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사랑하고 싶은 만큼 다양한 포맷의 연애 프로그램들이 넘쳐나고 있다. 세상 좋아져서 누워서 배를 긁으면서 어느 집 남매가, 금수저와 무당들이 연애하는 프로를 보는 시대가 왔다. 남의 연애보다 내 연애가 더 재밌어 본방송을 챙겨본 적은 없지만, 짧게 올라온 클립들을 통해 몇 청춘의 서사를 엿보곤 한다.
그중에 인상 깊은 프로가 있다. 최근 방영했던 <환승연애>인데, 최근 나온 시즌3의 예고편을 보게 되었다. 온라인에서 유명한 "네가 자기야 미안해했잖아, 환승연애 이딴거 안 나왔어" 라는 대사보다 계단에 올라가다가 쓰러져서 울고 마는 그 장면 그 뒤로 나오는 출연자들의 눈물진 표정, 그걸 관찰 카메라의 시점으로 목격하는 이 광경이 굉장히 오묘했다. 그리고 어떤 연유로 울었는지 괜히 더 찾아보게 되었다. 그들의 울음은 내게 길티플레저(guilty pleasure)가 된 것이다.
미디어는 이러한 감정의 순간들을 길티플레저로서 소비하게끔 만든다. 연애 프로그램들은 의도적으로 갈등 상황을 연출하고, 위기 상황을 조성한다. 출연자들의 눈물과 감정을 극대화하기 위함이다. 아직도 건물에 있는 유리가 매직미러라는 게, 지하에서 스텝들이 모니터링하고 있다는 게 믿기지는 않지만, 이런 관계자들 덕에 프로그램은 리얼함을 유지해 재편집되고 BGM까지 더해져 공개된다. 시청자들에게 일종의 대리 경험을 제공하고, 연애해 봤던 사람들이 경험해 본 이별, 그리고 ‘나도 저랬다면’, ‘우리는 어땠을까’라는 개인적인 경험이 더해져 감정적으로 깊이 몰입하게 만든다.
시청자는 남의 연애와 눈물을 보면서 자신이 겪지 않아도 되는, 혹은 겪어봤던 상황을 직간접적으로 체험하고, 그 과정에서 위안을 얻거나 심지어 즐거움을 느낀다. 일면식 없는 ‘남의’ 연애사가 클립으로 돌아다니고 짤과 밈으로 활용되는 것에서 출연 동의했으니 됐지라는 식으로 합리화하여 그들을 흉본다거나 실제로 행했으면 난감해질 여러 책임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내가 40기 영숙이가 되고 X와 환승연애로 만날 일은 없을 거라는 안전함을 가지고 말이다.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쾌락을 만끽하는 심리를 뜻하는 길티플레저는 이런 맥락에서 등장한다. 저 먼 옛날 신앙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가 시가 되고 극이 되어 열차가 도착하는 최초의 영상이 되기까지 예상하진 못했을 것이다. 텔레비전이 보급화되면서 TV 드라마로 많은 인기를 끌었다. 극적인 이야기가 등장하고, 인간의 희로애락을 매개로 시청자들을 붙잡아두던 시절에서 ‘덜’ 연출된 것이 핫해진다. 2000년대 이후 대거 등장한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본격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관찰 카메라’는 사생활의 상품화로 이어졌다. 해마다 새벽에 정지선을 지키는지부터 아이돌 데뷔 프로젝트, 유명인의 아기들 육아, 산촌에서 밥을 짓는 등 유행 테마만 교체되며 미디어는 그렇게 진행되어 왔다. 인간의 본능적인 호기심과 감정적 반응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시청률을 높이고,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이것이 제작 지원과 부가 가치로 이어지는 수익화의 흐름인 것이다.
누군가가 감정적으로 무너지는 장면을 기록하고 넣음으로써 이어지는 파급력, 그들네의 향후 기대가치는 얼마나 될까? 저들의 눈물값, 서러운 마음의 투자 비용은 얼마란 말인가. 당연하게도 헤어진 연인들이 한곳에 모여(그 상대가 전 애인이 아닐 수도 있는) 다시 사랑해 보고자 하는데 울고불고 안 할리가 없다. 끝난 인연을 붙잡을 때 꼭 울 일이 아닌 걸수도, 충분히 울고왔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당장 글을 쓰는 이 밤에도 실연한 사람은 잠 못 이룰 텐데 어디에선가 눈물을 흘리고 있을 수도 있지만 눈물값은 누구의 눈알에서 등장하느냐에 따라서 값어치가 다르게 매겨지는 것, 참 재밌다.
여전히 연애 프로그램은 본방까지 챙겨보진 못하겠다. 내 주위에는 밥친구로 소비하는 이들도 있는데 반찬이 느끼하기만 하다. 사랑 후 오는 어떤 것들을 전체공개 한다는 것, 출연자들에게 부여된 ‘연애를 환승’한다는 비일상적인 과정, 인플루언서를 염두하고 왔을지도 모르는 이들이다 보니 (인기를 바라고 온게 아니더라도)눈물은 소비재가 되는게, 그게 재미가 있다고 보는게 어색하기만 하다.
지난여름 전애인이 만나고 있는 사람이 생겼다하여 울었던 일이 떠오른다. 어떤 눈물은 즉석에서 놀림감으로 전락하는데 어떤 눈물은 구조화된 편이고 비싸 보여 이런 글을 써본다. 본방으로 이끄는 미끼상품으로서 각자의 이야기를 담아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높은 조회수와 관심을 얻고 계획된 것이라는 게 기가 막히게 재밌고 어쩔 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