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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지 Aug 13. 2024

단발머리 할머니


그 몸으로 어떻게 일을 해? 가장 두려워던 할머니들 텃세다. 어렸을 적 친할머니한테 혼이 났다. 둘째 남동생만 편애했던 기억이 난다. 할머니는 심장병으로 인해 몸이 많이 불편했다. 밤만 되면 가슴이 아파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어머니를 호출했다. 아프면 사람이 신경질적이고 예민해지고 가시 돋힌 말도 하게된다. 동생도 7살때 낙상사고 인해 뇌진탕이 있었다. 자연스럽게 가족의 관심은 동생에게 기울었고, 나는 할머니의 말을 액면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내 감정을 억압한채로 자랐다. 


사랑받고 싶고 할머니한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가득했었다. 칭찬 대신 구박이 일상이었다. 마음의 상처가 무의식에 있었고, 노인의 불만소리를 들으면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우리병원 10년 넘은 단골 S할머니 텃세가 어김없이 시작됐다. 허리 디스크 치료 마지막 단계는 견인 치료다. 몸무게와 체중에 맞춰서 10분 동안 기계로 가슴 쪽과 골반쪽을 벨트로 묶어 고정시킨 뒤 10분간 좁혀져 있던 신경을 늘려주며 치료하는 방식이다. 꽉 묶어야지 다 흘러내리잖아. S할머니 성화에 이마에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긴장을 한 탓인지 계속 벨트가 느슨해져서 2번 연속 내려갔다. 다른 선생님 불러와. 아니에요, 제가 다시 해볼게요. 싫어 못하잖아 다른 언니 불러와!     

 

결국 연차 높은 선생님이 달려와 교대하고 나서야 언성은 잦아들었다. 어머니 왜 그러세요, 정 선생님도 잘하려고 노력하는데. 못 믿겠어, 막내 불신 가득한 얼굴로 구시렁대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귀에 웅웅 거렸다. 못 미더운 눈빛과 말들을 들을 때면 자존감이 내려간다. 가끔씩 상상한다. 마동석 같은 얼굴과 몸을 가졌더라면 물리치료사로서 무시받는 일을 덜했을 거라고.      


하지만 미운 정이 무서운 건지 몸이 아파 병가를 낸 적이 있었다. 겨우 몸을 회복하고 출근을 했는데 꼬맹이 어디 갔냐고 날 찾으셨다고 했다. 왜 어렸을 적 할머니가 생각이 나는 건지 모르겠다. 어느 모습이 진짜 모습인지 혼란스러울 정도로 집에 학교 끝나고 친구들을 데려오면 환하게 반겨주면서 맛있는 음식과 과일들을 주신 친할머니가 겹쳐 보였다. 나를 지독하게 혼내시면서 애타게 찾았다.      


꼬맹이 떡 사 왔어 먹어. 나는 찰나의 친절에 넘어가지 않겠다 다짐했다. 이따끔 할머니의 텃세는 계속 됐지만 나는 아랑곳 않고 자본주의 미소를 띠며 치료를 했다. 벨트가 풀리면 다시 달려가서 묶기를 반복하고 귀찮기도 했지만 할머니의 상한 허리와 마른 다리를 보면 할머니의 고생한 흔적과 힘든 삶이 보여 애잔했다. 표현이 서투른 건데 차마 그녀를 투명인간처럼 대할 수는 없었다.     


고슬고슬한 팥떡을 잘라서 입에 넣었다. 아침에 부랴부랴 출근해 배가 고팠는데 마침 잘됐다 싶었다. 아침마다 배달 오는 우유와 같이 먹으니 맛있었다. 치료실 안에서 먹는 간식은 모진 기억에도 필터를 씌운다. 시간이 갈수록 텃세는 잦아들었다. 자연스럽게 수다를 떨 정도로 할머니와 나는 친해졌다. 날씨 얘기도 하고, 서로 걱정도 해주고, 사적인 질문도 서슴없이 던졌다.      


어느 날은 파라핀 치료를 하시다가 뜬금없이 꼬맹이 남자친구 없어? 내가 아는 괜찮은 공무원 남자 있어 소개해줄게. 중매까지 해주시려고 해서 하마터면 그해 시집까지 갈뻔했다. 투덜거리는 할머니의 모습조차 사랑스러워 보일 때가 많았다. 늘 집에 돌아오면 적막함들이 나를 허전하게 만들었었는데 환자들을 통해 오히려 치유받는 것 같았다.      


병원에서 마주하는 어르신들의 첫인상은 대부분 통증으로 일그러져 있다. 못 미더운 눈빛들이 어느순간 손녀를 보는 눈빛으로 바뀌는 걸 볼 때면 묘하게 기분이 좋았다. 무시하는 말대신 따뜻한 안부로, 각종 제철과일들과 간식들이 치료실에 쌓이는 풍경들로 바뀌어 갈 때 애틋함이 싹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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