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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감 Jan 04. 2021

라면 끓이다가 떠오른
실없는 생각

브런치를 읽다가 브런치를 쓰다.

민현 작가님이 작년 말에 올린 브런치 글을 읽다가 라면 생각이 났다. 


https://brunch.co.kr/@illycoffee/48


오래전 방송에서 여러 사람이 끓인 라면을 평가하는 프로그램을 보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눈을 가린 네 명의 심사위원 모두가 십칠 년 경력의 식당 주인이 끓인 라면에 엄지를 치켜세웠다. 동네에서 라면 좀 끓인다는 아마추어들이 내놓은 나머지는 탈락했다. 내가 놀란 이유는, 꽤나 까다롭고 주관적인 게 사람의 미각인데 만장일치로 전문가의 실력을 알아봤다는 거였다. 모든 정보를 가리고 내용으로만 승부했다가 예상과 다른 생뚱맞은 결과가 나와 심사한 사람들마저 뻘쭘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70년 대에 와인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일등 한 미국 와인은 프랑스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라면이 전문성과 경력이 정직하게 실력으로 연결되는 체계 잡힌 음식이라는 걸 보여준 셈이다. 당시 세어보니 나도 직장 생활한 지 딱 십칠 년 차였다. 내가 내세울만한 확실한 개인기는 무언가 생각하니 갑자기 답답해졌다.


삼양라면이 1960 년대 일본에서 시설을 들여와 생산해서 라면이란 걸 시장에 내놓았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 해 먹을지 잘 몰랐다. 비행기에서 던진 콜라병을 주운 부시맨들처럼 나름대로 조리를 했는데 라면에다 김치를 넣고 걸쭉하게 죽을 쑤기도 한 걸 기억한다. 우리나라가 국민소득 80불의 최빈국에서 세계 10 대 경제대국으로 도약하는 과정에서 라면은 치열한 전투식량으로 동반해 주었다. 이제 라면은 곤드레밥처럼 구황식품에서 기호식품으로 지위가 격상되었다. 경제발전과 더불어 식생활도 꽤 서양화가 되었지만 라면의 위상은 부동이다. 라면 광고모델로 최고의 연예인, 운동선수들만 등장하는 걸 보면 매출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서양사람들이 객지에서 치즈버거 그리워하듯이, 라면은 전통 음식이 아니면서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외국 여행 갈 때 박스로 지고 가는 필수품이 되었다.


군대 생활할 때는 매주 일요일 라면이 나왔는데 조리방법이 그야말로 군대식이었다. 식판에서 증기로 찐 면에 수프 끓인 물을 부어서 배식했다. 면과 국물이 막판에 만나는 따로 식 라면이다. 맛은 밍밍했지만 일주일이 지나갔다는 상징성이 있었다. 제대할 때까지의 기간을 남은 라면 그릇 수로 환산하기도 했는데 그 숫자가 한자리가 되면 말년 선임을 의미했고, 내무반 뻬치카 ( 난방용 벽난로) 당번으로부터 제대로 된 사제 라면을 밤중에 술안주로 대접받는 호사를 누렸다.


일인당 수량 기준으로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라면 최대 소비국이 된 이유는 국수와 국물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스님도 웃는다는 승소僧笑의 별칭이 붙을 정도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하는 국수와 화끈한 국물이 환상의 조합을 이루었다. 부담 없는 가격과 간편한 조리방법에다 60 년대 분식 장려 국가 정책이 날개를 달아 주면서 폭발적인 수요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게 내 추측이다.



가치 

값이 싼 게 라면의 입장에서 억울할 때가 있다. 싸고 맛있게 잘 먹었으면 감지덕지해야 할 판에 '라면으로 한 끼 때웠다'라고 비하한다. 배은망덕이고 라면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라면은 교환가치와 사용가치 사이에 간극間隙이 꽤 큰 식품이라고 생각된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자조와 값이 비싸야지 떠받드는 세태를 악용하여 의도적으로 고가를 매겨 장난질하는 상인들이 있다. 사람이나 물건이나 가격을 보고 거꾸로 내용을 짐작하는 속물근성이 점점 사회를 속 빈 강정으로 만들고 있다. 실력을 기르기보다는 어떻게든지 행세하는 자리를 차지하는 작업에 열중한다. 그렇게 해서 텔레비전에 얼굴 좀 비치면 '중량급'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며 몸값이 올라간다.


라면의 간편한 조리법도 큰 장점이다. 조급한 우리 민족성과 잘 맞아떨어진다. 이 즉석요리법 때문에 라면이 인스턴트식품의 대표선수가 되어 성인병 얘기 나올 때마다 끌려다닌다. 인공조미료, 방부제 덩어리라는 건 속설이고 트랜스 지방, 콜레스테롤 함량도 0이다. 나트륨이 높은 건 사실이지만 국물을 다 들이켜지 않으면 된다.


법과 원칙 

라면 요리가 쉽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는 건 경솔한 생각이다. 식당 개 삼 년이면 라면 끓인다는 속담 패러디는 문제가 있다. 일단 식당에 개가 없다. 라면이 개도 요리할 정도로 누구나 잘할 수 있다는 말이라면 결과적으로 개만도 못한 사람이 많다는 얘기가 된다.


