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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H Nov 14. 2019

로스쿨 첫 기말고사

벼랑 끝에 다다랐을 때는

"친구들의 도움"


나는 로스쿨 처음 시작부터 정말 아무것도 몰라서 어리바리하면서 항상 친구들과 교수님께 뭘 어떻게 하는 건지 물어봤다. 첫 줄에 같이 앉으면서 얼굴을 익힌 친구들에게 때때로 공부는 어떻게 하는지를 계속 물어봤던 귀찮았던 친구였다. 그렇지만 내가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지치지 않고 계속 그렇게 친구들과 교수님께 여쭤볼 수 있었던 이유는 모두가 내 도움 요청에 한결같이 발 벗고 나서서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내가 한 개만 어떻게 하는지 물어보면 그것도 알려주고,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걱정되어서 자기가 알고 있는 두 개, 세 개까지 나한테 알려주었다.


거의 모두가 미국 백인인 친구들이 하는 이야기를 옆에서 들어보면 어제저녁에 본 티비쇼나 스포츠 경기나 쇼핑 이야기들을 하는데 나는 모르는 이야기들이어서 끼어들기 힘들었다. 그런 이야기를 할 때는 공감대를 가지지 못해서 가만히 고개만 끄덕이면서 들었다. 대신 나는 친구들이랑 공유할 수 있는 과제 이야기, 수업 이야기, 미래에 어디서 일하고 싶고, 어떤 변호사가 되고 싶은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나름 조금 더 친해졌다. 그런 재미없는 이야기를 하는 걸 알면서도 나한테 다가오거나 내가 다가갔을 때 나랑 같이 이야기해주고 놀아주었던 친구들한테는 이야기하는 그 순간에도 항상 고마웠다. 그런 이야기를 할 때 보통은 과제 어렵다는 이야기, 공부하기가 너무 어려워서 시험을 어떻게 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이야기로 끝이 난다.


친구들이랑 그런 이야기를 신나게 하다 보면 어떨 때는 갑자기 생각이 났는지 나한테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들을 하나씩 알려주기도 했다. 한 친구는 한창 신나게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생각났다면서 학교 아이디로 온라인 사이트에 들어가면 다양한 자습서들을 공짜로 볼 수 있는 방법도 알려주었다. 다른 친구는 아웃라인을 보고 있는 걸 보고 나는 아웃라인 없는데 나한테 아웃라인 보내줄 수 있냐고 물었더니 흔쾌히 다른 과목의 아웃라인까지 덤으로 주었다. 또 다른 친구는 내가 교수님 말씀을 잘 못 알아들어서 노트를 못 적었다고 하면 자기가 적은 노트도 보여주었다. 수업 시간에 교수님 하셨던 이야기가 이해가 안 될 때도 친구들한테 물어보면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게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특히, 기숙사를 같이 살면서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한테는 거의 매번 내가 과제를 잘 이해했는지 확인차 물어봤고, 친구들은 과제를 어떻게 하는지 물어봤다.


단 한 친구도 내 도움 요청에 소극적으로 대답해준 친구가 없었다. 비록 대부분의 친구들이 수업 끝나면 바로 밖으로 나가서 집에서 공부하는 바람에 진짜 공부할 때는 도서관에서 외롭게 하긴 했지만, 그 외로움 속에서도 내가 바라는 것보다 항상 크게 다가왔던 모두의 사랑으로 버틸 수 있었고, 조금씩 자랄 수 있었다.



"첫 기말고사를 위해"


가을 방학이 끝나고는 슬슬 기말고사를 준비하는 분위기였다. 로스쿨은 중간고사가 없다. 교수님마다 시험 방식이 달라서 학기 중에도 시험을 여러 번 치는 수업도 있지만, 보통은 기말고사 한 번으로 한 학기의 노력을 평가받는다.


단, 한 번의 시험이라니. 달콤하기도 하면서 위험한 도박이었다. 한번 시험을 망치면 한 학기 동안 쏟아부었던 노력이 부정당한다.

