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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감 Dec 03. 2020

인종 차별을 구별하자.

이나라 저나라에서 겪은 일들

몇 주 전에 미국 유명 방송 CNN이 자기네 회사 앵커인 아마라 워커가 출장길에 인종 차별을 당했다고 보도했다. 당사자가 한국 출신이라서 국내 언론에도 기사가 났다. 미국 뉴올리언스 공항에서 모르는 백인이 다가와서 중국어 인사말로 조롱하더니 조금 있다 마스크도 안 쓴 또 다른 자가 와서는 어느 나라말을 할 줄 아느냐고 행패를 부리더라는 거다. 비키라고 해도 안 가고 서서 조롱을 해대서 옆에 동행한 동료 직원이 공항 경찰을 불러서 사정을 얘기했더니, 이번엔 경찰이 됩다 그게 무슨 인종차별이냐고 화를 내면서 소리를 지르더라는 것. 당사자는 아마 경찰의 고압적인 태도에 더 기가 막혔을 것이다. 그 느낌 안다.


When I experienced racism, I didn't think others would care -- but I was wrong

Opinion by Amara Walker, CNN

Updated 2112 GMT (0512 HKT) November 2, 2020



차별이나 따돌림이 주는 사회적 고통이 사람의 뇌에 주는 충격은 몸에 화상을 입는 정도의 아픔만큼이나 크다고 한다. 인종차별은 해외 생활하는 우리나라 사람을 좌절시키는 주범 중 하나다. 다른 하나는 언어. 요즘은 코로나로 인해 동양인들이 중국인으로 오인받고 봉변당하는 일이 늘고 있다고 한다. 


며칠 전에 브런치 서연 작가님 https://brunch.co.kr/@jkimmy80/39 이 올린 글 '인종차별을 겪고 깨달은 것들'도 비슷한 내용이다.


필자도 해외에서 생활할 때 이 문제로 심적 고통을 받은 경험이 적지 않다.


필자가 리비아의 지중해변 벵가지 시에 파견 나가 근무할 당시는 무아마르 카다피가 나라를 철권통치하며 철저한 반미, 사회주의, 범 아랍 주의 정책을 표방할 때였다. 대다수의 현지인들이 외국인에 적대적이었는데, 주유소에 가면 종업원이 볼펜 달라고 하고 모자를 벗겨가는 일도 있었다. 길에서 외국인이 낀 교통사고가 나면 길 가던 사람들이 주욱 둘러서서 무조건 외국인의 과실을 주장했다. 아랍인을 제외한 모든 외국인에게 적대적인 배경에는 1,2 차 세계대전 중 외세에 짓밟힌 역사가 있었다. 아이들까지 길에서 외국인들에게 돌을 던지는 극단적 배타주의를 목격했다. 역사에 의한 편견이 원인이다.


백인이 주류인 나라에서의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은 광범위하고 고질적이다. 여러 인종이 모여사는 대도시보다 시골이 더 심할 수 있다. 미국 남부에서 유색 인종이 여행을 하면서 인심 좋아 보이는 한적한 시골 동네에 기름 넣으려 들어갔다간 봉변당할 수 있다고들 경고한다.


미국에서 살 때 겪은 일 중의 일부를 예로 든다.


식구들과 같이 몬태나 주의 국립공원에 가서 어느 식당에 들어가 앉았는데 종업원이 주문은 안 받고 딴청을 피운다.
애들 학교 선생님한테 할 말이 있는데, 다른 학부형 하고 십 분을 계속 수다를 떨면서도 옆에 서서 기다리는 필자한테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갓난아이가 열이 있어 동네 소아과에 가서 접수해놓고 앉아서 기다렸다. 우리보다 늦게 온 환자가 치료받고 집에 가는 데도 우리 애는 도무지 부를 생각을 안 한다.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아시아 사람에 대한 부당한 차별로 여겨서 분개하고 따졌다. 그런데,


몬태나 식당 건은 얘기를 하니 미안하다면서 메뉴를 가져다주었다. 종업원이 우리 주문을 받은 걸로 착각했을 수도 있다. 몬태나 여행 가기 직전에 아는 사람이 거기 가면 인종차별 심하다고 (근거 없이 ) 한 마디 한 것이 필자를 예민하게 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아이 학교 선생님이 다른 학부형과 아이에 관한 심각한 문제를 얘기했을 수도 있고 또는 미리 약속을 한 상담일 수 있다. 수다 떤다는 건 필자의 주관적 판단일 뿐이다.
집사람이 동네 소아과에 항의했다. 그랬더니 접수원이 깜짝 놀라면서 우리 애가 너무 커서 접수한 아이가 아닌 줄 알았다는 거다. ( 당시는 애가 거기 평균보다 많이 컸는데 지금은 아니다.)


