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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감 Nov 23. 2020

정치인의 저능한 소통과 저급한 말

말이 참 서투르다




우리나라 정치의 수준이 제자리에 머물고 있는 이런저런 이유 중에 저능하고 저급한 소통이 있다.

말이 참 서투르다 


정치인은 정치의 소비자인 국민과 주로 말과 글로 소통한다. 매체를 언론으로 하던, 소셜 미디어로 하던 글보다는 아직 말이 중심 수단이다. 정견과 정쟁은 말을 통해서 교환하고, 대선 총선 토론도 말로 하고 청문회도 말로 한다. 정치인에게 말은 중요한 공적 도구다. '판결문으로 말하는' 판사와 비교된다. 그래서 말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국회로 보내라는 우스갯소리도 한다 ( 국회의원이 말이 많다는 건 동의하지만, 말을 잘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






저능한 소통


국민의 입장에서 헷갈리는 정치 현안이 있을 땐, 경쟁 정파 간의 토론을 보고 판단의 중심을 잡는다. 논쟁을 통하여 각 주장의 근거와 명분을 이해하고 자신의 지지 여부를 결정하기도 한다. 그들이 속한 정파의 정치 철학적 일관성도 확인하고, 정치인 개인의 됨됨이도 아울러 평가할 수 있다. (이런 기회를 잘 타서 출세한 정치인들이 꽤 있다.) 그래서 국민은 기왕이면 일방적인 연설이나 발표보다는 반론과 질문을 실시간으로 비교할 수 있는, 양방향 대화를 선호한다. 기자회견, 상임위, 국정조사, 청문회, 국회 질의 따위가 있다. 다시 말해서 정치적으로 반목하는 양측의 공개된 공방을 기대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정치인들의 공방은 호흡이 좀 짧다. 마치 테니스 초보자처럼 툭하면 공이 라인 밖으로 튀어 나가서 리듬이 끊어진다. 보는 사람으로서는 연타가 좀 연속되어야지 보는 재미도 있고 실력도 제대로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대화 몇 마디 하면 금세 큰 소리 나오고 더 큰소리로 반격한다. 정견의 공방이 아니고 욕설의 교환으로 전환한다.


예를 들어 (현실 정치 소재를 피하기 위해 고상하지 못한 예를 드는 걸 양해 바람), 경찰이 길거리에서 방뇨하는 사람을 적발했는데, 방뇨한 자가 냅다 '그럼 날 보고 바지에 싸란 말이냐' 하고 되레 성을 냈다고 가정하자. 이때 움찔하거나 어따 대고 소리 지르냐며 맞대응하는 경찰은 별로 없다. 대신에 (바지에 싸고 여부는 경찰이 알 바가 아니고) 공공장소에서 방뇨하면 경범죄에 해당하고 범칙금을 물 수 있다는 사실을 조근조근 고지해 준다.


여기서 경찰관을 정치인으로, 방뇨를 정치 현안으로 등치 해보자. 내가 목격한 우리 정치인들은, 상대가 버럭 하면서 동문서답하면 '어따 대고 소리를 지르냐', '누가 바지에 싸라고 했느냐' 하는 식으로 같이 소리를 지른다. 또는 90도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문이 막히고 한숨을 쉰다. 회의는 난장판이 된다. 논쟁은 누가 더 센 욕설이나 반말을 했는지와 무례함에 대한 사과의 주체가 어느 쪽인지로 대체된다


몇 시간 후에 유감 표명 같은 거 엎드려 절 받기 식으로 하고 나면 정작 문제의 본질인 '노상 방뇨'는 묻혀버린다. 주제는 소멸되고 이후에 다시 거론하는 이도 없다. 그리고 신이 난 언론은 그날 밤 톱뉴스로 양측의 난동을 '날 선 공방'이란 멋진 표현으로 포장해 주고 출연한 의원들도 밥 값한 걸로 기록된다. 사실 공방은 하기도 전에 사그라들었다.


이런 엉터리 프로세스가 작동하는 현장을 학습한 정치인들은 대답이 궁하면 원색적인 가짜 공방으로 빠져나간다. 한심하게도 본질을 흐린 동문서답 팀의 승리로 기록된다. 대답이 궁할 짓을 하지 말하야겠다는 동기도 동시에 연약해진다. 너무나 우리에게 익숙한 이런 장면은 정치인들의 저능한 소통에 원인이 있다.


따져야 할 주제가 있다면, 실력 있는 정치인은 상대방이 (의도적이건 감정이 격해서든) 흐름을 끊는 작전으로 나와도 말려들지 않는다. 끈질기게 원래 요점을 놓치지 않고 끝까지 파고들어 현장에서 따끔하게 결론을 내주면 다음에 함부로 못한다. 그런데 이게 실력이다. 4부 합창할 때 자기 파트의 음에 자신 없는 참에 옆에 다른 성부에서 누가 큰소리로 치고 나오면 그걸 따라 한다.


실력은 면밀한 준비, 집중력과 순발력 그리고 용기로 이루어진다.

묻은 이의 의지가 있으면,

답하는 이가 불순한 의도로 딴소리를 늘어놓아도, 바둑 몇 수 앞을 보듯이 미리 계산하고 바로 압박하여 밀고 나간다.

사전 준비와 집중력이 필요한 이유다.

순발력은 소질보다는 사안에 대한 관심이 있으면 저절로 해결된다.







저급한 말


말은 글보다 효율적으로 정보를 실어 전달할 수 있는 소통 수단이다. 반면에 말의 즉흥성과 주워 담을 수 없는 '낙장 불입의 원칙' 때문에 정치에서 낙마한 이들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재앙이란 뜻에서 설화舌禍라고도 한다. 필화筆禍가 작정하고 저지르는 소신성인데 비해, 설화는 대개 실수에서 비롯한다.


정치인의 말실수는 삿되고 사적인 감정을 통제하지 못해서 벌어진다. 개인의 말실수는 주위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만 정치인의 말실수는 국민에게 상처를 준다. 그리고 끝내 자신도 무너진다.


위정자의 말은 위력이 있다. 그래서 의욕이 넘치고 감정이 충만해서 말실수를 저지르는 정치인은 위험하다. 공적인 자리에서 지지자들에 의해 들떠서 기분대로 떠드는 공인은 만취해서 중환자를 수술하는 의사와 다름없다.


말실수를 하고 나서 '그런 뜻이 아니었다, 오해다'라고 하는 정치인은,

1) 비겁하다 : '해서는 안 될 말을 했다' 하고 승복하는 게 그나마 용기 있다. 정치인은 용기 있어야 하고, 욕도 먹을 줄 알아야 한다. 또는

2) 바보다 : 왜 오해의 여지가 있는 말을 막 하고 고생하나? 또는

3) 어리석다 : 오해라는 말을 믿는 사람이 있다고 믿나?


정치인의 말은 공적 도구이므로, 그 언어는 정제되고 공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따라서 정치인의 저급한 상소리 막말은 공금 횡령이나 다름없다.


소설가 김훈은 ‘연필로 쓰기’에서 '말이 병들면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 듣는 자가 있어야 말이 성립되는데, 악악 대고 와글거릴 뿐 듣는 자는 없다'라고 했다. 품격과 품위를 상실한 막말이 난무하는 정치에서 무얼 기대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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