라면 요리도 실력에 따라 결과물에 차이가 있음을 위에 라면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증명했다. 자기가 끓인 라면을 먹으면서 이번엔 라면이 불었네 면발이 덜 익었네 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충 물 붓고 라면 털어 넣고 딴짓하다 와서 맘에 안 들면 라면 탓을 한다. 라면은 품질과 규격이 일정한 공산품이다. 봉지 속에 태아처럼 잔뜩 웅크리고 앉은 라면 덩어리는 죄가 없다.



되레, 라면 좀 끓여봤다는 사람들이 오만하게 설명서를 무시하고 덤비다가 실패한다. 라면 봉지엔 조리법이 자세하게 나와있다. 나는 설명서대로 비커 ( 주방에서 부르는 이름은 모르겠다)에 정확하게 계량한 물을 투입한 후 타이머로 시간 맞추어 놓고 경건한 마음으로 대기한다. 평평한 식탁에 놓고 엉거주춤 눈높이를 맞춰 눈금을 재는 게 쉽지 않다. 이를 보고 비웃는 아내의 시선은 신경 안 쓴다. 대의를 지키기 위한 고단한 여정에서 주위의 손가락질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

인용한 브런치 글에도 비커와 타이머가 등장한다.


라면 회사에서 수없는 시행착오를 거쳐 권고하는 조리법은 과학이다. 미국 사회에서 작년 한 해 코로나 정책에 가장 논란이 된 키워드는 '과학'이었다. 정치 경제 논리에 의학적 상식이 밀리면서 많은 혼란이 초래되었다.


일단 야전 교범 (FM )을 충분히 숙지하고 난 후 소신에 따라 조리 시간이나 물의 양에 적당히 변화를 주는 건 얼마든지 좋다. 아예 물과 면을 함께 끓이는 방식도 있다. 번거로워도 원칙을 지킨 수고는 라면 맛이 보상한다. '식당 개 삼 년...'같은 같잖은 속담보다는 '지성이면 감천'의 격언이 라면에 더 어울린다.

무법자가 곧이곧대로 법 지키며 사는 민초 위에 군림하는 세상은 라면보다 못하다.


전자제품을 수출할 때 나라 별 언어로 된 사용설명서( instruction manual )를 넣어주는데, 독일 향向 설명서는 더 꼼꼼하게 교정을 보고서 인쇄한다. 독일 사람들이 유난히 설명서를 자세히 읽어보기 때문이라고 들었다. 그 사람들은 물건을 사면 일주일 정도 지나야 사용하기 시작하는데 그동안 설명서를 공부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독일제가 완벽한 이유를 알 것 같다. 품질은 결국 소비자의 수준을 따라간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너에게 말한다

라면 함부로 끓이지 마라.

너는 라면봉지 설명서를 한 번이라도 읽어보았느냐.

반쯤 불은 라면

언제가는 나도 꼬들꼬들 씹히고 싶을 것이다.

<안도현의 연탄재 시 '너에게 묻는다'에서 영감을 받아 영감이 씀>


기본

이제 라면은 우리 문화의 일부가 되었다. 유튜브를 검색하면 라면 100배 맛있게 끓이기 같은 자극적인 조리법이 100개도 더 뜬다. 라면에 별놈의 재료가 다 추가된다. 문어, 채끝살에서 모차렐라까지. 라면은 라면다워야 한다. 적당한 꾸밈은 바탕을 빛내주지만 핵심을 흔들면 정체성이 흔들린다. 라면에서 핵심은 면발과 국물이다. 그중에서도 하나만 꼽으라면 국물이다. 일본 이찌방 라면과 우리 라면을 합체 (콜라보)한다고 가정할 때, 이찌방의 면발과 우리 수프를 결합하면 큰 문제없다. 반대로 이찌방의 수프와 우리 면발을 선택하면 그건 이미 ' 라면이 아니므니다'. 정체성이 국물에 있다는 걸 입증하는 실험이다.


라면 국물에 밥을 말아먹는걸 무슨 화룡점정처럼 얘기들 하는 데 나는 동의하지 못한다. 남은 국물에 반들반들한 밥알을 풀어놓으면( 육개장 국물에 밥 마는 것과는 달리) 따로 논다는 느낌이 들면서 천박하게 배만 채우다 숟갈을 놓는다. 면발과 만나 애면글면 어울렸던 국물이다. 혼자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어디서 굴러왔는지 근본도 모르는 찬밥 한 덩이 욱여넣고 잘해보라는 건 좀 '쌍'스럽다. 내가 고루하게 여기서 일부종사를 주장하는 게 아니다. 한 세상 사느라고 이미 진이 빠진 국물이다. 조용히 라면 국물로 생을 마치게 배려해주는 게 인간으로서 도리이며 나트륨 섭취도 줄일 수 있다.


논어 팔일편에 나오는 회사후소繪事後素 는 바탕이 있고 나서 꾸밈이 있다는, 기본에 충실하라는 가르침이다. 학교가서 잠자고 학원가서 공부하는 본말의 전도, 하지 말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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