  

기말고사가 한 달 앞으로 다가올 때 즈음, 나는 겨우 수업 시간에 교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다가오는 기말고사를 생각하면 내일 눈을 뜨기 싫은 마음이 가득했다. 성적을 잘 받을 거란 기대는 감히 할 수도 없었다. 한 학기 동안에 그 두꺼운 책들을 다 훑었는데, 그 방대한 양으로 시험을 준비하려고 생각하니 기말고사 대비 공부를 시작하기 엄두도 나지 않았다.


시간은 흘렀고, 기말고사가 현실로 다가오면서 이제 정말 승부수를 던져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그때까지는 매주 해야 할 분량만 공부해 봤지, 시험을 대비해서 전체적인 내용을 공부하지 않았다. 대학교 때까지는 학교 시험을 앞두고는 보통 2주 전부터 시험 대비에 돌입해서 집중 벼락치기를 하는데, 로스쿨에서 첫 시험이다 보니 나에게 두 배는 더 시간을 주어서 4주 전부터 시험에 대비했다.


막상 첫 주부터 그냥 공부가 아닌 시험공부를 하려니 분량이 너무 많아서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직도 공부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다른 친구들에 비하면 훨씬 더 많이 걸렸고, 내 공부 속도로 공부시간들을 계산해보니 한 달 안에 시험 대비를 끝내려면 하루에 두 시간을 자야 한다는 계산이 섰다.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지만, 시험을 망쳐서 성적표에 C나 D가 생기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한번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미친 공부 스케줄을 짰다. 중간에 한 번 쓰러지지 않을까 싶은 스케줄을 짜면서 계속 나를 달랬다.


'이번 한 번만 미친 척하고 한 달 동안 두 시간만 자면서 시험공부를 해보자. 첫 시험이니까 이번 학기만.'


그렇게 공부를 하지 않는다면, 그래서 성적을 못 받으면 사채 써서 학비 대주신 부모님께도 죄송하고 평생 후회로 남을 것 같았다. 제대로 공부를 시작하고부터는 로스쿨 도서관과 호수 옆에 있는 예쁜 학부 도서관에서 번갈아 가며 공부했다. 도서관 안에서 나 혼자 공부할 때도 많은 로스쿨 도서관에 비해, 젊어서 그런지 새벽 시간까지도 항상 바글바글한 학부 도서관이 대학 때 시험공부 했던 오석관처럼 정겹게 느껴져서 자주 학부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주변 친구들한테 자료들을 공수받고, 아웃라인을 공수받아 도움을 받아 가며 공부를 했다. 사실 대학교에 다닐 때는 아웃라인이 뭔지도 몰랐지만, 로스쿨에서는 어디서 용케 구하는지 친구들이 아웃라인을 가지고 있었고, 감사하게도 나한테도 보내줬다. 로스쿨 복도에는 1L 수업들의 아웃라인을 아예 책으로 만들어 학생들에게 무료로 배포해주는 프로모션도 진행되었다. 넘쳐나는 아웃라인을 보면서 내가 아웃라인에 대해 가지고 있던 선입견을 없애고 나도 아웃라인의 도움을 받았다. 초반에 모든 내용을 머릿속에 큰 틀로 정리하는 데에는 아웃라인을 이용하는 것이 훨씬 시간을 단축하고 효과적으로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법이었다.


"한번 미쳐봤다"


계속 계속 공부하다 보니 어느새 시험이 일주일 전이 되었고, 도서관 24시간 개방이 시작되었다. 그때부터 마지막 시험이 끝나는 날까지 마지막 3주 동안은 정말로 다시 해보려고 해도 못 할 정도로 공부해봤다. 도서관에서 새벽 2시까지 공부하다가 1층 소파에 담요 덮고 누워서 잠깐 자고, 새벽 4시에 알람 맞춰서 일어난 다음에 새로 커피 받아서 다시 내 carrel로 돌아가서 공부했다. 기숙사에는 씻으러만 갔다. 다만, 밥 먹는 시간만큼은 스트레스를 풀었다. 학교 식당이 뷔페니까 조금만 먹으면 아까워서 제일 안쪽 창가 자리 식탁에 내 식판과 노트북을 놓고, 1시간 동안 드라마 감상하면서 최대한 많이 뱃속에 저장시켰다. 그렇게 있는 노력 없는 노력 쥐어짜면서 초인적인 힘으로 공부를 해서 그런가 다행히 시험문제를 보면서 어떤 식으로 대답을 해야 할지가 그려졌다.


