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감 Dec 23. 2020

코로나 백신에 대해 알아보다
떠오른 실없는 생각

'고졸高卒'의 의미




십 년씩 걸린다던 예방 백신 얘기가 11월 말부터 뉴스 앞머리에 오르내리더니, 미국 당국이 화이자에 이어 모더나의 코로나 백신도  승인했다고 한다. 창궐한 지 돌이 돌아오도록 수그러들 줄 모르는 이 돌림병도 백신의 효능에 따라 이제 고비를 넘길 수 있게 되었다. 워낙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인명이 달려있는 (=엄청난 돈이 걸려있는) 사안이라서 굴지의 백신 업체들이 초특급으로 개발 기간을 단축했다고 한다. 미국 유럽 정부에서도 자금을 지원해 주고 예외적으로 사용 승인을 서둘러 일 년도 안 돼서 완성 단계에 이른 것 같다.


얘기를 더 들어 보면 화이자와 모더나Moderna라는 업체가 사상 처음으로 시도하는 방식에 의해 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고 한다. 그 방식이 바로 mRNA 유전자 방식이라는데 뉴스에서 이 얘기가 부쩍 자주 나온다. 갑자기 'mRNA'는 어린이 지식백과에도 나오는 기초 상식이고, 그래서 '백신이 mRNA 식이라는 구먼' 하면 자기 머리를 쥐어박으며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할 것처럼 천연덕스럽게 떠들어 댄다.


나는 지知적으로 외로워져서 도대체 mRNA가 뭔지 알고 싶어졌다. 예방주사 관련 괴담도 많은 데다 이 백신이 혹시 날림이 아닐까 하는 약간의 의심도 궁금증을 부채질했다. 주위에 알만한 이한테 물어볼래다 결국 구글에서 찾아보라고 할 것 같아 곧바로 검색 포탈에 붙여 넣고 엔터를 눌렀다. 아니나 다를까 아주 모르는 소리 아니면 뉴스 기사가 먼저 뜬다 그리고 모더나의 주식시세까지. 그나마 소득은 DNA을 먼저 알아보라는 귀띔이었다. 내 이럴 줄 알았다. 벌써 몇 년 전에 '그놈'인지 '게놈 genome' 인지 떠들 때 그야말로 '알아봤어야' 하는 DNA다. 유전자, 그리고 화성 연쇄 살인사건 밖에 생각이 안 나는데 DNA가 어떻게 예방주사약이 된다는 건지... 사건은 점점 미궁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이차 저차 해서 내 수준에서 이해한 결론은,


균을 배양해서 약弱(독)화 시키거나 죽여서 백신을 만드는 종래의 방식은 시간이 많이 걸림
바이러스는 박테리아와 달라서 세포 안에 들어가야지만 말썽을 일으킬 수 있음.
코로나 바이러스 표면에 멍게 껍질 같은 빨간 가시 단백질 spike protein만 무력화시키면 사람 세포 안으로 못 들어감.
한편 DNA에 들어있는 유전정보가 단백질을 합성하는 설계도 역할을 함. 그 설계도를 일단 RNA에 복사해가지고 나와서 단백질을 합성하기 시작함. 복사 심부름을 하는, 전달자라는 뜻의 messenger에서 m을 따서 mRNA.
코로나 바이러스의 빨간 가시 조각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 정보를 가진 mRNA를 합성해서 백신을 만듦.
백신을 주사하면 몸속에 들어온 mRNA가 빨간 가시를 생성시키고, 면역세포가 이에 대항해서 싸우는 연습을 하면서 빨간 가시를 무력화하는 능력을 키움 ==> mRNA 방식 백신 업체 : 화이자, 모더나.
빨간 가시는 인체에 무해하다고 함.
나중에 진짜 코로나 바이러스가 몸에 들어와도 이미 한번 연습한 면역세포가 빨간 가시를 무력화시킴==> 사람 세포에 침투하지 못함.
mRNA 방식은 그동안 이론적으로만 연구해오다 이번 코로나 덕분?으로 빛을 봄.
mRNA 가 워낙 불안정한 상태라 유전자를 막으로 둘러싸고 저온으로 유통하는 바람에 비용이 올라감
처음 하는 시도이기 때문에 안전, 안정성이 불안하기는 하지만 지금 영국에서 나타난 변종에 대응이 다른 방식에 비해 훨씬 쉬운 장점도 있음. 유전자만 변형시키면 됨.



상황이 하도 급해서 백신 개발의 기간/안전/안정/ 유통 같은 요소 중에서 기간에 우선순위를 두는 전략으로 추진했고, 시간이 덜 걸리는 mRNA 방식이 사용 실적이 전무함에도 불구하고 첫 번째로 승인받은 것 같다. 시간이 몇 년씩 걸리는 임상시험을 상당 부분 생략했을 거라는 의심이 들고, 유전자를 '쌩'으로 몸속에 집어넣는 게 뭔가 께름칙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접종을 주저하게 만든다. 그래서 각국의 지도자들이 솔선해서 백신 주사 맞는 모습을 공개해서 사람들의 두려움을 불식시키려고 한다. 세계 굴지의 제약회사가 만들고 세계 최강국이 승인했으니 믿고 맞아야 할 것 같다. 백신 접종은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고 집단 면역에 참여하는 의무와도 같다.


나는 생뚱맞게 군대 간 첫날 저녁에 일제히 살충제 DDT 가루를 온몸에 샤워하듯이 뒤집어쓴 게 생각났다. 그 후에 DDT는 발암물질로 알려져 사용이 금지되었다.




