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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감 May 09. 2021

한국음식의 아전인수식 예찬


음식의 준비

모든 음식이 그렇지만 특히 한식은 만드는 데 정성과 시간이 많이 들어간다. 먹는 건 뚝딱이다. 서양식은 준비하는 데 비해 먹는 시간이 길다. 우리나라 사람이 서양에 가면 격식 차리는 저녁 자리를 힘들어한다. 공통 화제도 별로 없는데 서너 시간을 꼬박 앉아서 문화 격차를 실감한다. 식사 후 계산서 나오는데 삼십 분이 추가되면 인내심을 시험당한다.


한식은 준비하는 측에서 가급적 모든 과정을 결정하고 처리한다. 주문하는 수고까지 덜어준다. 메뉴만 정하면 선택할 게 별로 없어 주문하는데 길어야 2-3 초면 되고, '같은걸로' 나 '아무거나'를 선언하면 1초 이내로도 끊을 수 있다. 끝없이 이어지는 선택에 시달리다 주문을 마치고나면 진이 빠지는 서양식과 비교된다.


한식은 먹는 이를 배려한다. 작게 썰거나 다져서 만든 음식이 많아 부드럽고 먹기 좋다. 서양 음식처럼 재료를 통째로 쓰지도 않고, 덩어리 채 던져주며 마무리 공정의 노동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김밥이 서양식이었다면 아마 충무 김밥처럼 반찬 따로 주고 칼로 썰어서 꼬챙이로 찍어 먹든지, 망측하게도 오이처럼 들고 베어 먹으라고 했을 것 같다. 한식이 완제품이면 양식은 반제품이다.


동양에서는 젓가락이라는 과학적이고 우아한 도구를  발명했다.

만일 반대로 포크 나이프가 우리 것이고 젓가락이 서양식이었더라면,

포크 나이프는 위험하고 미개하다는 이유로 식탁에서 퇴출되어 민속촌에 가야만 체험할 수 있었을 거다. 젓가락질하는 거 보고 문화 수준을 평가하는 바람에 젓가락질 '십분 완전 정복' 같은 유튜브도 많이 생겼났을테고, 결과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젓가락 사용은 지금보다 능숙해졌겠다. 요즘 젓가락질 개성 있게 (= 엉터리로 ) 하는 사람 많이 본다. 내 아내도 그중의 한 사람이다.


음식의 구성

우리 음식은 주主와 부副의 경계가 명확하다. 주식은 곡물이고 부식은 육해공군 재료로 만든 국과 각종 반찬이다. 반찬 없는 밥은 먹을 수 있어도 밥 없이 반찬만 먹지는 않는다. 국 또한 밥에 버금가는 필수 메뉴다. 예전에 군대 처우가 열악할 때도 삼시 밥과 국을 빼놓는 적이 없었고 야전에서 훈련할 때도 어떻게 해서든지 밥과 국을 가져다가 배식했다. 브런치의 자유로운 콩새 https://brunch.co.kr/@hee91801 작가에 의하면 북한 지방에서도 국이 필수라고 한다.


고깃집에 가면 고기를 먹고 난 다음에 요식행위하듯이 '식사'라는 걸 시킨다. 서양 사람들은 이 장면에서 그렇게 먹고 뭘 또 집어넣느냐는 듯 손사래를 친다. 우리가 스스로 한식의 기본을 흔들어서 생긴 오해다.


한식에서는 고기든 김치든 반찬에 지나지 않으며 곡물로 만든 밥에 종속된다. 한우 일 인분은 한 사람 반찬으로서 충분한 분량이다. 고깃집에선 식탁 중앙에 군림한 고기에 압도당하면서 본말本末의 질서가 유린된다. 고기로 먼저 배를 채우다 보니 일 인분이 부족하다. 막판에 밥이나 냉면이 비집고 들어갈 공간이 옹색해지면서, '을 먹는다'가 상징하는 한식의 정체성은 상실된다. 외국 사람들이 바비큐를 한국의 전통음식으로 치던데, '전통' 이란 말은 빼는 게 좋지 않을까 한다.


상차림

회식할 때는 한두 사람 늦게 오기 마련인데 그 인간들의 동선을 실시간으로 추적해야 하는 때가 있다. 메뉴가 코스요리인 경우 애피타이저를 시작으로 순차적으로 나오므로 모든 사람이 하나의 시간에 통일하지 않으면 복잡해진다. 중국식, 양식이 대개 그렇다.


반면에 한식은 하나의 공간에 동시다발적으로 차려놓고 나누어 먹는다. 한식에서만 상다리 부러지는 게 가능하다. 식욕을 자극하는 애피타이저는 필요 없다. 오색찬란한 밥상 자체가 예술이고, 환갑이나 제사 같은 전통 의례의 중심 부분이 되었다. 가끔 한정식집에서 한식을 늘려서 코스로 만들어 내놓는데 억지스럽다.


메뉴가 한식일 때 공간이 나뉘면 거북하다. 그래서 회식할 때 식탁을 끌어다 붙여놓고 시작한다. 삼차원 세계에서, 식탁 끄는 소리가 나서 그렇지 공간을 조작하는 건 어렵지 않다. 이에 비해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시간에 구속되는 코스요리는 불편할 때가 있다.


서양식은 당국에서 일방적으로 정한 순서대로 받아먹으면 되므로 생각이 별로 필요 없다. 한식은 일단 밥상을 받아놓고 먹는 이가 조화와 균형을 맞추어가며 순서를 정한다. 눈앞에 전개된 밥과 반찬을 보면서 어떤 방식으로 공략할지를 독자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하는데 경우의 수가 상당하다.


국 포함 반찬 가짓수가 네 가지만 되어도 각 반찬을 방문하는 경로의 조합이 무려 4! (팩토리얼)로 24가지다. 그런데 반찬을 한 가지씩 차례로 비워나가지 않는다. 반찬 별로 몇 번에 걸쳐 처리할지, 밥 한 번에 반찬 몇 번의 원칙으로 갈지, 공략 중에 다른 사람과 충돌할 때의 B 플랜 등 수많은 변수가 가지 친다.


먹는 주체는 전략을 세우고 시시각각 수정하는 작업을 계속한다. 주문할 때 수월하게 지나간 대신 정작 먹을 때는 두뇌의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지력이 떨어지는 노인이나 어린아이는 식사를 옆에서 보조해 줘야 한다. 한국 사람 평균 아이큐가 세자리인 이유가 있다.




식생활은 생명을 유지하고 필요한 영양분을 섭취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영역이다.

글로벌 시대에 각 민족의 식생활이 상호 간의 문화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필수적인 요소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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