다른 학년은 자유롭게 시험 시간을 선택할 수 있었지만, 1L 수업을 들은 우리는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교실에서 시험을 봐야 했다. 한동에서나 쓰는 줄 알았던 Honor Code를 다시 만나서 반가웠다. 로스쿨은 학생들에게 시험은 강의실에서 쳐도 되고 자신의 carrel에서 쳐도 된다는 선택지를 주었고, 강의실에서도 감시하는 사람이 없이 오로지 학생들만 남아 시험을 쳤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Honor Code와 무감독 양심시험이라 반가웠다. 나는 양심적으로 시험을 볼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강의실에서 모두 다 같이 시험을 치기는 아주 부담스러웠다.


외국인 학생들에게는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란 점을 감안해서 미국인보다 1.5배의 시간이 주어지는 것 때문에 괜히 친구들 눈치가 보였다. 거의 대부분이 미국인 학생들이라서 4시간 만에 시험을 보고 강의실을 하나둘씩 나갈 텐데, 그 친구들이 4시간이 지나면 시험이 끝난 줄 알고 소란스럽게 할까 봐 괜히 걱정되었다. 또 그 친구들이 시험 끝나고 나갈 때,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4시간이 넘어서도 계속 시험을 치고 있는 나를 보게 되는 것이 괜히 창피했다. 그래서 첫 기말고사부터 나는 쭈욱 내 carrel에서 미국인 친구들의 1.5배 되는 시간 동안 마음 놓고 시험을 쳤다.


정말 열심히 시험을 쳤고, 성적표에 전체적으로 B가 나와서 정말 감동했다. 부족했던 내가 다른 미국인 친구들을 제치고 B를 맞는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B+ 맞은 과목을 보고는 조금만 더 잘했으면 A-도 맞을 수 있었을 희망을 보았다. 드라마가 아니고 현실이었던지라 한 과목은 C+을 맞았다. 그렇게 잠 안 자가며 노력했는데도 내 성적표에서 C라는 알파벳을 보는 게 실망스러웠다. 다른 친구들은 B+맞은 점수도 충격이라면서 좌절하는데, 그 애들 앞에서는 너는 나보다 잘 봤으니까 걱정하지 말라며 위로해주었다. 누가 누굴 위로했는지, 참. 내 점수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목표를 세우기 시작했다. 다음 학기 목표는 성적표에 C가 보이지 않는 것이고, 다다음 학기는 A-라도 한 개 맞는 게 목표였고, 마지막 학기는 졸업하기 전에 최고 성적인 A를 한번 맞아보자는 꿈을 꾸게 되었다.


첫 학기 때의 기말고사를 준비했던 한 달은 정말 내 생애 다시는 똑같이 할 수 없을 만큼 처절하게 공부했던 악몽과도 같았던 시간이지만, 그래서 후회는 없다. 나도 내가 그렇게까지 노력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건 시도해보기 전까지는 몰랐으니까 그걸 해낸 내가 자랑스러웠다. 기말고사 준비는 아직도 로스쿨 때 이야기를 하면 마치 무용담처럼 꼭 빼놓지 않고 하는 단골 레퍼토리가 되어버렸다.


“나 첫 학기 때 처음에 영어도 못 알아듣고 정말 대책이 없어서 기말고사 공부하면서 한 달 동안 도서관에서 2시간 자면서 공부했어.”


다른 친구들의 놀라는 표정을 즐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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