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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감 Sep 04. 2020

제발 문제 좀 들고 오지 말라는
경영자

한번 더하면 잘할 것 같은 경영

한 달에 두 번씩 정기적으로 산행을 다니는 백두대간 팀을 따라다닌 적이 있다. 처음 가는 날인데 비 올것같다는 얘기를 듣고 걱정이 돼서 산행 대장에게 물어봤다. '아 이번에는 비가 오는구나 하고 가면 돼요' 라는 현답이 돌아왔다. 수시로 바뀌는 날씨에 맞게 우비나 아이젠을 준비해가면 된다. 회사일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어차피 생기게 되어있다. 유능한 기술자는 공장이 잘 돌아갈 때보다 섰을 때 존재감이 돋보인다고 한다. 신속하게 문제를 찾아내고 풀어서 공장을 다시 가동하는게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어디 가나 지위가 높아질수록 해결해야 하는 문제도 복잡해지고 엄중해진다. 회사가 난관에 봉착했을 때, 경영자가 이제야 밥값을 하게 됐다는 듯이 자신의 방식과 소신을 가지고 '늠름하게' 문제를 다루어 나가면 부하들이 안심한다. 문제에 끌려 다니지 않고 문제를 끌고 가기 위해서는 경영자의 역량과 담대한 자세가 필요하다. 그런데  현장에는 이와는 거리가 먼 행동을 하는 책임자들이 많다. 




흔한 유형이 짜증형이다.

아랫사람이 문제를 보고하면 신경질부터 낸다. 문제와 그것을 전달하는 사람을 동일시하는 어리석은 행태다. 인상 쓰는 상사의 모습을 즐기는 부하는 없다.  아랫사람은 일단 문제를 숨겼다가 상사의 심기가 괜찮을 때 슬그머니 들이민다. 비서를 통해 직원들에게 중계되는 상사의 '현재 상태'는 그래서 중요 정보다. 문제는 질병과 같아서 숨길수록 더 심해질 뿐이다. 그러다가 일이 커지면,  왜 여태 보고 안 했냐고 닦달하기도 한다. 그전에 다른 부서로 발령 나는 부하는 천운을 타고난 사람이다. 


도피형도 꽤 있다. 

문제를 보고해도 덮어 두고 가타부타 얘기를 안 해 줘서 실무자를 답답하게 만든다. 그러다가 해외출장이나 가버리면 문제는 계속 썩어간다. 아주 가끔은 부하들이 하는 수없이 맡아 처리하기도 하지만, 대개 호미를 막을 건을 가래로도 못 막는다. 

또 다른 유형은 문제의 원인을 전임자나 부하직원 탓으로 돌리고 원망부터 시작하는 경우다. 

내가 이런 자질구레한 일에 힘을 빼야겠냐고 신세타령을 하거나, 뭐 이런 회사가 다 있냐며 문제를 회사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 부임한 지 얼마 안 되는 경영자에게서 보는 유체이탈 화법이다. 문제 발생과 관련이 있는 직원에게 완전한 해결을 종용하며 협박을 하기도 한다. 경영자는 부하에게 문제의 해결을 지시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해결의 책임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최종 책임은 경영자가 진다. 그런 거 하라고 거기 앉혀 놓은 거 아닌가?


안절부절형도 있다.

이 문제로 인해 당장 회사가 망하기라도 할 듯이 한숨을 쉬면서 직원들을 불안하게 한다. 하지만  경험이 부족한 경영자는 이렇게 걱정 이래도 해야 한다. 퇴근을 하면 모든 업무는 잊어버리라는 말은 말단 직원들에게나 해당한다. 경영자가 어떻게 회사일을 24시간 중 한 시라도 잊을 수 있겠는가. 또 그게 마음대로 되나? 골똘히  생각하면 답이 나오는 수가 있다. 

모르겠거든 걱정 이래도 하세요! 

걱정도 노력이다.




외부 전문가(컨설탄트)의 도움을 받는 것도 방법이지만 신중해야 한다. 등산 가다 땅꾼에게 길을 물으면 약초나 뱀을 찾아다니는 험한 길을 안내하고, 차를 타고 가다 초등학생에게 길을 물으면 자전거 길을 알려주기 십상이다. 컨설턴트의 과거 해결 사례를 꼼꼼히 따져 보고, 관련 업계 전문성과 경험이 검증된 사람이나 회사를 골라야  한다. 명성만 믿고 맡겼다가는 회사 내부 사정 설명하다가 세월 다 보낸다.  그러고 나서 파워포인트 슬라이드 100 장들이 유에스비와 함께 그 지겨운 '노래'나 듣게 된다. '일은 당신들이 하는 거고요,  컨설턴트는  방법만...'  




경영자는 기꺼이 문제의 해결사를 자처해야 한다. 적진에  뛰어드는 용장처럼  과감하게 문제와 맞서야 한다. 결과는 문제를 대하는 경영자의 태도에 달려있다. 전 세계의 지도자들이 코로나 대유행의 비상사태에 대처하는 자세를 보면 각각의 특성과 철학을 비교할 수 있다.


고통을 겪고 있는 시집간 딸에게 친정엄마가 해 주었다는 이야기를 인용한다. 출처는 모른다. 

첫 번째 냄비에는 당근을 넣고,
두 번째 냄비에는 달걀을 넣고,
세 번째 냄비에는 커피를 넣으시는 것이었다.
팔팔 끓어오르기 시작한 세 개의 냄비.
그럻게 아무 말 없이 한참이 지나서야
불을 끄고 엄마는 내게 말하였다.
"이 냄비 속 세 가지는 모두 역경에
처하게 되었다.
끓는 물이 바로 엄청난 역경이었는데
세 가지는
각자 어떻게 대처했을 것 같니?"
가만히 있는 나에게 엄마는 다시 말했다.
"당근은 단단해. 또, 강하고 단호했지.
그런데 끓는 물과 만난 다음 당근은 
한없이 부드러워지고 약해졌어.

반면에 달걀은 너무나 연약했단다.
그나마 껍데기가 있었지만, 보호막이
돼주진 못했다.
그래서 달걀은 끓는 물을 견디며
스스로가 단단해지기로 결정했어.

그런데 커피는 다른 것하고 다르게
독특했어.
커피는 끓는 물과 만나자 그 물을
모두 변화시켜 버린 거야."

나는 어느새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우리 딸, 힘드니? 
너는 지금 당근일까, 달걀일까, 
 커피일까?"



그렇다고 모든 문제를 관리자가 직접 다루라는 게 아니다.  실무자들도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개입시킨다.  

문제를 보고 하는 실무자에게 '그래서? '라고 물어보세요! 

'그래서라니요' 하고 반문하는 직원은 없다. 대개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타개책을 꺼내 놓는다. 상황이 끝난 뒤 노고를 치하하는 소주잔을 돌리기는 것보다 먼저 해야 할 게 있다. 아직 기억이 생생할 때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는 일이 그것이다. 



주역周易의 지천태地天泰 괘에서는 지도자의 덕목 중의 하나로 용빙하用馮河를 꼽고 있다. 황하黃河를 맨몸으로 건너는 용맹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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