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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감 Sep 06. 2020

대리급 사장

한번 더하면 잘할 것 같은 경영    


<진로 방해 관리자, 브런치 , 2020.9.7. 필자 > 일부를 인용하여 재발행했습니다. 



어느 (중고등) 학교나 '미친개' 별명을 가진 선생님이 한 분 정도는 있듯이 회사마다 '대리'라는 별명이 붙은 사장이나 관리자가 있다. 시시콜콜 따지는 사장이나 임원이 본인도 모르게 대리 꼬리표를 달고 만다. 




대리는 대표적인 실무 직급이다. 관리자는 실무자를 감독하는 일 말고도 판단하고 해결하는 리더의 역할이 만만치 않다. 실무자와 관리자는 조직에서 상하 관계에 있으면서도 각각 실무와 리더의 두 영역을 나누어 맡고 있는 협력자라고도 볼 수 있다. 


'대리'급 관리자는 실무자의 업무 프로세스를 세세하게 관찰하면서 이미 실무자에게 위임한 업무까지 간섭하고 지시하려고 든다. 요즘처럼 역동적으로 돌아가는 현장에서 실무자가 일일이 관리자의 지시와 승인을 받고 대응하다간 날 샌다. 의사가 위암 수술하다 말고 병원장실에 가서 '위를 얼마나 절제할까요' 물어보지 않는다. 관리자는 일정 부분 실무자에게 재량권을 위임한 후 후방에서 지원해주는 한편 자기만 할 수 있는 리더 업무를 처리 해야 한다. 안 그러고 관리자가 좁쌀 영감처럼 실무를 미주알고주알 참견하다 보면 자연히 관리자 본연의 업무에 소홀하게 되고  관리 업무의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다. 거기다 실무자의 책임 의식까지 희석시킨다. 



이런 현상은 상사의 역할이 관리 감독 중심이었던 전통적 조직 문화에 기인한다. 실무자가 일정 기간 경험을 쌓은 후 성과를 내고 인정받으면  승진을 (기대)하는데, 사무 직종에서 승진은 으레 간부사원을 거쳐 관리자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직급의 사다리를 타고 높이 올라갈수록  밑에 거느리는 부하직원의 수도 늘어난다. 직위를 가지고 사회에서 출세의 정도를 가늠하는 우리 정서로 말미암아 기술직이나 교육자까지도 관리 사다리를 선택한다. 


예전(아주 오래전)에 명절 때 모인 집안 어른들이 당시 직장에 다니시던 아버지에게 먼저 묻는 말이 '편하냐'였다. 아버지의 대답은 '예, 뻰(펜) 대만 굴리니까요'였다. 몸뚱이를 고단하게 움직이지 않고 실내에서 사무를 보는 직업 자체가 일단 성공이었고, 승진의 동기도 남을 부려서 덜 일하고 더 편해지는 거였던 시절이었다. 이 뿌리 깊은 후진적 관리자 상이 아직도 일부 조직에 잔존하고 있다. 


  

유능한 실무자가 반드시 유능한 관리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히딩크 감독도 현역 선수 시절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고 한다. 실무자와 관리자의 덕목이 다른 것이다. 의술이 훌륭한 의사라고 해서 유능한 병원장이 되지도 않고 그럴 필요도 없다. 관리 역량이 부족한 실무자가 준비 없이 관리자로 승진하게 되면, 관리자 고유 업무는 제쳐 두고 익숙하고 만만한 실무만 집적거리고 간섭한다. 이런 조직의 생산성은 저조하다.  


저성장, 그리고 디지털 시대에 들어서면서 이런 수직형 모델은 수직-수평 복합형으로 바뀌고 있다. 조직의 상하 계층도 압축되어 관리자 자리도 줄어들었다. 이제 관리자는, 수직 구조에서 생기는 (=걸리적 거리는) 소통의 손실을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을 부가 가치로 존재 이유(=밥값)를 입증해야 한다. 대리급 관리자의 설 데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문화재 관리청 
옛날 임금의 면류관 앞에 많은 주옥을 늘어뜨린 이유는 임금이 너무 자세히 보지 않도록 함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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