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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H Nov 14. 2019

로스쿨 도서관 안 나의 carrel

내 눈물까지 기억해줄 내 carrel

로스쿨 도서관 안으로 들어가면 3층으로 이루어진, 구별된 새로운 공간이 나온다. 그리고 지하부터 3층까지 책으로 빽빽한 도서관 안, 남는 공간은 carrel들로 가득하다. 로스쿨 모든 학생들은 자신만의 carrel을 배정받는다. 처음 배정받은 내 이름이 쓰인 carrel을 보고 정말 독서실 책상같이 생겨서 깜짝 놀랐다. carrel은 독서실 책상같이 책상 위 공간에 물건 넣을 수도 있고, 책상 바로 위에 형광등과 아웃렛이 있어서 공부하기 정말 편안한 개인 공부 책상이다. 내 carrel은 2층 가운데 계단 옆에 있었다. 2층은 사람들도 많이 돌아다니고, 3층보다는 몇 배는 큰 훨씬 넓은 공간이어서 탁 트였고, 1층이랑 연결된 공간도 보여서 답답하지 않았다. 나는 그 자리를 정말 좋아해서 졸업할 때까지 자리를 바꾸지 않았고, 그 carrel은 2년 동안 내꺼였다.



"로스쿨 도서관에서 느낀 문화충격"


나에게 한동의 오석관 열람실은 공부만 하는 곳이 아닌, 만남의 장이었다. 열람실에서 공부하다가 졸리면 친구들이랑 잠깐 밖에 나가서 바람 쐬면서 이야기하며 쉬곤 했다. 좀 쉬다가 다시 들어와서 저녁 늦게까지 서로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따뜻한 공간이 오석관이었다. 예전에 어디선가 새벽까지 로스쿨 도서관에 불이 켜져 있고 학생들이 빽빽하게 앉아 공부하는 모습을  적이 있. 그래서 모든 학교 도서관이 그런 줄 알고 우리 로스쿨 도서관에서도 그렇게 많은 친구들과 저녁 늦게까지 심심하지 않게 같이 공부하는 모습을 꿈꿨다. 이런 야심 찬 꿈을 안고 들어간 도서관은 새 학기 첫날부터 뭔가 이상했다.


공강 시간에는 왔다 갔다 하면서 친구들이 수업 준비도 하고 공부도 하는 모습을 봤는데, 저녁을 먹고 다시 공부하러 도서관에 돌아오니 거짓말처럼 도서관이 텅 비어 있었다. 그래도 그 넓은 공간에 2명 정도는 저 멀리서 공부를 하기도 했다. 평일에는 도서관 문을 저녁 12시에 닫아서 이야기할 사람도 없이 저녁 12시까지 쓸쓸하게 혼자 공부했다.


‘아직 학기 초라 공부할 게 없어서 그런가.’


언젠가는 공부하러 올 친구들을 기다리면서 한주, 두 주가 지났지만 여전히 저녁 시간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면 얘네는 도대체 공부를 어디서 하는 거야라며 친구들한테 저녁에는 공부를 어떻게 하는지 물어봤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집에 가서 저녁 먹고 집에서 공부한다고 했다.


한국에서 학창 시절을 겪은 나한테 어느새 집은 시험기간이 아니면 굳이 공부하지 않고 휴식을 취하는 공간이 되어 버렸다. 학교에서, 같은 반에서, 심화반에서, 오석관에서 많은 친구들에 둘러싸여 이 깊어질 때까지 공부하는 데에 익숙해져 있어서 텅 빈 새로운 로스쿨 도서관이 낯설었다. 기숙사에서는 도저히 공부를 할 마음이 안 들었다. 기숙사에 가면 친구들이 있었고, 라운지에 앉아서 친구들하고 이야기하는 게 좋았고, 내 방에서는 책상에서 공부하다가도 어느새 책상 옆에 있는 침대에 누워서 한국 드라마를 봤다. 나는 집이라는 공간에서는 공부에 집중 못하겠어서 그냥 도서관에 갔다.


내가 꿈꿔왔던 친구들과의 알콩달콩한 공부는 끝내 졸업할 때까지 이루지 못하며, 나는 내 carrel 붙박이가 되어버렸다.


"Carrel 중독자"


막상 carrel에 앉아 공부하지만, 마음은 무거웠다. 내가 이렇게 노력하더라도 도저히 수업을 따라잡을 수 없을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학교 공부에 완전히 적응할 때까지 내가 할 수 있던 최선을 다했다는 기억을 미래의 나한테 남겨주고 싶었다. 일단 할 수 있는 것을 해보기로 하고 나만의 규칙을 만들었다.


