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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감 Mar 04. 2021

텍사스 휴스턴 이야기 1

기후의 역습


지난 2월 중순 미국 텍사스 주에 백 년만의 한파가 몰아닥쳤다. 집안에 배관이 얼어 터져서 천정에서 물이 쏟아지고 전기와 수도까지 끊기는 등 지옥을 방불케 했다고 한다.


텍사스 주에서 인구가 제일 많은 도시가 휴스턴인데 나사 NASA도 거기 있다. 일 년에 일곱 달은 덥고 습하지만 다섯 달은 살만하다.


뉴저지에서 휴스턴으로 이사 갈 때, 주위 사람들이 텍사스는 에어컨 없던 시절에 어떻게 살았냐고 물어보던 게 생각난다. 에어컨 없이 못 사는 동네라서 전기료가 밀려도 9월까지는 봐준다. 여름에 전기를 끊는 건 (정말로 ) 죽으라는 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휴스턴이 세계에서 전력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도시라고 들었다.


겨울에도 기온이 섭씨 10도-20도 정도로 온화해서 어쩌다 영상 10도 이하로 내려가면 이 집 저 집에서 벽난로를 땠던 게 생각난다. 눈은 십 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해서 정부에서 한 번씩 헬기로 눈을 공수해와서 아이들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AP / USATODAY


그러던 곳에 기온이 영하 10도 밑으로 내려가고 정전으로 난방까지 안되니, 아무리 강인한 텍사스 사람들이래도 저으기 불안했을 것 같다. 뒷마당의 나무 울타리까지 뜯어서 벽난로를 땠다는 집도 있다. 사람들이 호텔로 몰렸는데 당연히 거기도 만원이었다고 한다.


와중에 전기 요금까지 치솟아 평소에 월 50만 원 정도 나오던 집에서 천만 원이 넘는 고지서를 받았다는 황당한 보도도 봤다. 텍사스는 몇 군데 빼고 주민이 전력 공급회사를 선택할 수 있다. 전력 수급 상황에 때라 요금이 변동하는 그리디 (Griddy)라는 전력 도매 업체에 가입한 가정이 전기 요금 폭탄을 맞은 것이다.


한편 2017년 8월에는 초강력 허리케인 하비가 휴스턴을 덮쳤다. 하비가 며칠 동안 제자리에 머물며 비를 쏟아내는 바람에 대규모 홍수가 나서 거리에서 보트를 타고 다녔다. 기록적인 홍수로 4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earthobservatory.nasa.gov



이런 극단적인 자연재해가 반복되는 공통 원인으로 지구 온난화를 꼽고 있다.


한파

북극권에는 차갑고 건조한 저기압 덩어리가 뱅뱅 돌고 있는데 극 소용돌이라고도 부른다. 북극의 기온이 차가울수록 이 소용돌이가 강력해져서 극권의 찬 기온을 가둬주는 격벽의 역할을 해준다고 한다. 에어 커튼을 생각하면 된다.


북극의 기온이 올라가면서 중위도 지역과의 온도 차이가 줄어들면 소용돌이가 약해지거나 뚫린다. 북극의 찬 공기가 뚫고 밑으로 내려와서 이상 저온 현상을 만들어 낸다. 우리도 겨울에 가끔 이런 일기 해설을 듣는다. 위에 지도에서 보면 그 결과로 이번에 휴스턴이 알래스카보다 더 추웠다는 걸 알 수 있다.


홍수

따뜻해진 해수면이 강력한 에너지원으로 작용하면서 허리케인의 힘이 세져 재앙적인 홍수를 불러왔다고 분석하고 있다. 특히 휴스턴 지역은 광대한 평지다. 도로, 주차장 같은 데가 시멘트 아스팔트로 포장되어 물이 빠지기 어려워서 홍수 피해가 더욱 컸다고 한다.


지구 온난화의 비극을 점점 실감하고 있다. 이러한 극단적인 변화가 지구 온난화로 대기의 균형이 깨졌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우세하다. 인류가 기후변화의 상황을 원복 시킬 수 없는 지점 (tipping point)을 이미 지났다고 경고하는 학자도 있다. 빌 게이츠는 기후 변화가 코로나보다 더 큰 재앙을 불러올 것이라고 한다.


온난화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이산화탄소 발생을 억제하자는 국제적인 공감대는 만들어졌지만, 그 실행 과정에 각국의 이해가 얽혀 참여가 부진하다. 인류의 미래가 달린 문제를 지역의 정치 경제적으로 접근하면서 과학적 통계는 무시된다.


심지어 지구 온난화 우려가 유럽과 소수 정치가의 사기극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상 한파를 빗대어 온난화가 엉터리 환경 종말론이라고도 조롱한다. 날씨와 기후는 다르다는 걸 모르는 부류다.


지구 온난화의 근거가 불확실하다고 가정하자. 그래서 이산화탄소를 줄이기 위해 화석연료 사용을 억제한 정책이 결과적으로 온난화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치자. 선진국들이 편익과 비용을 조금 양보한 것의 부작용은 크지 않다. 반대로 온난화의 경고를 무시하고 대비를 소홀히 했다가 당할 인류 재앙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전자는 조심이고 후자는 도박이다. 선택은 하나다.


텍사스 주지사가 오늘부터 마스크를 안 써도 된다고 발표했다. 코로나 관련 모든 제한을 푼다고 한다. 내가 볼 때는 도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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