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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감 Jan 25. 2021

버리는 기술

무소유의 실천




© 깜장글씨, 출처



노란 장판 방 한구석에 책상, 그 위에 책꽂이 없이 가로로 쌓인 몇 권의 책들, 다른 한 켠 구석에 작은 오디오 세트.

법정 스님의 방 안을 상상해 보았다. 가서 들여다본 적은 없지만 그분의 이야기와 글을 보고 미루어 짐작한 윤곽이다.


무소유는 소유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가지지 말라는 뜻이라고 한다. 무소유의 실천은 '불필요한 것'을 들이지 않는 것과 더불어 '불필요한 것'을 버리는 것으로 나누어질 것 같다. 여기 브런치에도 비슷한 개념의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글이 많이 올라온다.




사자는 배고플 때만 먹이를 쫓고 사냥을 할 때도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고 한다. 자연계를 지배하는 원리다. 사람은 이와 달리 재배와 사육을 통해서 식량을 저장한다. 저장을 잘하는 꿀벌을 부지런하다고 칭송한다. 그 저장 행위의 결과가 성공적인 사람은 부자가 되고, 나라는 선진국이 된다.


인간은 불안한 미래에 대비하여 필요한 것을 채우고도 저장하는 행동을 멈추지 않는다. 인류 문명은 4차 산업 혁명의 문턱에 와 있는데, 인간의 본능은 하루 벌어 하루 살던 수렵 채취 시대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나이를 먹으면서, 구할 수 있는 음식의 양이 적어질까 봐 몸이 스스로 영양분을 저장해서 뱃살을 찌운다는 '나잇살'의 원리와 같다.


살아 갈수록 소유는 늘어난다. 현대인의 삶은 소유를 향한 여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짐이 무거우면 멀리 갈 수 없다. 쓸모없는 물건이 정작 쓸 물건을 가린다. 본능에 이끌린 소유욕에 의해 우리 삶이 소유당하고 있다.




필요해서가 아니라 버리지 못해 가지고 있는 것들이 쓸모없는 물건이다. 이사는 버리기의 좋은 기회가 된다. 침대 밑에, 부엌 찬장에, 팬트리에, 계단 밑에, 옷장에, 신발장에, 책장 등 수납장에 숨어있던 안 쓰는 물건들이 눈앞에 드러난다. 이걸 새로 이사 가는 집으로 이동시킬 가치가 있는지를 적극적으로 고민하는 현실적인 기회가 주어진다. 그래서 이사를 자주 할수록 짐이 줄어든다. 이삿짐센터가 신혼집을 좋아하고 종갓집을 싫어하는 이유다.


'언젠가', '혹시' 쓸 일이 있을지 모른다는 미련이 물건을 버리는 결정에 장애가 된다. 언젠가 동료가 이사를 가는데, 모시고 사는 노모가 아무것도 못 버리게 해서 애먹었다고 하소연하는 소리를 들었다. 이렇게 불특정한 미래의 어느 시점인 언젠가에 대한 집착은 잔명殘命과도 무관하다. 이게 심해지면 집안을 쓰레기로 가득 채우는 저장 강박증이 된다.


일주일 여행 가면서 이사 가는 사람처럼 바리바리 짐을 싸가지고 간다. 혹시 해서 가져간 책과 옷은 도로 가져오면서 여행지에서 새로 산 물건들로 가방이 터진다. 추워서 당장 입으려고 산 스웨터가 아니라, 역시 언젠가 필요할지 몰라서 산 물건들이다.


기업을 감사할 때 재고 자산을 평가한다. 안 팔리고 창고에 잠자고 있었던 상품의 재고 기간을 감안하여, 모두 파는 데 앞으로 얼마나 걸릴까를 따져보는 테스트를 한다. 잘 안 나가는 물건은 처분하는데 몇십 년씩 예상이 되기도 하는데 영업하는 당사자들은 수긍하지 못한다. 게다가 '일 년 안에 팔 자신 없는 물건은 땅에 묻어 버리라'는 물류 원칙을 얘기해 주면 책임자 얼굴이 벌게진다. 생선같이 썩는 물건도 아닌데 이런 극단적인 역설을 따라 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터무니없는 주장은 아니다. 물건을 가지고 있는 비용(재고 관리 비용) 이 물건의 가치를 초과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우리도 만일 버리는 기준을 과거 1년간 한 번도 안 쓴 물건으로 정의한다면 버릴 것이 수두룩할 것이다. 가지고 있는 물건 중에 전혀 쓸모없는 것은 건 없다. 집에 들여놓을 때는 무언가 용도가 있었다. 다만 당장 필요가 없을 뿐이다. 잘 버리는 비결은 막연한 '언젠가' '혹시'에 초연해지는 것이다.


미국 휴스턴엔 십 년에 한 번 눈이 내릴까 말까 한다. 언제 올지 모르는 눈 때문에 도로 제설 장비를 준비해 놓는 다면 낭비다. 어쩌다 한 번 눈이 오면 도로를 막아 버리는 게 싸게 먹힌다. 언젠가, 혹시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아까움을 과감하게 극복하는 게 버리는 기술이다. 지금은 버리고 언젠가 필요하게 되면 다시 사면되지 하는 배짱이 있어야 한다. 사용하지 않는 소유는 읽지 않은 책과 같다. 진정한 소유의 개념을 알면 아까움도 이길 수 있다. 이렇게 저장 본능에 역행하는 버리기의 고통을 경험하게 되면, 버리기의 원천이 되는 들이기도 잦아들지 않을까 한다.


버려야 할 건 물건뿐이 아니다. 어느 소설가는 제일 어렵고 중요한 작업이 작품의 일부 내용을 도려내는 거라고 했다. 그래서 쇄를 거듭할수록 소설의 분량이 줄어든다고...


컴퓨터와 스마트폰에 저장되어 있는 데이터도 무시할 수 없다. 언젠가 연락할 일이 있을까 봐서, 내 과거가 사라지는 게 서운해서 차마 지우지 못하는 연락처, 파일, 사진 들이다. 데이터로 인해 과부하되는 저장 용량보다, 필요한 자료를 검색하는데 시간이 점점 더 걸리는 게 문제다.




소유가 늘어 나는 걸 멈추는 방법에 버리기와 함께 소유 총량제도 해봄직하다. 갖고 있는 게 많다고 해서 필요한 물건을 새로 사지 않고 살 수는 없다. 새 물건을 하나 사되 가지고 있는 물건을 하나 줄이는 게 총량제다. 하나 버리든지 누굴 주든지 한다. 이렇게 정원제를 운영하면 우선 물건 사는 것에 신중해지고 버리기 실천의 자연스러운 계기가 된다.


버려야 할 것 중에 으뜸이 책하고 옷이다.

나는 우선 책을 가지고 총량제를 실험해 보기로 했다. 결과가 좋으면 나보다 책이 열 배 많은 아내한테 '강요'할 참이다.


집에 있는 (내가 사들인) 책은 읽은 책, 안 읽은 책, 읽다 만 책 세 가지로 나누어진다. 또 다른 식으로 놔둬야 할 책, 버려도 될 책, 어쩔 줄 모르는 으로도 분류할 수 있다. 내 계획은,


1. 버려도 될 책, 어쩔 줄 모르는 책들은 처분한다 ( 버리기, 나누기 )


2. 집에 책을 한 권 새로 사들이기( 도서관에서 빌려오는 책 포함 )에 앞서 집에 있는 안 읽은 책 한 권을 완독한다.





며칠 전에 안 읽는 책들을 정리하다 책갈피에 낀 허름한 봉투에서 백 불짜리 두 장을 발견했다. 예감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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