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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감 Feb 03. 2021

나무는 베어야 나이테가 보인다.

꼰대가 꼰대에게



BBC News



2019 년 말에 독일의 공영 텔레비전인 WDR 방송이 어린이 합창 프로그램을 내보냈다가 여론의 공격을 받고 사과했다.


동요를 패러디한 노래 '우리 할머니는 늙은 환경 돼지 Umweltsau'는 할머니가 SUV 타고 다니면서 한 달에 기름을 천 리터씩 쓰고 / 매일 싸구려 고기를 튀기면서 / 대기를 오염시킨다는 내용이다.


환경에 해로운 생활 습관들을 풍자하면서 '우리 할머니는 늙은 환경 돼지 Umweltsau'라는 후렴을 반복한다. 스웨덴의 소녀 환경 활동가인 툰베리의 연설 문구 '우리는 당신들이 이 책임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겠다 We will not let you get away with this'를 인용해서 '협박'하면서 노래를 마무리한다. 이 시대 모두가 성찰해야 할 환경 문제를 개념 없는 할머니들만의 책임으로 몰아가며 조롱하고 있다. 아이들을 도구로 노인을 회화화한 것도 비난받았다.


우리도 공공장소에서 노인이 끼친 '민폐'를 호소하는 피해 사례를 소셜미디어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여러 명의 노인들이 우르르 카페에 몰려와서 커피 두 잔 시켜 나누어 마시면서 비싸게 받아 X 먹느니 하면서 떠들고, 경로 우대로 돈도 안 내고 탄 노인이 지하철에서 큰소리로 전화 통화를 하는 바람에 열 받았다는 얘기 들이다. 사실상 식당에서 떠들고 지하철에서 전화하는 건 남녀노소 대동소이하다.


노인을 젠더, 신분, 인종처럼 범주화시켜서 문화적으로 이질적인 타자로 못 박는 사회 현상은 동서양에 구분이 없는 것 같다.


우리 사회에서 촌스러움 ( = 젊은이들이 질색하는 )과 비합리성 (=막무가내) 은 노인 집단에 대한 일반화된 인식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 사회 구성원들 모두가 가지고 있는 인정하기 싫은 자화상이다. 청장년들이, 선망하는 서양 문명에 편입되기 위해 털어버리고 내 빼고 싶어 하는 습성이기도 하다. 문화적 강박에서, 변화에 방해가 되는 비합리적인 속성들을 의도적으로 노인에게 봉인해놓고 거리를 두고 있다.




이런 편견을 당사자이자 피해자인 노인이 더욱 부추기며 사회의 노인 혐오를 견인하고 있다.


간혹 노인들이 식당에서 소란하다고 지적받으면 원인이 된 행동의 반성보다는 대뜸 노여움이 앞선다. '요즘 것들은 어른도 몰라보고 버릇이 없다'라는 수천 년을 유행해 온 푸념으로 일차 반응한다. 그럴수록 이 사회가 공유하는 문제들을 노인이 혼자 덤터기 쓰는 악순환은 계속되고 세대 간의 괴리는 점점 벌어진다.


‘장유유서’의 유교적 전통이 아직도 무의식에 자리 잡고 있어 무례한 행동을 노인의 권력 행사로 인식하는 경향도 있다. 대개 나이 먹은 남자에게 지배력이 쏠리는 연령주의 현상이 사회 각계에 남아 있으면서 변화하는 사회와 충돌하고 있다.


지난 12일 일본 야마구치현 시골마을 스오오시마에서 할아버지를 따라 동네 산책을 나섰던 후지모토 요시키 군이 실종됐다. 만 2세 어린이 실종 소식에 지역 경찰과 소방 인력 550명이 총동원돼 수색에 나섰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났지만 후지모토 군을 찾았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꼭 찾게 도와 달라는 후지모토 군 부모의 간절한 인터뷰를 접한 78세 오바타 하루오 씨는 가만있을 수 없었다. 서일본 호우 지역 자원봉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는 다시 운전대를 잡고 야마구치현까지 300㎞를 달렸다.

14일 가족들과 만난 뒤 15일 오전 6시 수색에 나선 오바타 씨는 30분 만에 후지모토 군을 찾았다. 실종 68시간 만이다. 생존 가능성이 급격히 떨어지는 실종 후 72시간을 불과 4시간 남긴 때였다. 오바타 씨는 아이가 실종된 곳 주변에 산이 많고 애들이 실종되면 통상 높은 곳으로 올라간다는 점에 착안해 수색 지역을 특정해 빨리 찾을 수 있었다.

매일 경제 2018.08.16


노인의 나이는 인덕과 지혜가 결합될 때 빛이 난다. 

우리말에서 '나이 먹다'는 동사다. 일본어도 동사라고 들었다 ( 歳を取る). 내 나이는 내 행위의 결과이고 결과에 대한 책임은 내게 있다는 사상으로 비약시켜본다. 내 나이에 대한 책임을 다른 말로 나잇값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이만 내세우는 위계적 규범은 지금 세상에서 설자리가 없다. '너 몇 살 먹었어' 하면서 장유 기준만으로 공경을 시비하면 봉변당하기 쉽다. 나잇값 없이 나이만 가지고 교환하는 무상 서비스는 별로 없다, 지하철 승차나 국립공원 입장 등 몇몇을 제외하고는.


모든 젊은이들은 치명적인 질병이나 사고를 당하지 않으면 노인이 된다. 노인은 나이를 수치스러워할 것도 자랑스러워할 것도 없다. 다만 나이에 걸맞은 나잇값을 하면 된다. 나무가 나이를 말하지 않듯이, 나잇값은 주민 번호가 아닌 언행으로 보여준다.


논어 위정 편에서 공자는 연령대 별 (당신의) 인격 발달을 회고했는데 그 정점이 바로 칠십이종심소욕 불유구 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 다. 나이 칠십에는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따라도 법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보다 귀한 나잇값이 어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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