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감 Jan 28. 2021

아이를 환영하는 나라

인구 감소 대책 

https://brunch.co.kr/@italways


육아는 브런치에서 인기 주제 중의 하나다. 쌍둥이를 키우는 김그늘 작가도 육아의 애환을 브런치에 올리고 있다. 글이 하도 아기자기해서 애 키우는 게 마냥 재미있겠다는 착각이 들게 만든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집안에서, 사회에서 부딪히는 속상하는 이야기들도 많다.


정부가 2025년까지 저출산 대응 예산으로 물경 196 조원을 투입하기로 했다는 보도를 보았다. 인구 감소에 대한 위기감을 실감할 수 있다. 이미 지자체들이 경쟁적으로 출산 장려금을 주고 있지만 실적은 미미하다. 돈 좀 쥐여준다고 애 하나 날 걸 둘 낳고, 노총각 노처녀가 결혼을 서두를 것 같지는 않다.


결혼을 늦게 하거나 아예 안 하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고 결혼을 해도 애를 미룬다. 그 배경에는 양육비 말고도 여성의 사회 활동이 있다. 출산과 육아를 위해 유망한 직업을 중도에서 포기하는 선택은 고통스럽다. 그렇다고 애들을 다 키우고 나서 단절된 경력을 이어 붙이는 일은 기술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어렵다. 올림픽 금메달 선수의 군대를 면제해 주는 명분은 보상이 아니라 한창때 기량을 최대로 발휘하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출산과 육아에 이르는 물심양면의 구체적인 고난을,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애 키우는 기쁨 몇 배'로 상쇄할 수 있다고 설득하기는 어렵다. 양육의 의무만 있고 피부양의 기대가 크지 않는 세태다. 전문 분야에서 인정받으면서 방해받지 않는 자유를 즐기는 삶이 더 안전하고 가치 있다고 판단하는 커플들을 주위에서 본다. 반려동물만 점점 더 바빠진다. 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시대에 시부모도 종족 보존의 의무를 일방적으로 강요할 수 없게 되었다.


개인주의 가치관이 확산되면서도, 인간 사회에서는 육아를 공동으로 분담하는 동물 행동학적인 습성의 일단이 관찰된다. 사회성을 회복하여 종족 유전자의 생존을 최대화시키려는 기제로 해석할 수 있다. 여기서 희망을 본다.


할머니들이 남의 집 아이의 나이를 궁금해하고 나이에 맞게 행동이 발달이 했는지를 ( 관대하게 ) 평가한다. 애 엄마가 질색하는 데도 모르는 애를 안아보고 싶어 하는 할머니의 오지랖은 종족의 번영에 대한 생물학적인 관심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 kelli_mcclintock, 출처 Unsplash



총각 적에 미국으로 출장을 가게 되었다. 항공사에서 일반석 단골손님은 대충 앞자리에 앉히는데, 나는 아기들 요람을 걸치는 장치가 있는 맨 앞줄보다는 그 뒷자리를 선택했다. 바로 내 옆자리에 어떤 애 엄마가 갓난쟁이를 안고 탔다. 아마 요람 있는 좌석을 미리 차지하지 못한 것 같았다.


기내식을 나눠주기 시작하는데 애 엄마가 안쓰러웠다. 내가 먼저 밥을 먹고 애를 안아 줄 테니까 그때 먹으라고 제안하자 고맙다고 했다. 나는 워낙 밥을 빨리 먹는 데다 마음이 급해서 5분 만에 후닥닥 해치우고 애를 얼른 받았다.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다음 손님이 옆에 서서 기다리면 밥이 안 넘어간다. 나와 교대한 애 엄마는 와인을 색깔별로 번갈아 테스트해가며 기내식을 여유 있게 한참을 탐미했다. 내가 나중에 장가가면 애를 잘 볼 것 같다는 잘 분간이 안 되는 덕담도 건네면서. 미국 북부 도시에서 유학 중인 남편과 사는데, 혼자서 애 데리고 한국에 잠깐 다니러 갔다 온다고 했다.