‘매일 도서관 문 닫는 시간까지 carrel에 앉아 공부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물론 앉아 있는 시간 동안 공부만 하진 않았다. 공부를 하다 힘들면 친구들과의 수다 대신 그리운 한국 드라마, 예능, 영화를 봤다. 잠깐 한국 티비쇼를 보는 동안은 내가 미국에 있는 게 아니라 한국의 어디 도서관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잠시 휴식을 취하고 나면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두꺼운 책을 다시 펴고 공부를 시작했다. 정말 책을 다시 피지 못할 정도로 공부를 다시 시작하기가 두렵거나, 미래가 걱정돼서 우울해질 때는 두 시간 정도 잠시 로스쿨 건물을 벗어나 호수를 건너 음대로 향했다. 학기 초에 친구가 우리 캠퍼스에도 피아노가 있다면서 음대에 데려가서 같이 피아노 치며 놀았던 이후로, 종종 힘들 때면 위로를 얻고 다시 힘을 얻으려고 피아노를 찾아갔다.


피아노를 오랫동안 안쳐서 손이 굳어 있어도 한 시간 정도 치다 보면 다시 손이 풀렸고, 남은 시간은 내가 듣고 싶은 음악을 쳤다. 정말 웃겼던 건, 피아노를 자주 쳤던 예전보다 연주를 하는 손가락이 정말 빨라졌던 것이다. 그동안 교수님 강의 들으면서 노트북으로 타자를 빨리 치는 버릇을 들였던 게 자연스럽게 피아노 연습이 되었다. 다시 공부할 마음이 들 때까지 충분히 내 마음을 달래주고 나선 다시 carrel로 돌아와 도서관 문 닫는 시간까지 공부를 했다. 이렇게까지 carrel에서 공부하는 것에 집착했던 이유는 내가 나중에 이 시기를 돌아볼 때, 뭐라도 노력해봤으니 미련은 남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길 바래서였다.


"집에 가는 길"


아직도 저녁에 한적한 길을 걸을 때마다 항상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저녁 12시에 도서관을 나와 기숙사로 가는 저녁 캠퍼스 길은 평생 잊을 수 없다. 우리 학교를 둘러싸고 있는 동네는 가로등이 없어서 길거리가 정말 깜깜하다. 버지니아에서도 시내가 아닌 이상, 보통 마을에는 가로등이 없어서 길거리에 있는 각 집에서 비춰져 나오는 불빛들이 가로등 역할을 대신해준다. 그래서 그 동네에서 그 저녁에도 유일하게 환한 빛을 볼 수 있는 곳은 우리 캠퍼스뿐이었다. 로스쿨 도서관을 나오면 캠퍼스 구석구석 주황 색깔 가로등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고, 밤하늘 별은 셀 수 있을 만큼 보였다.



아무도 걸어 다니지 않는 환한 캠퍼스를 가로질러 기숙사로 가는 그 10분 동안은 낮에 짹짹거리던 새들도 조용하고 가끔 귀뚜라미 소리만 들리는 적막이 있었다. 캠퍼스의 낮은 바빴고 예쁜 꽃과 나무들과 새소리로 가득했다면, 캠퍼스의 밤은 바쁜 일상에 눌러 왔던 불안함과 초조함이 고개를 드는 시간이었다. 그 저녁 시간만은 온전히 내 시간처럼 느껴졌다. 사람 한 명 보이지 않는 캠퍼스를 걸어가면서 보통은 소리를 내어 노래를 따라 불렀고, 가끔은 눈물이 고인 채로 노래를 따라 불렀고, 도저히 내가 감당할 수 없이 지쳤을 때는 힘 없는 목소리로 신을 찾으며 기숙사로 가는 길을 걸었다. 어느 날 저녁은 도서관에서 나와 기숙사 반대쪽 호수를 향해 걸었다. 검은 호숫물을 바라보면서 호숫가 옆에 쌓은 담 위에 올라가 호수에 바짝 붙어 걷기도 했다. 모르는 척 한번 발을 헛디뎌 볼까.


그 시간에는 뭐라도 하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아서 밤마다 그렇게 노래를 르며 걸었다. 나처럼 온전히 혼자 시간을 보냈을 들판에서의 다윗을 떠올렸다. 얼마나 많은 노래를 불렀을까. 왜 다윗이 노래를 잘한다고 소문이 났는지 알 것 같다. 음도 잘 못 잡던 연약한 내 성대는 2년간의 하드트레이닝으로 이제는 꽤 쓸만해 졌다. 그 시간을 지나는 동안 온 마음을 담아 처절하게 노래 부르는 법도 터득했다. 환한 밤. 집으로 가는 길은 신과 가까워지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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