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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감 Feb 25. 2021

비겁한 어법

안타깝다는 말 

신입사원 때 회사 선배(=사수)가 비법을 구전하듯이 업무요령 한 가지를 얘기해 줬다. 해외 거래처로부터 클레임을 받더라도 함부로 '미안하다 sorry 소리를 하면 안 된다'였다. 미리 잘못을 인정해 버리면 나중에 타협하기 어려워지니까 중립적인(=애매한) '유감 regretful' 같은 말로 바꾸어 쓰라는 '업무의 지혜'다. 접촉사고 났을 때 먼저 잘못했다 소리 하지 말라는 자동차 보험사의 주의사항과 비슷하다.


나는 영어 'regret'에 '후회하다' 말고 '유감스럽다'의 뜻이 있는 줄을 그때 처음 알았다. 지금도 우리말 '유감遺憾스럽다'의 뜻을 정확히는 모른다. 이런 게 정말 우리말 맞는지도 모르겠다.


클레임 claim : 경제 무역 거래에서, 수량ㆍ품질ㆍ포장 따위에 계약 위반 사항이 있는 경우에 매주(賣主)에게 손해 배상을 청구하거나 이의를 제기하는 일. 표준국어대사전


1990년, 당시 아키히토 일본 왕이 '일본에 의해 초래된 이 불행했던 시기에 귀국의 국민들이 겪으셨던 고통을 생각하면 본인은 통석痛惜의 염念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라는 난해한 말로 과거사를 사과했다. 일본스러운 모호한 표현에 대해 한일 양국에서 논란이 있었던 걸 기억한다.


서양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평소엔 미안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다가도 일단 일이 터지만 사과에 인색해진다. 법적인 후환이 두려워서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비즈니즈든 교통사고든 내 잘못이 분명한데 사과했다고 해서 덤터기 쓴 기억은 별로 없다. 그래도 상업적인 거래에서는 악용하는 사례가 있으니 우리 측의 실책을 인정할 때는 신중해야 하는 게 맞기는 하다.


스위스에 있는 거래처에 납품한 전자제품에 하자가 생겼다. 우리 문제임을 인정하고 해결해 주겠다고 약속하는데도 그 회사 사장은 화가 잔뜩 나서 펄펄 뛰었다. 현지에서 하자 제품 전량을 수리해 주기로 하고 즉시 한국의 공장에서 베테랑 작업반장을 거래처에 파견했다.

그러고 나서 얼마 있다 거래처 사장한테서 전화를 받았다. '저 사람' 저러다 죽으면 어떻게 하냐고 한다. 분위기는 많이 누그러졌다. 창고에서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쉬지 않고 폭풍 작업을 하던 우리 회사 반장이 이제는 창고 문을 새벽에 열어달라고 하더란다. 사장이 무섭기도 하고 감동을 받은 거였다.




안타깝다[형용사] : 뜻대로 되지 아니하거나 보기에 딱하여 가슴 아프고 답답하다.
표준국어대사전


네이버 뉴스에서 '안타깝다' 검색해 보았다.


지난주 언론 보도에서 '안타깝다'라는 발언한 사람을 세어보니 40명이 넘었다.

그중에 약 30명이 여야 정치인이나 고급 관료들이고 나머지가 법조인, 기업인, 학자, 그리고 운동선수 연예인 순서였다.


대다수의 '안타깝다'는 미안하다거나 남을 탓하는 목적으로 썼다.

'보기에 딱하여 가슴 아프고 답답하다'라는 본래의 안타까움은 그중에 두세 번 있었는데, 예를 들면 졸업식을 온라인으로 해서 '안타깝다'였다. 무슨 의도로 안타깝다고 했는지 도저히 모르겠는 발언도 하나 있었다.


같은 조건으로 20년 전 일주일 간을 검색해보았더니 단 여덟 건이고 정치인도 한 사람뿐이었다.

용례도 대개 자신이나 사회의 능력이 못 미치는 현실을 아쉬워하는 상황이고 남 탓이 한 번 있었다.




'안타깝다'가 정치 유행어가 돼버렸다. 전에 쓰던 '유감스럽다' 라는 말을 대체한 것 같다.

자기 잘못을 둘러대는 구실부터 상대방을 헐뜯는 목적까지 헷갈리는 용례로 쓰이고 있는 걸 본다.


정치는 비즈니스 하고 다르다. 

정치인은 사과를 하든 남을 비난하든 입장을 정확하게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듣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내 잘못은 똑 부러지게 사과하고, 남이 잘못했다고 판단되면 정확하게 지적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야 정치 소비자인 국민들이 헷갈리지 않는다.


용렬 맞은 이들은 어정쩡한 말 뒤에 숨어서 사과 한 마디 하는 것도,

1. 와전됐다,

2. 국민 눈높이,

3. 부덕의 소치

같은 상투적인 언사로 우물쭈물 빠져나간다.


그걸로 안 통하면 마지못해

4. 심려를 끼쳐서 유감,

5. 이유가 어떻든 간에 유감,

으로 '사과'라는 걸 해치운다.


이 말들을 들여다보면 사과보다는 궤변에 가깝다.

1. 와전=말장난

2. 눈높이= 잘못한 것 없는데 사람들이 트집을 잡아서,

3. 부덕=(임금이 덕이 부족하여 비가 안 온다 처럼,) 높은 자리에 있다는 죄밖에 없음

4. 심려=내 잘못은 없는데 언론이 몰아가서 사과

5. 이유가 어떻든 간에=잘 못 한 일 없는데 더러워서 사과


완곡한 표현과 궁색한 변명은 다르다.

전자는 말을 모나지 않게 다듬어서 상대방을 배려하는 어법이고,

후자는 사태를 모면하고 보려는 역겨운 기만이다.




어느 나라나 잘못을 저지르는 지도자들은 있다.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내가 잘못된 행동을 선택한 것을 후회한다... 용서받을 수 없는 실수를 했다...' 같은 진정한 사과를 들어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요즘 시끄러운 운동선수들의 과거 폭력 논란도 가해자가 진심을 가지고 사과했더라면 이미 묻혀 버렸을 사건들이다.


너그러운 우리 국민이 지도자들의 말버릇을 버려놓았다.

막말은 뭐라 하면서도 변명이나 거짓말은 그러려니 한다.


우리 사회가 지금 안타까운 건 맞지만, 비겁한 어법이 우리 사회를 더 안타깝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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