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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현 Dec 15. 2020

참 어려운 음식이던 떡만둣국.

결혼 전, 지방에서 독립생활을 할 때 대부분의 식사는 회사의 구내식당이나 동네 근처의 밥집에서 해결했다. 하지만, 사 먹는 밥은 금방 질렸다. 간혹 재료를 사다가 직접 요리를 한 적도 있지만, 맛과는 거리가 멀었고, 할 수 있는 음식의 종류도 다양하지 못했다. 두어 달에 한번 정도, 서울로 출장 갈 일이 생기면 엄마가 계신 집으로 갔고, 그때면 슬슬 집밥이 그리워질 때였다.


두어 달 만에 집으로 오는 아들에게 엄마가 차려주시는 첫 음식은 늘 김치찌개였다. 밥상에는 다른 반찬들도 먹음직스럽게 담겨있지만, 김치찌개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았다. 역시 가장 먼저 손이 가는 건 김치찌개였다. 엄마의 김치찌개는 김치와 고기가 푸짐해서 항상 국물이 부족한 듯 보인다. 김치찌개에 밥을 말았다. 아니 부족한 국물이니 비볐다고 해야 하나. 엄마의 시선도 내 손을 따라갔다.

‘국물 좀 더 줄까?’

엄마는 옆에 자리를 잡으시고 내가 밥 먹는 모습을 지켜보시며 건너뛰는 반찬은 없는지 살피셨다.

‘오이소박이도 오늘 담근 건데 한번 먹어 봐.’


엄마의 김치찌개는 늘 한결같은 맛이다. 신 김치에 돼지고기와 두부가 가득 들어간 빨갛고 진한 국물이다. 혼자 독립생활을 하면서 나도 몇 번 만들어봤지만, 할 때마다 김치찌개의 맛이 달랐다. 그날 냉장고에 있는 김치의 상태에 따라 찌개의 국물 맛이 변했다. 엄마가 내어주시는 김치찌개는 어떻게 항상 같은 맛이 나는지 신기하다.


‘어. 두부가 없네?’

김치찌개가 평소와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찌개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두부가 안보였다. 두부가 없는 김치찌개의 맛이 예전과 다르지 않아서, 밥을 반 이상 먹고 나서야 두부가 없다는 걸 알아챘다.

‘아니. 얘는 두부 잘 먹지도 않으면서. 오늘따라 두부를 찾네.’

엄마의 말이 빨라지고 목소리가 커졌다. 갑자기 당황하시면 늘 이러신다. ‘두부가 없는데도 국물 맛이 똑같아’의 의미로 한 말이었는데, 엄마는 ‘찌개에 두부가 빠졌잖아.’라는 투정으로 생각하셨다.




의심은 하고 있었다. 과연 두부가 국물 맛에 영향을 끼치는 건가. 두부가 넣지 않으면 국물 맛이 달라지는가. 의심을 하면서도 확신을 하진 못했다. 아내가 언젠가 김치찌개가 먹고 싶다고 한 적이 있다.

‘집에 두부가 없는데.’

찌개에서 두부의 역할을 의심하면서도 섣불리 무시할 수가 없었다. 두부가 없는 김치찌개는 완성되지 않은 음식일 것만 같았다.

‘아 그럼 김치찌개는 안 되겠네.’

아내 역시 ‘두부는 굳이 넣지 않아도 상관없어!’라고 말하지 않았다.


비슷한 의문이 드는 재료는 또 있었다. 만두가 그랬다. 동네의 큰길 옆, 눈에 잘 띄는 곳에 식당이 생겼는데, 그 식당의 주력 메뉴가 만두전골이었다.

‘만두로 전골을 만들면 어떤 맛이 나는 거지?’

내가 이제껏 생각한 전골이란, 재료의 풍미가 가득 우러난, 진한 국물이 바탕이 되는 음식이었다. 전골에 만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만두는 해산물이나 고기와는 달랐다. 국물 맛에 전혀 관여하지 않을 것 같은 만두가 전골의 주인공이 된다는 게, 쉽게 상상이 되지 않았다.


