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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감 Sep 03. 2020

몰라서 무례한 경영자

한번 더하면 잘할 것 같은 경영

리      이렇게 경영하면 회사 문 닫는다 

직장 초년 때 서독에 출장 갔다가 낯선 이한테서 'impolite 무례하다'라는 '지적'을 받았다. 황당했다, 내가 새치기를 했단다. 베를린 공항에 도착 후 짐이 안 나와서 민원 창구에 가서 신고를 했는데,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을 미처 못 봤던 거다. 억울하게도 국제 얌체가 되고 말았다. 외국에 나가면 주눅이 들던 시절인데 내가 안에서도 안 하는 새치기를 밖에 나가서 할 리가 있나? 초행길인 데다 창구에 바싹 붙지 않고 좀 여유 있게 떨어져서 줄을 서는 그들의 관습을 (그때는) 몰라서 그랬을 뿐이다. 그 사람들은  당시 이미 어느 정도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시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젠 우리나라 사람들도 해외여행들을 자주 해서 서양 관습이 생소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아직 익숙하지도 않다. 우리나라에서 여닫이문을 드나들 때, 다음 사람을 위해 잠시 잡아주지 않았다고 해서 무례한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서양에서는 엘리베이터가 멈췄을 때 옆 사람을 헤치고 쌩하니 내리면 둘 중의 하나로 생각한다. 화장실 등 긴급한 용무가 있거나 아니면 미개인. 영화에서 보면 주인공이 골목길에서 도망가는 악한을 쫓다가 행인을 밀치거나 하면 그 와중에도 미안하다고 외치면서 뛴다. 


한국 경제의 대외 무역 의존도는 70%에 가깝다. 일본의 두 배가 넘는다고 한다. 그래서 기업에서는 사람 뽑을 때나 승진시킬 때 영어 실력을 따진다. 그런데 영어만큼 중요한데도 간과하고 있는 게 외국의 문화이고 특히 서양 예절이다. 덩어리가 큰 해외 사업을 추진할 때 경영자가 결정적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거꾸로 다 된 밥에 코 빠뜨릴 때도 있다. 회사를 대표하는 사람의 대외 소통 능력은 막중한데 소통은 말로만 하는 게 아니다. 소통의 시작은 첫인상이고 첫인상은 바른 예절이 좌우한다. 외국어를 잘 한들 기본예절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대화가 얹히고 분위기는 산만해진다. 경영자들은 안에서는 부하들이 떠받드니까 예절에 비교적 둔감한데, 외부에 나가면 격식을 요하는 자리에 자주 노출된다. 높은 사람의 실수는 실무자의 그것과 비교해 타격이 크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본다.


국제회의에서는 공식 회의 말고도 중간중간 막간을 이용해서 대화를 하는데, 알맹이 있는 건을 해결하는 데도 긴요하게 활용한다. (다자간 국제 정상 기구 회의도 그런 것 같은데 안 해봐서 모른다.) 대개 두셋이 커피잔을 들고 서서 얘기를 하는데, 이때 구면이라고 다가가서 툭 치면서 말을 붙이는 건 실례다. 도리어 회의 중에 발언자의 말을 자르고 들어가는 건, (환영받진 않지만) 큰 실례가 아니다, 필요할 때도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대화에 불쑥 끼어드는 건 조심해야 한다. 옆에 서서 기다리면서 차례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그 인간들이 계속 모르는 체하고 내게 눈길을 안 주는 경우는(가끔 그런다), 그들이 하고 있는 얘기가 되게 중요하거나 아니면 내가 중요하지 않거나 일 것이다. 또 다른 이유도 하나 있는데 여기선 생략한다. 


경영자가 외국 거래선을 방문하면 흔히 격조 있는 식당에서 대접한다. 우리 경영자들이 이런 행사를 그다지 즐겨하지 않는 이유는 긴 식사시간, 언어, 빈곤한 화제, 어색한 식탁 예절 등인데 무엇보다 한국인 동료들과의 소주를 곁들인 편안하고 정겨운 저녁 시간이 그리워서일 것이다. 식사도 일이다. 싫은 기색을 하고 식사 주문을 옆에 앉은 졸병한테 일임한다든지, 상대방이 얘기하는 데 고개 숙이고 '과묵'하게 먹는 데만 열중하면 오해받는다. 국제 사회에서 교류할 때는 서로 언어가 다른 만큼 문화와 관습도 차이가 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은 한다. 원탁에서 실수로 옆 사람의 물을 마셨다고 해서, 물 잔의 주인이 기분 나빠하진 않는다. (이런 식사예절은 책이나 인터넷에 차고 넘친다. 한두 번만 읽어보면 된다. 아니면 그냥 '좌左빵우右수' 를 외우든지, ) 반면에 팔을 높이 흔들면서 큰소리로 식당 종업원을 부른다든지, 밥 먹다가 말고 나가서 담배 태우고 오는 것은 피하는 게 좋다.  나는 안다. 꼭 담배를 못 참아서가 아니라 그 자리가 숨 막혀서인걸. 

적어도 후식 나올 때까지는 참으세요! 




우리 민족은 전통적으로 체면과 예의를 중시했다. 동방 예의지국까지 안 팔아도 예절 하면 어디 내놔도 꿀리지 않을 자신이 있는 나라다. 다만 배려와 존중을 예절의 기본 바탕으로 깔면서도, 동서양 간에 예절의 무게 중심이 다를 뿐이다. 동양에서는 윗사람을 공경하고 아랫사람을 사랑하는 경애의 범절이 발달한 반면, 서양에서는 개인주의와 합리주의를 강조하는 평등의 예의가 두드러진다. 외국어를 모르면 불편함으로 끝나지만, 그 나라 예절에 어두우면 인격을 의심받을 수가 있다. 앞에 소개한 베를린 공항의 사례처럼 몰라서 실례한 건데 무례하다 소리를 들으면 참 억울하다. 차라리 무식하다고 하는 게 낫다. 어떤 경우엔 동양인들을 아예 가르치려 드는 자들도 있다. 그래서 상대방의 문화를 익히는 것이다. 예절도 언어도 외국 문화의 일부이다. 서양 사람들 중엔 동양에서도 빵이 주식인 줄 아는 이들이 있다. 서구가 주도하는 근대화의 영향으로 동양은 서양의 문물을 많이 이해( 또는 하려고 노력 ) 하지만 역으로 서양 사람들은 동양의 문화에 아직 어둡다. 그러니 아쉬운 쪽이 따라가는 수밖에 없다. 예절의 근본은 남을 배려하는 상식이다. 남의 나라의 예절을 존중하는 것 또한 배려다.


말도 예절도 모두 다 잘 모르겠으면 마지막 남은 카드는 진정성이다. 참된 맘에서 우러나는 행동이 가끔 언어와 예절을 초월한다. 상대방의 호의에 몸짓으로 고마움을 표시하고, 나의 생각을 우리말로라도 정성스레 표현하면 통할 때가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잘 모르면 그냥 모르는 시늉을 하든지 또는 뜨악한 표정이래도 짓는 게 안전하다. 

짐짓 알아듣는 척하고 싱글싱글  웃고 있는 건 위험합니다!  그리고 입도 아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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