미국에서 인종 차별 논란도 많지만 백인이 75%가 넘는 나라에서 흑인 대통령을 뽑았다. 거기 살면서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도움도 많이 받았다. 한밤중에 앨라배마 고속도로에서 트렁크에 짐 잔뜩 싣고 가다 자동차 펑크가 났을 때, 어디선가 경찰 순찰차가 나타나서 짐 다 내리고 타이어를 갈아 끼워주고 갔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자기 나라 사람들에겐 그렇게까지 안 해준다고.




차별로 인한 가장 큰 피해는 어쩌면 피해의식 그 자체일 수도 있다. 차별받았다고 식식거렸는데 알고 보니 사실이 아니고 지레 넘겨짚은 경우도 많다. 구별을 차별로 오해하고 사소한 건에 과민 반응한다. 구별은 편견이 아니라 근거를 기반으로 한 차별이다. 비즈니스 크라스 승객이 편안한 자리에 앉아 가는 걸 차별이라고 불평하는 이코노미 승객은 없다.


공정하지 못하게 치우친 생각이 편견이다. 인종에 대한 편견을 행동으로 옮기면 인종 차별이 되지만, 역설적으로 차별받았다는 편견이 더 큰 상처를 줄 수도 있다. 그리고 인종에 대한 편견도 파고 들어가 보면 특정 나라나 민족에 한정된 문제가 아닌 결국 인간의 본성에 수렴한다. 남을 경계하는 인간 본능에 뿌리가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차별을 인정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럼 이 문제에서 자유로운가? 우리도 만만치 않다. 남 흉볼 것 없다. 


미국에 들어갈 때 공항 검색대에서 꼬치꼬치 캐물으면 유쾌하지는 않지만 그런가 보다 한다. 그런데 인도에 입국할 때 이민국 관리가 언제 돌아가냐, 비행기 표는 있냐고 물어보면, 속으로 '니네가 여기 살라고 해도 안 산다'라고 중얼거리게 된다. 체코에서 아시아 사람이 인종 테러를 당했다는 뉴스를 들으면 아니꼬운 생각이 먼저 든다. 인종차별도 좀 사는 나라 사람들한테 당하고 싶다는 필자의 심보는 차별조차 차별하고 있다.


공항에서 금발 백인 여자 관광객을 보면 영어학원 원어민 강사로 모셔간다는 민망한 농담을 들었다. 학부모들부터 금발 백인이 정통 영어를 구사한다는 편견이 있다 보니 비영어권 출신 백인까지 강사로 채용하는 일이 있다고 한다. 우리가 미국· 유럽의 백인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가 없다면, 광고 말미에 걸핏하면 튀어나오는 백인 남자를 상상케 하는 굵은 바리톤의 영어 목소리는 어떻게 설명할 텐가?


인종차별은 폭력이고 범죄다. 차별이 분명하고 더욱이 그로 인한 피해가 발생했을 때는 당당하게 맞서야 한다. 나라별로 인종 차별을 금지하는 제도가 마련되어 있어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대놓고 그러기보다는 사실 여부를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은근하게 차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럴 때 피하지는 않되 의연하게 무시하는 것도 괜찮다. 내 감정의 손실도 막아야 할 피해다. 여기서 내 느낌과 기분만 가지고 덤비다간 역공을 당할 수도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차별의 동기를 유발하지 않는 것도 방법이다.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방어운전이 최고의 운전 기술이다. 인종 차별의 동기가 되는 편견은 피부색뿐 아니라 말투나 행동이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품격 있는 말과 행동으로 상대방의 행패를 저지할 수 있다. 유창하게 외국어를 하는 건 맘대로 안되지만, 느리더라도 또박또박하는 건 가능하다. 말은 탁구와도 같이 상대방이 엉성하게 나오면 이쪽도 따라 하게 된다. 소통은 말로만 하는 게 아니다. 예절은 또 하나의 언어다. 기품 있는 언행이 차별의 예방책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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