떡도 마찬가지다. 떡볶이 이거나, 떡 대신 라면을 넣은 라볶이 이거나, 재료의 차이만 있을 뿐 맛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때를 놓친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그냥 라면을 먹을지, 돈을 조금 더 써 떡라면을 먹을지를 심사숙고할 때, 그 고민의 이유가 국물의 맛이 다르기 때문인 건 아니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나에게 떡만둣국은 참 어려운 음식이었다. 가장 중요한 재료가 떡과 만두라니. 떡과 만두를 넣고 도대체 어떻게 국물 맛을 내야 하는 건가.




손흥민의 프리미어리그 경기가 예정되어 있었다. 한국시간으로 새벽 2시 30분에 하는 경기였다. 요즈음 손흥민의 경기력이 물이 오를 대로 올랐다. 놓칠 수가 없었다. 새벽 2시, 경기 시작을 30분 남겨놓고 맥주와 치즈를 챙겼다. 경기가 시작된 지 5분도 지나지 않아 손흥민의 골이 터졌다.

‘안 자고 기다리길 잘했어!’

이런 날은 맥주를 먹는 속도도 손흥민의 스피드만큼이나 빨라진다. 경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아내와 난 만취했다.


전날 먹은 술이 아직 몸에 남아있다. 숨을 쉴 때마다 맥주 냄새가 나는 듯하다. 얼굴색도 어두컴컴하다. 해장이 필요했다.

‘떡만둣국 먹을래?’

아내의 얼굴은 분홍빛이다.

‘응. 그게 좋겠다. 어제 너무 많이 마셨네.’


얼려진 떡, 만두. 국물을 위한 사골곰탕, 다진마늘, 국간장. 그리고 다 만들고 난 후 풍미를 위한 김, 참기름. 달걀 하나.

냉장고 구석구석을 뒤진다. 냉동실에서 얼려진 떡과 만두를 찾아 꺼낸다. 국물 맛을 내기 위한 재료로는 인스턴트 사골곰탕과 다진 마늘, 국간장이면 된다. 쇠고기와 다시마로 육수를 내면 좋겠지만, 그건 내년 설날 아침에나 하기로 한다.


물에 담가놓은 떡. 사골곰탕에 물 200ml 을 넣고 끓인다. 다진마늘과 국간장 한숟갈도 들어갔다.

떡을 물에 10분 정도 담가 놓는다. 사실 이것에도 좀 의심이 있다. 어차피 한참을 끓일 텐데 굳이 물에 담가놓아야 하는 건가. 의심은 들지만 확신하지는 못해서 하라는 대로 그냥 담가 둔다. 사골곰탕에 물 200ml를 더 넣고 끓인다. 처음 만들 때에는 진한 국물을 먹겠다고 물을 넣지 않았더니 많이 느끼했다. 그 뒤로는 항상 물을 더 넣는다.  


달걀 푼 물을 두르고, 후추, 파

달걀의 흰자와 노른자를 분리해서 지단을 만들어 색깔별로 올려놓으면 좋겠지만, 그것도 내년 설날 아침에나 하기로 한다. 해장이 급하니 그냥 달걀 푼 물을 끓는 떡만둣국 위로 두른다. 그러고는 후추와 파를 듬뿍 넣는다.  


완성. 김과 참기름 한방울은 장식이 아니다.


다 만들어진 떡만둣국을 그릇에 옮겨 담고 가장 중요한 마지막 작업을 한다. 김을 찢어 넣고, 참기름을 살짝 두르는 것. 참기름을 두르는 건 엄마가 하셨던걸 보고부터였다. 결혼 후, 부엌일이 내 담당이 되면서부터, 집에 인사를 드리러 갈 때마다, 엄마가 음식을 만드시는걸 은근슬쩍 몰래 쳐다본다. 지난 설날, 엄마가 떡만둣국에 마지막으로 참기름을 살짝 두르시는 걸 곁눈질로 봤다. 아. 이거구나. 역시 내가 만든 건 뭔가 빠진 것 같더라니.


떡만둣국을 만드는 건 쉽다. 자주 하다 보니 만들면서 간을 보지도 않는다. 떡과 만두가 떡만둣국의 국물 맛을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육수의 개념을 알고 나니 떡과 만두의 비밀은 더 이상 신비롭지가 않다. 비록 지금은 인스턴트 사골곰탕이 떡만둣국의 국물 맛을 담당하고, 대충 달걀 푼 물을 넣지만, 내년 설날 아침에는 쇠고기와 다시마로 국물 맛을 내고, 하얗고 노란 달걀지단이 마무리를 장식하는 떡만둣국을 만드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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