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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현 Dec 28. 2020

당신. 라면집 하면 성공할 거야.


대학을 졸업하고 입사한 첫 회사는 직원 수가 30명이 채 넘지 않았다. 대기업의 한 팀이 그대로 떨어져 나와 작게 시작한 회사였다. 회사는 강남역에서 길게 이어진 테헤란로의 거대한 빌딩 숲에 자리 잡고 있었다.

 

 회사에 이력서를  , 회사가 강남역에 인접한 테헤란로에 있다는  마음에 들었다. IT회사라면 당연히 강남역에 있어야 했다. 면접을 보러 가던 , 회사가 위치한 테헤란로의 30층짜리 건물이 화려하게 느껴졌다. 물론 회사는 건물은커녕, 하나의 층도  차지하지 못할 만큼 작았지만, 그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면접관은 작은 회사인데 굳이 여기를 지원한 이유를 물었다. 준비했던 대답은 따로 있었지만,  입에서는 다른 말이 나왔다.

‘회사 건물이 멋져서요.’

면접관은 어이없어했지만, 그 대답이 딱히 싫지 않은 표정이었다.


최종 합격 통보를 받고 난 후 설레던 입사 날, 태어나 처음으로 출근이라는 경험을 한 사람은 나 외에 한 명이 더 있었다. 나와 동갑인 남자였다. 유난히 짙은 눈썹을 가졌던 그는 제법 잘 생겼었고, 우리보다 먼저 입사한 또래의 여직원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입사한 지 한 달 만에 관심을 주던 여직원들을 포함한 회사 사람들에게 청첩장을 돌렸고, 1년 즈음되었을 때 애 아빠가 되었다.


입사한 지 3년 정도가 되었을 때 그와 난, 각자 다른 회사로 이직을 했다. 두 번째 회사에서 그럭저럭 안정을 찾아가던 나에 비해, 그는 옮겨간 회사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두세 차례 퇴사와 입사를 반복했다. 그런 그에게 내가 다니는 회사의 면접을 보게 했다. 면접관이 나와 함께 일하는 팀장이어서 어렵지 않게 합격을 했다. 다시 같은 회사를 다니게 되면서 그와 급격히 친해졌다.


그는 당구를 좋아했다. 당구뿐만 아니라, 승부를 겨루는 모든 게임을 좋아했다. 승부욕이 강했다. 무엇이든지 나를 이기려 했다.

‘오늘 퇴근하고 당구 어때. 복수전 해야 돼.’

며칠 전 경기에서 나에게 졌던 분함을 만회하려 했다.

‘훗. 그러시던가.’

퇴근시간이 가까워졌을 무렵 그가 다급히 나를 찾았다.

‘야. 오늘 안 되겠다. 건우 저녁밥 차려줘야 해.’

맞벌이를 하는 그의 아내가 급작스레 야근할 일이 생겨, 이제 초등학생인 아들의 저녁밥을 자기가 차려주어야 한단다. 초등학생 아들의 저녁밥? 초등학생이면 끼니 정도는 스스로 해결할 수 있지 않나?

‘라면이라도 끓여먹으라고 해.’

초등학생 아들의 끼니 때문인 걸 이해 못하는 나를, 그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나의 초등학교 시절은 (물론 그때엔 국민학교라고 불렀다.) 태권도, 피아노, 주산학원이 전부였다. 학원을 다니지 않는 아이들이 더 많았고, 한 개 정도 다닌다 하더라도 한 시간 정도면 충분했다. 오후 시간이 길었다. 학교가 끝난 후부터 해가 떨어져 어두워지기 전까지, 긴 오후 시간을 친구들과 뛰어놀았다.

‘엄마 100원만.’

집을 나올 때면 늘 엄마에게 100원을 요구했고, 그 동전 하나면 긴 오후 시간이 든든했다. 100원만 있으면 저녁밥을 먹기 전까지의 허기 걱정이 필요 없었다. 자갈치나 인디안밥, 바나나킥 한 봉지를 100원이면 살 수 있었고, 날씨가 더운 여름이라면 스크류바, 죠스바, 비비빅을 먹었는데, 이것들도 약속이나 한 듯 100원이었다. 그렇더라도 가장 많이 100원과 맞바꾼 건 쇠고기라면이었다. 면을 부수고 그 위에 조심스레 스푸를 뿌려 정성껏 섞으면 그 어떤 과자보다도 맛있었다. 아깝긴 하지만, 100원을 얻지 못한 다른 녀석과 조금 나누어 먹어도 괜찮을 만큼 양도 많았다.