나는 성격이 좀 급하고 남에 대해 특별히 관대하거나 배려심이 많지도 않다. 그런데도 애를 안고 있는 동안 팔은 좀 저렸지만 맘은 편안했다. 나나 애 엄마나 당연한 일을 서로 돌아가며 분담하는 듯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만일 아기가 아니고 짐을 맡았다면 상황이 달랐을 것이다.


그 순간 '애'는 누구의 소생이냐를 떠나서 공동으로 보호해야 하는 대상으로 인식되었던 게 아닌가 한다. 다섯 시간 동안 애를 안고 있었던 일차 보호자 '애 엄마'는 휴식이 필요했고 이차 보호자 '옆자리'는 당연히 그 휴식에 협조를 함으로써 애가 무사히 나머지 시간을 견딜 수 있게 하는 공동의 미션을 수행한 것이다. 이를 이타심이나 선심이라기보다는 집단이 공동으로 육아하는 곤충의 진사회성eusociality 이 발현한 거라고 띠우면 심한 비약이 될까?


아이는 부모의 전유물이 아니다. 우리 공동체의 미래를 책임질 공동의 자원이다. 그래서 아이를 학대하는 부모는 나라에서 벌을 준다. 우리가 늙어 거동을 못할 때 부축해 줄 사회 안전망을 지금의 아이들이 지탱해 줄 것이다. 누구 아이 할 것 없이 거두어야 하는 '실리적인' 이유다.


아이를 출산하는 개인이 겪어야 하는 지난한 과정, 아이라는 약한 존재가 자립하는 위태로운 과정에 우리 사회가 공동체적으로 개입할 때 저출산 문제의 물꼬가 터진다. 공동으로 육아하고 나중에 공동으로 피부양 받는 개념으로 접근해야 공동체가 영속할 수 있다. 현생하는 인간 모두 예외 없이 종족 보존이라는 사명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자연선택 챔피언의 자손이다. 지속적으로 계승해야 할 의무가 있다.


출산과 육아에 대한 사회적인 축복 Blessing 이 절실하다. 전철에서 임신부에게 자리 하나 양보하는 배려 차원의 캠페인으로는 부족하다. 새로 태어나고 자라는 아이들을 거국적으로 환영하니까 사회적 비용이 줄고 그게 결국 남는 장사더라는 공감대가 필요하다.


여성이 육아냐 경력이냐를 이분법으로 선택하지 않고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게끔 선다選多의 기회를 주자. 출산 휴가, 육아휴직을 가는 직원들로 인해 생기는 공백에 책임자가 조바심을 내면 직원들이 아예 원인을 안 만든다. 회사는 비 오는 날 우산 쓰듯이 미리 대비하면 된다. 모든 조직에 해당되는 제도이므로 경쟁에서 불리하지도 않다. 세종대왕은 비자婢子( 여자 종)가 애를 나면 백일의 출산휴가에다 삼십일의 산전휴가까지 주었다고 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서기 1400 년 대로부터 얼마나 발전했나.


활동하는 여성 인구의 일정 부분을 임신부가 차지하게 되어있다. 그들이, 보이는 데서 떳떳하게 활동하는 분위기를 조성하자. 회사를 다니든, 학교에서 가르치던, 정치를 하던, 텔레비전에 출연하든, 배려는 하되 위축되지 않고 활동하게 바쳐주는 사회가 선진국이다. 우리나라 텔레비전에 임신해서 배가 부른 앵커, 아나운서, 기상 캐스터를 볼 수 없는 것은 그들의 내면적 가치가 부정당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여러 나라를 다녀 보면 남의 아이에 대한 반응이 조금씩 다르다.


누가 아이를 안고 가면 그냥 지나치지 않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남의 강아지한테는 어쩔 줄 몰라하면서도 애는 본체만체하는 나라가 있다.

출산율과 무관하지 않다.


우리 사회는 어느 쪽으로 기울고 있는가?


아이를 귀하게 여기고 환영하는 사회가 되면 인구수는 회복된다.











작가의 이전글 버리는 기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