 일종의 감정적 연대기라고 할 수 있다. 발달은 어느 한 순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전 생애에 걸쳐 일어나는 과정이기 때문에, 눈물 역시 특정 시점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내내 감정의 흐름을 반영하며 변해 간다. 이렇듯 눈물은 각 발달 단계마다 삶의 의미를 새롭게 조명하고, 우리의 성장과 성숙을 보여주는 중요한 흔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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