엄마는 아파트 단지 내에 친구가 많으셨다. 옆집 아줌마, 아래 아랫집 아줌마, 옆 동의 3층 아줌마 모두 엄마와 친하셨다. 그분들끼리 자주 서로의 집을 오가며 모이셨다.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동네를 뛰놀다가 집에 돌아와 보면, 엄마가 안 계실 때가 종종 있었다. 이런 날은 라면을 먹는 날이다. 몸에 안 좋다며 자주 끓여주시지 않던 라면을 먹더라도 떳떳한 날이다.

‘아들. 라면 먹었네.’

저녁때가 한참 지나고 나서야 돌아오신 엄마는 미안함을 감추려 한껏 밝은 표정과 평소보다 한 톤 더 높은 목소리로 말하셨다.

‘엄마가 미안. 시간이 이렇게 되었는지 몰랐네.’

아줌마들끼리의 수다에 빠져서 초등학생 아들의 저녁밥을 잊은 건 아니실 거다. 아마도 정 배가 고프면 라면이라도 끓여먹겠지 하는 마음이지 않으셨을까. 그 시대엔 그랬으니까.


초등학생 나이에 혼자 끼니를 해결하지 못하는 친구의 아들이 의존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초등학생 아들의 저녁밥을 라면으로 때우게 하셨던 엄마도 나에 대한 애정이 부족한 건 아니었다. 다만 난 쇠고기라면을 100원이면 살 수 있었던 시대에 살았고, 친구의 아들은 나와는 다른 시대를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혼자 살 때부터 결혼한 지금까지 집에 라면이 떨어진 적은 없다. 가장 편하게, 설거지 거리를 만들지 않으면서, 맛까지 보장되는 건 라면이 유일하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부엌일을 담당하게 되면서, 둘이 함께 먹는 식사에 라면을 내놓는 건 마음이 편치 않다. 정성이 빠진 느낌이다. 엄마의 마음이라는 게 이런 건지. 5개 묶음을 사면 대부분 나 혼자 밥을 먹어야 할 때 없애고, 한 두 개만 아내와 함께 먹는다.


그 한 두 개를 먹는 때는 역시 둘 다 해장이 필요할 때다. 해장을 위한 거라면 상식적으로도 라면을 택하면 안 되지만, 술 마신 다음 날은 역시 라면이 당긴다.


재료는 계량컵과 타이머. 나머지는 거들뿐.

라면 하나에 곁들일 파와 달걀, 얼려놓은 밥을 꺼낸다. 그리고 계량컵과 타이머를 챙긴다. 라면을 끓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계량컵과 타이머이다. 조리법에 적혀있는 물의 양과 끓이는 시간을 어기면 안 된다. 라면을 만든 사람들이 수천수만 번 끓여보고 맛봐서 얻은 값일 테다. 무시하면 무조건 손해다. 하라는 대로 한다.

라면은 하나지만, 2인분이다. 아내가 라면 하나를 채 먹지 못하기 때문에 두 개를 끓이면 내 몫이 하나 이상이 돼버린다. 아침부터 라면으로 배불러지고 싶지는 않다.


파송송! 계란탁!

스푸를 먼저 넣을지 면을 먼저 넣을지로 여러 곳에서 논쟁을 한다. 난 찬물일 때부터 스푸를 넣고 물이 끓어오르면 그때 면을 넣는다. 끓고 있는 면을 넣었다 뺐다 하면 쫄깃해진다고 해서 몇 번 해보았는데, 잘 모르겠다. 그냥 끓인다.

달걀은 라면에 따라 넣을지 말지가 정해져 있다. 라면봉지 앞면에 사진이 있는데, 그 조리 예에 달걀노른자가 있으면 넣고, 없으면 넣지 않는다. 진라면을 끓일 때는 달걀을 넣고, 신라면이나 너구리일 때는 달걀을 넣지 않는다. 신라면, 너구리 봉지의 사진에는 달걀노른자가 없다.


완성.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당신이 라면을 가장 잘 끓여.’

아내는 내가 해주는 다른 음식들보다 유독 라면에 찬사를 쏟아낸다. 자신이 먹어본 여러 음식 중 내가 한 것이 가장 맛있다고 말하는 건 라면이 유일하다.

‘당신. 라면집 하면 성공할 거야.’

좀 허무하다. 나의 최고의 요리가 하필이면 라면이라니. 신경 쓰는 건 물의 양과 끓이는 시간뿐이고, 그건 조리법에 친절히 적혀있다. 나만의 비법이 아니다.


친구와 약속이 있어 내가 늦는 날, 혼자 맥주 안주로 생라면을 먹는 걸 보면, 아내는 그냥 단순히 라면을 좋아하는 걸지도 모른다. 아내가 잘 먹을 뿐만 아니라 최고의 찬사까지 쏟아내는 음식이지만 자주 해줄 생각은 없다. 라면이 몸에 좋지 않아서는 아니다. 정성이 빠진듯한 미안한 음식이기 때문이다. 어릴 적 엄마가 자주 해 주지 않으셨던 이유도 그 때문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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