EBSi 고교 강의 유튜브 캡처 화면



그런데 이번에 여기저기 마우스 품을 팔아서 검색의 호수에서 건진 정보 중에 결정적으로 도움이 된 건 고등학생을 상대로 하는 EBS의 생명과학 인터넷 강의였다. DNA 복제 편 시간이었는데 대입 준비 학생들을 상대로 해서 그런지 설명이 상당히 체계적( ≠정신없이 )이었다. 인터넷 강의 선생님이 분필로 꼭꼭 눌러 중요한 거에 별 표시해가며 시험에 나온다고 강조하는데 내게는 꼭 알아야 하는 상식으로 들렸다.


고등학교 때 가르쳐주는 것만 알아도 복잡한 백신 방식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나는 이번에 mRNA 검색을 계기로 우리 고등학교에서 가르치는 교양과 상식만 제대로 알고 있어도 세상을 '유식하게' 사는 데 지장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중등 과정의 가치를 새삼 깨닫는다. 내가 아는 MIT 대 공학박사 출신 경영자가 취미로 공통수학의 정석을 읽는 것도 이해가 갔다.


만나기만 하면 검찰개혁이나  부동산 정책 갖고 서로 갈라져서 으르렁거리는 친구들에게 던져주고 같이 공부하자고 해 봐야겠다.







'고졸' 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력을 줄인 말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해야지 (검정고시 출신 빼고) 대학도 가고 대학원도 간다. 하지만 통용되는 고졸의 뜻은 대학에 못 가고 고등학교 졸업했다는 인식이 강하다. 고등高等이란 이름이 민구(면구)스럽다. 요즘처럼 명칭 바꾸기 좋아하는 세태에서 그냥 놔두는 게 이상하다. 고졸을 비하하는 건 고등학교 교과과정을 비하하는 것과 같다.


나는 고3 때 여름방학이 끝나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정신이 버쩍 들었다. 어영부영하다 보니 가려는 대학 시험 준비에 시간이 부족했다. 남은 몇 달 당일치기 식으로 공부하면서 꼼수를 쓴다는 게, 따라 잡기에 시간이 걸리는 과목을 포기하는 거였다. 전략이랍시고 세계사와 수학 과목의 통계 부분에 항복하고 그 시간에 다른 과목을 더 깊이 공략하기로 했다. 그로부터 나는 평생 프로이센 - 오스트리아 전쟁 얘기가 나오면 앞뒤 연결이 안 되고, 신문에서 여론조사 표본오차 95% 신뢰 수준 어쩌고 하면 귀에 잘 안 들어온다. 표본 모평균의 신뢰구간 계산도 감이 안 잡힌다. 고등학교 세계사와 수학 통계 시간에 나오는 평이한 내용이다. 역설적으로 대학입시를 준비하지 않았으면 살면서 잘 써먹었을 상식이다.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을 무시한 어리석은 입시 잔꾀의 결과였다.


고3 마지막 학기에, 통계의 추정과 러시아 튀르크 전쟁사 대신에 외운 고려왕조 순서 태혜정광경성목...은 대학 시험은 물론 이제까지 살면서 필요했던 적이 없다. 자다가 깨서도 외우는 der des dem den 독일어 정관사 격변화는 독일 사람도 나만큼 빨리 못 외운다, 아니 안 외운다. 그런데 난 지금 아는 독일어가 ausfahrt (출구) 정도다. 이 것도 아우토반을 달리면서 알게 되었다.


고등학생들은 오직 대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공부한다. 대학을 안 가고 사회에 진출하려는 학생은 공부를 안 해도 된다는 결론에 이른다. 대학을 가던 안 가던,  2차 대전 후에 한반도와 독일이 분단된 역사의 배경을 이해해야지 정권마다 바뀌는 대북 정책에 대해 나름대로 판단할 수 있다. 고등학교 수업은 대학에 들어가는 목적 외에 사회인으로 살아가면서 필요한 보통의 지식과 기능을 익히는 중요한 역할이 있다.


어떤 면에서는 대학에 가는 진학생보다 이제 더 이상의 정규 교육 기회가 없는 취업반이 더 철저히 배워서 학교 문을 나서야 한다. 대학에 지원하는 학생은 대학 측에서 여러 방식으로 수학 능력을 평가한다. 사회로 진출하는 학생은 배출하는 고등학교에서 교과과정의 이해 정도를 측정하고 내보내는 게 이상적이다. 졸업시험이 필요한 이유다. 사회에서 졸업 자격을 공인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자연히 졸업시험을 통과한 '고졸'에 대한 인식도 바뀔 것이다.


전문분야를 제외하고는 대학에서 공부한 내용보다 고등학교 때 실력으로 직장 생활을 하는 대졸자도 꽤 있다고 생각한다. 직장에서 대졸 신입사원 채용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대학에 들어갈 만한 능력을 사는 것이다. '고졸'이 대학을 못 간 게 아니고 안 간 것일 뿐 고교 과정은 충분히 이수했다고 인정받을 수만 있다면 어떻게 될까? 전문분야의 기술이나 학문 탐구가 목적이 아니고 단순히 취업 스펙을 따려 대학에 가던 학생들은 빵빵한 고졸 실력으로 학업을 마감하고 사회에서 일찍 자리를 잡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난립한 부실 대학도 조기에 정리될 것 같다.


친구들과 만나서 정치 얘기하며 싸우는 시간에 백신의 원리 같은 거나 알아보자고 할 참이었는데 어느새 백신이 정치 이슈가 되어버렸다. 코로나도 정치가 접수했다.









작가의 이전글 딸 자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